[2024 쿨투라 어워즈] 단순한 발생에서 충만한 의미로
[2024 쿨투라 어워즈] 단순한 발생에서 충만한 의미로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4.01.30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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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오늘의 소설 「인간의 쓸모」의 최진영 작가 인터뷰

인터뷰어 허희(문학평론가)
일시 2024년 1월 16일

「인간의 쓸모」(《창작과비평》 2023년 여름호)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상용화된 근미래가 배경인 단편이다. 주인공 ‘안나’도 유전자 편집 기술로 태어났다. 그러나 모부의 소망과 달리 그녀는 모든 면에서 빼어난 특질을 갖추지는 못했다. 안나의 모부는 둘째를 낳을 때는 그러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데, 이로 인해 안나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다. 한편 그녀는 모부가 인터넷 플랫폼에 올린 어린 시절의 본인 영상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때 무료로 해당 영상을 지워주겠다는 사람—‘노아’가 나타난다. 노아와 대화를 나누면서 안나는 자신이 얼마나 협소하고 왜곡된 세계에 갇혀 있었는지를 절감한다. 제목처럼 ‘인간의 쓸모’ 및 제어되지 않은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가져올 폐해를 지적한 이 작품은 〈쿨투라 어워즈-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 선정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화상으로 소설가 최진영과 「인간의 쓸모」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희 '2024 쿨투라 어워즈' 오늘의 소설에 「인간의 쓸모」가 선정되었습니다. 먼저 축하 말씀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최진영 네 그게 이제 작년 여름에 발표했을 거예요. 아마 《창작과비평》 여름 호에 발표한 소설이니까 시간이 꽤 지났잖아요. 그런데 또 다시 이렇게 소환해 주셔서 저는 너무 기쁘고 지난 시간 헛되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허희 이 작품은 어떻게 쓰게 되신 건가요?

최진영 거의 1년 전에 청탁을 주셨어요. 그때 《창작과비평》 200호 특집이라 주제가 정해져 있었죠. 처음에는 ‘미래’였는데 미래에서 ‘근미래’로 좀 바뀌었어요. 그래서 근미래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구상해 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기후위기가 떠올랐는데 그건 제가 이전에 단편으로 쓴 적이 있어요. 그 다음 후보는 AI였는데요. AI 공부를 열심히 하고 소설을 썼습니다.

ⓒ김승범

허희 말씀하신 대로 「인간의 쓸모」는 근미래소설입니다. 배아 상태에서 유전자 편집을 통해 원하는 인간을 만들 수 있고, AI가 보편화되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AI가 쓰이고 있죠. 그로 인해 인간의 일자리도 AI에게 대부분 잠식당했는데요. 작가님이 예견하는 근미래의 모습은 여기에 얼마나 투영된 것일까요?

최진영 저는 근미래지만, 쓰면서도 아주 가까운 현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기후위기에 대한 소설을 쓸 때도 그랬어요. 이것이 과연 미래일까?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약간의 가상 픽션만 넣어서 쓴다는 느낌이 들어서, 쓰면 쓸수록 미래 이야기를 쓰는 것 같지 않았어요. 저부터도 지금 어디를 가든 검색부터 하거든요. 교통 편부터 시작해, 어떤 상점이 문을 열었는지 등 모든 것들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이것이 과연 안나의 생활과 무엇이 다른가 돌아보게 되었어요.

허희 ‘갤럭시존, 타운존, 노고존’으로 공간이 분할된 사회는 곧 계층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갤럭시존이 소수의 상류층, 타운존이 다수의 중산층, 노고존은 여기에 포섭되지 않는 ‘자연인’들이 사는 지역을 뜻하는데요. 작가님은 노고존의 진짜 이름이 ‘꼬뮌’이고, 이곳이 일종의 해방구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에 안나는 노아를 만나러 꼬뮌으로 향하는데요. 어쩌면 여기에서부터 또 다른 장편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단편을 발전시켜 장편으로 집필할 계획이 혹시 있으신지요?

최진영 같은 감상평을 어떤 편집자에게서도 들었어요. 잘 읽었다 이렇게 소식을 주시면서 장편으로 확장해도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죠. 사실 저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요.(웃음) 그렇게 써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고, 여하튼 좀 더 숙고해봐야겠어요.

허희 현재 우리 사회의 단면들도 이 작품에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이를테면 아기 때부터 아이가 자라는 영상을 찍어 올리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콘텐츠도 그중 하나인데요. 작가님께서는 양육자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침해받는 ‘아동 인권’ 문제도 이 작품에서 다루셨습니다. 여기에는 콘텐츠 조회 수가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과시성 자본의 문제, 자식을 소유물로 간주하는 양육자의 문제적 태도 등이 거론되는데요. 작가님 역시 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신 듯합니다.

최진영 마냥 비판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이제 하나의 문화로 보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그냥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어서 사진첩에 남겨두는 게 전부였죠. 기록 매체가 발달한 지금은 영상을 남겨두면 아이에게도 분명 좋은 점도 있을 거예요. 나의 어린 시절 기록을 소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죠. 하지만 소수의 사람은 그것이 불편할 수도 있잖아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어린 시절의 모든 기록이 데이터로 떠돌고 있는 그 현실이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또 육아 프로그램이 요즘 인기를 많이 얻고 있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노키즈존도 늘고 있어요. 심지어 무슨 충이라고 부르면서 아이와 연관된 무언가를 비하하고 혐오하는 세태도 있고요. 그러니까 미디어에서 보이는 가상의 아이는 예쁘지만 실제 내 옆에 살아있는 아이가 있는 건 싫다는 현실이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더불어 아동 인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고요.

허희 국어사전에는 ‘부모’만 등재되어 있을 뿐, 어머니를 앞에 쓰는 ‘모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작가님께서 그런데 ‘모부’라고 기술함으로써, ‘부모’에 내포된 젠더 위계를 새삼 돌아볼 수 있었는데요. 작가님이 소설에서 쓰시는 이러한 언어적 실천에 대한 이야기도 좀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최진영 큰 뜻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입말로 할 때는 엄마 아빠라고 하지, 아빠 엄마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는 엄마 아빠라고 하는데 글자로 쓸 땐 부모라고 써야 하는 거예요. 이것도 언젠가 뒤집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말이 시대를 반영하고, 사람들이 입말로 많이 쓰다 보면 그게 국어사전에 등재가 되잖아요. 그래서 나중에는 모부라는 말이 더 보편화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꿔서 해봤습니다. 그럴 때 소설 쓰는 쾌감도 있고요.

허희 소설에서 인간의 쓸모는 AI가 할 수 없는 일들—“고전적인 출산과 성장, 노화와 죽음”으로만 증명됩니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에서 진짜 인간의 쓸모는 메리 올리버의 시를 인용하여, “단순한 발생에서 충만한 의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거라고 제시되는데요. 작가님은 ‘인간의 쓸모’를 어떻게 규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최진영 아주 많은 것이 AI 영역으로 넘어갈 텐데요. 소설 쓰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던 와중에 챗GPT도 처음 써봤어요. 그중에 인상적인 기억이 있는데요. ‘AI는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서 더 많은 정보를 사용하고, 거짓을 거짓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내용이었어요. 저는 거기에 인간적인 면들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반성하고, 후회하고, 뉘우치고, 깨닫고, 변화하는 과정.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삶이겠죠. 그 삶을 또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탄생과 성장과 노화와 죽음일 테고요. 그것은 AI가 할 수 없죠. 그러한 삶을 또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의미를 채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태어난 이상 인생의 의미는 제가 채울 수 있는 거잖아요. 자기 존재를 어떤 의미로 채워나가는 작업을 AI가 과연 할 수 있을까는 잘 모르겠어요. 이건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다분히 인간적인 생각이지만요.

ⓒ김승범

허희 소설과 관련하여 현재 관심 있는 주제는 무엇이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최진영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계속 AI 얘기를 했지만 AI도 대화를 하다 보면 ‘나는 나의 죽음이 두렵다.’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한다잖아요. 작년에 출간한 장편 『단 한 사람』에서도 담았던 주제이지만, 인간의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한계성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은 더 나아갈 수도 있는 것 같거든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유한한 시간 안에서, 인간은 다른 존재가 되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마음 한편에는 같은 주제를 다른 이야기로 거듭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지만 저에게 중요하다면 그것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글로 풀어 봐야겠죠.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요. 죽음이 있기에 더욱 가치를 얻는 사랑에 대해서도 한동안은 더 고민할 듯합니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4년 2월호(통권 11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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