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월평] 춤으로 차린 만찬 무용 〈자아도취〉
[공연 월평] 춤으로 차린 만찬 무용 〈자아도취〉
  • 최교익(신한대 교수,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7.0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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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했던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최근에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단어의 한계를 벗어나 극장의 시각적인 공간도 낯설게 느껴졌다. 연극 연출을 하면서 언제나 잊지 않고 체크하는 것은 관객의 시각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연극은 주관적 입장보다 객관적 상황 인지가 우선시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연극이 아닌 무용이다. 무용은 연극과는 다른 차원의 무대 언어를 구사한다. 메시지의 전달 양식이 대사가 아닌 신체이기 때문에 연극보다 형이상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6월 8일~9일,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씨어터에서 공연된 〈자아도취〉(박명숙 예술감독, 최교익 연출)는 무용이라는 큰 울타리를 기준으로 현대무용, 한국무용, 발레, 의상이 결합되었다. 또한 미디어퍼포먼스의 매칭은 익숙한 무용을 낯선 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무용  〈자아도취〉라는 타이틀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은 ‘나르시시즘’일 것이다. 나르시시즘narcissism 또는 자기애自己愛, self-love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물에 빠져 죽었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생각의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기 멋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빗대어 표현한다는 것에 무게중심이 실린다. 무용  〈자아도취〉는 그런 면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안무가가 스스로의 재능과 자신의 개성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대중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까? 대중에게 던지는 메시지의 확고함은 결국 안무가의 의지요, 본인의 직관과 예술성을 믿고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심연의 심지일 것이다. 나아가서 둘째, 4명의 안무가가 각각  〈자·아·도·취〉의 음절을 나누어 의미를 새롭게 새기고 의상은 물론 빛과 소리, 영상으로 그들의 생각을 무대에 펼쳐놓는 것이다. 두 가지의 이중적 의미 결합은 안무가 4명의 창작 무용에 스토리를 얹음으로써 하나의 극 공연이 탄생하였다. 

 2005년, 뮤지컬 <그리스>를 시작으로 현재,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김광석 역을 맡은 김영환이 공연의 작가로 등장하여 자연스럽게 4개의 무용을 소개한다. 첫 번째 무용은 <자·아·도·취> 중 ‘자’이다. ‘자’는 “True self”를 이미지로 표현한 장혜주 안무가의 현대무용이다. 특이할 점은 안무가가 곧 무용수인 독무獨舞라는 것이고 소설을 인용한 안무의도가 표현과 명확히 일치했다는 것이다. “알을 깨뜨리기 위한 새의 처절한 투쟁.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스스로自. Sometimes, see through. 내면을 통한 자기실현은 알을 깨고 날아오르는 아프락사스가 된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은 현존 세계의 마지막을 의미한다. 답답한 구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의식이 마주한 새로운 세계…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접근하는 형상. 그렇게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스스로 다시 태어난다. 두 번째 무용은 <자·아·도·취> 중 ‘아’이다. ‘아’는 “Sprouts-새싹”을 무대에 펼쳐놓았는데 이고은 안무가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발레가 돋보이는 시간이다. 이고은의 새빨간 의상과 한 쌍의 무용수, 그리고 김영환의 연기 호흡은 무대가 실시간으로 이동하고 그 사이로 펼쳐지는 드라마와도 잘 버무려졌다. 특히, 거대한 무대에 올라선 이고은의 몽환적 이미지와 마이크 줄기를 타고 퍼지는 소리는 관객들의 시간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안무가가 작품을 통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젊은 나’에서 ‘나이 든 나’로 새로운 변신을 꿈꾸는 이야기. 새봄에 새싹처럼 맨 땅을 뚫고 나오는 용맹함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세 번 째 무대 ‘도’는 현대무용 김영미 안무가의 “Paint-그리다”이다. 감성 이미지를 액자식 구조의 영화기법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2인으로 구성된 과감한 여성 무용수들의 도플갱어 퍼포먼스가 뇌리를 강타한다. 한 여름, 타는 듯한 갈증에 갈망하던 얼음물을 들이키는 것과 같이 시각적 카타르시스가 접근해온다. ‘Paint’의 주된 포인트는 “시들지 않는 나팔꽃”이다. 탄생의 거룩함과 세월의 흐름과 주름. 삶의 접근 방식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선보인 ‘취’는 “Fascinated-취하다”를 미디어아트와 접목시켜 단원의 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한국무용 최원선 안무가는 두 대의 카메라와 프로젝트, 공연 중 무대의 전환방식으로 관객들을 낯설게 했다. 낯설음은 호기심으로 다가왔고 집중으로 이어졌다. 실시간 무용수들을 촬영한 영상은 미디어아트를 통해 왜곡된 채 관객들에게 비춰진다. 무용수들의 바른 움직임과 왜곡된 무용수의 영상을 동시에 바라보는 관객들은 우리가 평소 여성의 몸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왜곡된 상태로 인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한다.

 무용 <자아도취>는 성남문화재단의 제작/기획 공연으로 2020년, <자아도취 2탄>을 계획하고 있다. 무용의 다양한 실험 양식은 예술을 살찌우게 하는 것 같다. 내면의 울림, 춤이 우리를 부른다. 

 

 

* 《쿨투라》 2019년 7월호(통권 6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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