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기후 위기, 인공지능, 테라포밍: 최이수 『두 번째 달』
[문학 월평] 기후 위기, 인공지능, 테라포밍: 최이수 『두 번째 달』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1.05.2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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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 좋을, 하지만 덜 알려진 소설이 많다. 매일 여러 작품이 연재·출간되는 상황이고, 추천작 역시 이미 차고 넘치며, 사람들은 독서 말고도 할 일이 태산이다. 이러니 조명 받지 못하고 잊히는 소설들이 부지기수인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거액의 마케팅 비용을 들인, 유명해서 더 유명해지는 작가들의 소설만 다룰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책 소개하는 사람의 직무유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매스컴에서 앞다퉈 홍보하는 작품을 굳이 다시 권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나라고 그럴 때가 아예 없진 않다. 화제성 있는 작품을 다뤄 얻는 장점은 분명하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돼 쓰기 편하고, 독자들의 관심(깊이 있는 감응과는 전혀 상관없는 조회 수!)을 받기도 쉽다. 하나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해보려 한다. 이대로 묻히기에는 아까운 소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달』이라는 장편 소설이다. 최이수 작가가 올해 3월 말에 냈다. 낯선 이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종이책으로는 이 작품이 그의 첫 출간작이라 그렇다. ‘다른 이의 꿈’이라는 필명으로 낸 그의 전작 『다른 이의 꿈』과 최이수라는 이름으로 낸 신작 『느리게 가는 시계』는 전자책으로만 만날 수 있다. 전자책 시장이 커지고 있긴 하나, 여전히 주류 매스컴은 종이책 위주로 작품을 언급한다. 그런 환경에서 ‘조아라’, ‘브릿G’, ‘스토리야’ 같은 웹플랫폼에 소설을 연재하는 그의 이름이 호명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한데 이상의 사정을 감안해도 『두 번째 달』에 대한 짧은 서평조차 없는 현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출판사에서 다양한 매체에 각종 자료와 함께 책을 전달했을 텐데 어디에서도 『두 번째 달』에 관해 쓰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더 힘주어 《쿨투라》 지면을 통해 이 작품을 거론하는 것이다.

  그럼 이 소설은 어떤 점에서 읽을 만한가. 핵심 키워드는 기후 위기·인공지능·테라포밍(terraforming: 인간이 살 수 있도록 천체 환경을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풀어 쓰면, 이 책은 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로 한 번 종말을 맞이한 인류를 ‘인공지능’들이 합세해 ‘테라포밍’하여 인간을 지구에 부활시키는 광대한 프로젝트를 담은 서사다. 너무 어려운 내용 아닌가? 글쎄, 양자역학의 평행우주론을 도입한 마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도 대히트를 치는 요즘 시대에 이 정도가 문턱 높은 설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게다가 〈어벤져스〉 시리즈의 난적이었던 타노스의 목적(계속 늘어나는 생명체로 초래되는 우주의 불균형을 바로잡겠다)은 기후 위기를 점점 공포스럽게 경험 중인 우리에게도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 위기에 저항하는 활동도 이와 다 연결된 사안이다.

  툰베리는 지구 평균 기온이 높아지기 전에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지구 온도 몇 도쯤 올라가는 게 뭐가 그리 큰 문제이지? 이렇게 여기는 사람에게 『두 번째 달』의 다음 대목을 들려주고 싶다. 막연함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소설이 가진 미덕 중 하나니까. “지난 200년 동안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 양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 결과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녹아 들었고, 녹은 이산화탄소는 탄산으로 변해 바닷물을 약한 산성으로 만들었다. 비록 바닷물의 산성도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 연쇄반응은 상당수의 해양동물이 호흡하는 데 치명적인 문제를 가져왔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날 전 세계의 바다에서 물고기 사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해양생물의 떼죽음이 시작된 것이었다.

(……) 물고기 사체가 부패하기 시작하자 폭발적인 이산화탄소의 방출로 온실효과는 걷잡을 수 없이 강력해졌다. 그 결과로 해양생물의 떼죽음 이후 약 60년이 지나서 인류는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49쪽)

  (이산화탄소 증가로) 지구 온도 몇 도 올라가는 일이 이런 파국을 초래한다. 그래 봤자 작가의 상상에 기반한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최이수는 대학원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했다. 작가 후기에 그는 해양의 산성화가 인산염의 비율에 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플랑크톤 등의 미생물을 포함한 미시 생태계를 파괴해 결국 어류의 집단 폐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설득력 있게 추론한다. 그렇게 보면 DC 영화 〈아쿠아맨〉에서 주인공이 맞서 싸워야 하는 끝판왕은 아무래도 온난화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두 번째 달』의 또 다른 특징은 기후 위기를 극복해가는 인간의 승리를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구에서 인류는 절멸한 상태다. 여기부터가 출발점이고 자연스럽게 두 번째 키워드인 인공지능도 등장한다. 훗날 “두 번째 달”이라 불리게 될 기록보관소 ‘아에록’이 1인칭 화자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에록이 연산처리능력만 탁월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감정 훈련을 받아 조바심·절망감·연민 등 복합적인 정서로 이루어진 내면세계를 보유한 인공지능이라는 데 있다.

  덕분에 독자는 인간이 아니면서도 인간성을 공유하는 독특한 1인칭 화자를 체험할 수 있다.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거나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풍문에 겁먹은 사람을 안심시키는 데도 이 책은 효과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아에록 외 인공지능들도 그렇다. 인공지능다운 냉철한 판단에 특화된 ‘츤데레’ 캐릭터 AuTX-3463(자주 하는 멘트는 “바쁘니까 귀찮게 하지 말 것”), “사고 과정을 말로 표현해야” 프로그램 운용을 할 수 있는 까닭에 수다쟁이 캐릭터일 수밖에 없는 ScPA도 지구에서 인류를 재창조—진화시키기 위해 무진장 애쓴다. “다함이 없이 굉장히 많다”는 뜻인 무진장이라는 표현이 이들에게는 과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무려 10만 년에 걸쳐 ‘테라포밍’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 인공지능의 존재 이유가 지구에서 인류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해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분투하는 그들의 행위는 경탄을 넘어 숭고하게까지 여겨진다.

  소설의 백미인 본격적인 테라포밍 단계와 실행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당신의 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지 않겠다는 배려다. 『두번째 달』은 웹소설 특유의 순발력(간결한 문장으로 이뤄진 짤막한 문단 구성)과 흡입력(다음 회 업로드를 간절히 기다리게 하는 맺고 끊는 흐름 조절), 순문학에서 지향하는 인식적 통찰(비인간의 존재론)과 윤리적 메시지(연결성에 기반을 둔 차별 금지)를 고루 갖춘 작품이니까. 반갑게도 최이수는 『두 번째 달』을 잇는 후속편 『알골』(가제) 집필을 예고했다. 그 소설이 언제 나올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언할 수 있다. 그때 내가 『알골』을 읽으리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다 그럴 것 같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와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1년 6월호(통권 8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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