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그러나 다시 김수영: 『디 에센셜 김수영』(민음사)
[문학 월평] 그러나 다시 김수영: 『디 에센셜 김수영』(민음사)
  • 이지아(시인)
  • 승인 2022.05.05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탄생 백 주년 기념 이후에도 김수영(시인, 1921-1968)에 대한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문학에서 김수영 신화는 모더니즘 입장과 현실 참여 입장 모두에게 관심을 받았으며, 중요한 비평 분석 대상이 되어 왔다. 그는 한국전쟁 체험과 4·19혁명 세대를 통과하면서 세계의 부조리와 타협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정’하며 설움과 비애를 승화시켜 여러 시의 색깔로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나 시나 시론에 함의된 자유 정신이나 끈질긴 시적 방법론 탐구 및 미적 성과들은 오늘날 문학적 심재가 필요한 우리에게 즐거운 귀감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왜 계속 김수영일까. 그는 쉽게 시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언한다. “나는 사후 백 년 후에 남을 시를 쓰려고 노력할 수는 없지만, 작품이 끝난 후 반년 정도의 앞을 예언할 만한 시는 쓰고 싶다”(397-398쪽)라고. 그는 시의 ‘혁명’을 추구한다. 혁명이란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 바꾸는 것. 자신을 반성하고 다르게 나아가야 하는 것을 말한다. 기존의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혁명에 대한 해석은 해방 후 비참한 현실, 한국전쟁과 포로 생활, 4·19 사건 등 외적 문제들에 대한 배경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이번 글에서 사회학적 범주가 아닌 다른 의미의 ‘혁명’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시의 정신, 즉 엄격한 자기 검열, 냉정한 자기반성을 통해 시작되는 것이다. 세계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 이런 양면적인 시의 표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모습을 갖추기 전에 시인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김수영의 시는 “백 년 후”에도 계속 전해져야 하며, 그의 작품이 “앞을 예언할” 수 있게 우리는 지속적으로 다양한 독해를 해야 한다. 시인은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 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달나라의 장난」)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에 대해서도 그런 반성을 자주 행한다. 시를 발표하고 난 후에 그 시를 만일 자기가 시집을 낸다면 거기에 끼워 넣을 것인가 아닌가 말하자면 자신의 시로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를 그는 매번 반성한다. 그리고 판결을 내린다. 그의 시에도 침을 뱉는 것이다. (김현, 『상상력과 인간/시인을 찾아서』, 397쪽.)

  덧붙여, 평론가 김현은 그의 시에 드러난 새로움과 정직함에 대해 논했다. 그 정직함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적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김수영은 “시를 발표하고 난 후에 그 시를 시집에” 넣을 것인가, 뺄 것인가 반복적으로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김수영은 시의 미완결성, 혹은 상투성이 시를 낡은 것으로 이끌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김수영은 “그의 시에도 침을 뱉는” 시인이었다고 한다. 「구름의 파수병」이나 「거미」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결국 그 자신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더욱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김현, 위의 책, 399쪽.)

  또한 김현은 김수영이 반성적인 시적 태도와 더불어 다른 이들의 시를 평가하는 엄격함을 말한 바 있다. 김수영이 박인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더불어 외국 시나 이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치밀하고 엄정한 행동을 보였으며, 문학적 논쟁에 대해서도 늘 진지하고 치열했다고 한다.

  이러한 반성적 태도에 기인한 김수영의 시적 ‘혁명’은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김수영은 끊임없이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데, 김수영이 말한 혁명은 무엇인가를 바꾸는 물질적 변화나, 제도의 파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김수영의 혁명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기 합리화, 자기 동일에 대한 모습을 배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배반하는 자신을 또 배반하며,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깃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389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닿아야 할 곳은 혁명을 통해 “시의 미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시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해야 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문학의 실험은 “시의 예술성이 무의식적인 것”(384쪽)에 있으며, 그는 불가능한 ‘내일’, ‘미지의 시’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내일의 시는 미지未地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정신은 언제나 미지다. 고기가 물어 들어가야지만 살 수 있듯이 시인의 미지는 시인의 바다다.”(356쪽) 시인의 정신은 언제나 “미지”에서 일어난 일이며 그 일들은 ‘내일’을 만든다.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
나무여 영혼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성장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 온 일
정리는
전란에 시달린 20세기 시인들이 하여 놓은 일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
그리고 교훈은 명령은
나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
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지지한 노래를
더러운 노래를 생기 없는 노래를
아아 하나의 명령을
- 「서시」 전문


  진정한 “내일의 시는 미지”임에도 불구하고 김수영은 그동안 자신의 시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를 불러왔다고 반성한다. 그는 어디인지도 모를 미지의 곳에 “정지”하여 “피곤한 몸”을 앉히며 “미”적인 것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명령”이 많은 이 세상에서도 “나무”와 영혼”들은 자라고 있다. 명령의 과잉을 견디며 이 땅의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세상은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며, 바뀌어야 하는데, 시인은 시를 통해 다른 노래를 시작한다. 명령이 많은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또한 “더러운 노래”나 “생기 없는 노래”도 부를 수 있다. 시인은 시의 혁명을 위해서 어떤 것이든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시 마지막 부분에 억압과 고통의 “명령”을 시를 지키기 위한 다른 “명령”의 의미로 전환 및 변주해 가면서. 이 세계를 극복해가고 있는 것이다. 시를 새롭게 창조해 가면서 그는 해방되는 것이다. “진정한 힘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오오 창조”라고 외치면서. (432-433쪽)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 「사랑」 전문

 

  이렇듯 김수영의 시는 반성적 ‘혁명’을 통해 새로운 ‘창조’에 이르게 된다. 시의 창조는 ‘미지’의 장소에서 일어나고 ‘내일’을 만들어 간다. 그 내일의 모습은 비로소 ‘사랑’의 형태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내내 우리가 꿈꾸는 사랑은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대상이다.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서 사랑은 꺼졌다가 살아나기도 한다. 멈췄다가 살아나는 세상의 불안 속에서 사랑의 얼굴은 “금이” 갈 테지만, “번개처럼” “너”는, 반드시 시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래서 김수영이 추구하는 시는 무한한 사랑, 무한한 꿈이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시의 뉴 프런티어,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무한한 꿈이”(351쪽)라며 후세에 전하고 있다.

 


이지아 2000년 《월간문학》에 희곡이, 2015년 《쿨투라》 신인상 공모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오트 쿠튀르』가 있고, 연구서로 『한국시극작품과 공간현상학』(소명출판)을 출간 준비 중이다. 제4회 박상륭상을 수상했다.

 

* 《쿨투라》 2022년 5월호(통권 95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