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인문학 전공자의 ‘수업시대’를 잘 드러낸 한독 소설
[북리뷰] 인문학 전공자의 ‘수업시대’를 잘 드러낸 한독 소설
  • 박영민 기자
  • 승인 2024.05.07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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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장편소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독일에서 거주하며 인문학 N잡러로 활동하고 있는 김세희의 첫 장편소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도서출판 작가)가 출간되었다.

저자 김세희 작가는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2021년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인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통역 및 번역, 포워더 등 다양한 직업군을 거쳐 왔다. 약 12년 동안 독일에 거주하며 평범한 N잡러로서의 삶을 살아온 젊은 작가의 사적 체험이 소설적 상상력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책의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이 소설은 오랜 시간 동안 갱신되지 못한 한국의 관념 성장 소설 리스트에 새로운 목록 하나를 추가해 보겠다는 바람”으로 기획되었다.

 

“네 이름, 세이야 세희야?”

“세희. 근데 독일 사람들이 발음을 잘 못해. 내 이름의 철자를 읽으면 제에- 이렇게 발음하더라고. 미국에선 아무 문제가 없었거든. 다들 내 이름 읽으면 원래 발음대로 비슷하게 하는데 독일 사람들은 잘 못하더라고. 매번 설명해 줘야해서 스트레스야.”

“난 세이 맘에 들어. 라캉이 생각나는군. 말하는 주체. 넌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어. 그렇게 웃지만 말고.”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그는 왜 저렇게 잘 아는 건지.

“생각만 하지 말고 나한테 말을 하라고. 너 글자론 꽤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내 앞에선 전혀라고 만치 말을 안 하잖아.”

아직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말야.

- 「Kapital 1」 중에서, 본문 18-19쪽

 

독일로 유학간 세희가 그 어렵다는 독일어 습득을 위해 거의 사투하다시피 하고, 더욱이 사람 살 곳 못 되는 베를린을 혐오하면서도 결국 헤어나지 못하고, 사랑하며 살며 자신의 글을 완성해가는 모습은 21세기 한스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주인공 세희는 마음의 상처뿐만 아니라 몸의 상처도 많이 당하는 나약한 20대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국적, 다양한 성적 지향, 다양한 연배의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자기가 가진 호기심의 실체와 끝까지 대면하려고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출판 그 자체보다도, 혼자만의 감성에 취해 글을 쓰던 밤보다도, 원고를 수정하고 고치는 일을 수십 번 넘게 반복하던 그 순간이 나를 작가로 만든 것 같다. 사람들에게 냉정하게 비판 받고 나와 다른 의견과 부딪히고 수없이 생각하고 글자를 바꾸면서 나는 글을 쓰는 일이 고독한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의지와 생각이 반영될 수 있는, 확장된 성격을 가진 협업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이 나를 더 깊은 차원의 사유와 자유로 연결시켜 주었다. 자유로운 사유가 현실에서 제대로 설득력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치밀한 필연을 요구하는지 그전에는 미처 몰랐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김세희 소설가.

“치열하게 정제된 문장과 이야기들을 만나는 가운데 그 속에서 좀 더 내밀한 인간의 마음의 상을 꺼내고 싶다”는 저자는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이렇게 고백한다.

“Curiosity kills the cat, 너 이 속담 알아?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난 이 말에 동의해. 호기심에 죽어나간 건 항상 나거든. 그래서 또 사는 게 지루하지 않았던 거야. 난 지루한 게 죽기보다 싫어. ”

솔직하고도 발칙한 그녀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으로 환원되지 않는가.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는 “일단 재미있다”며, ”치밀한 디테일의 묘사와 적절한 철학적 이론들의 조합은 인문학을 전공하는 주인공의 ‘수업시대’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평한다.

 

Woher kommt die Katze? Ich finde, sie kommt aus nirgendwo.
이 고양이는 어디 출신이지? 한국산도 독일산도 아닌 것 같아.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솔직히 말하자, 난 독일에도 한국에도 어느 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 내가 아무리 독일에서 한국산 딱지를 붙이고 다녀도 한국에선 수입품 취급 당해도 상관없어. 아무 곳에도 속하고 싶지 않다고. 결정된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건 여전히 내게 힘들었다. 소녀도 여자도 엄마도 되고 싶지 않은 나, 경계를 즐기는 나. 그런 내가 단 한 가지 간절하게 되고 싶었던 것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어. 그게 되고 싶어서 오늘도 글을 읽고 쓰고 투쟁하는 것뿐이야. 그게 될지 말지 어제도 오늘도 불확실한 건 마찬가지고.

- 「Kapital 10」 중에서, 본문 451쪽


작품의 해석과 평가에 대한 불안까지 모두 수용할 수 있게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의 진정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고 고백하는, 지금 여기의 당돌한 한 젊은 신예작가! 김세희 소설가의 솔직 발랄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유쾌한 스토리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 《쿨투라》 2024년 5월호(통권 11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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