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리뷰] 야생의 정글에서 ‘나’를 찾기: 국립현대무용단 〈정글〉
[무용 리뷰] 야생의 정글에서 ‘나’를 찾기: 국립현대무용단 〈정글〉
  • 박재희 인턴기자
  • 승인 2024.05.0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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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국제현대무용제의 공동개막작으로 큰 관심을 받았던 동시에 10월 초연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국립현대무용단 김성용 단장 겸 예술감독의 〈정글-감각과 반응〉이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2024 레퍼토리 작품 〈정글〉로 지난 4월 11일(목)부터 4일간 무대에 올랐다.

국립현대무용단에 작년 부임한 김 감독은 ‘감각과 반응’에 초점을 맞춘 무브먼트 리서치 ‘프로세스 인잇Process Init’을 개발하였다. 이로써 비정형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어 예술적 영감을 무대 위에 구체적으로 가시화시켜 보다 감각적인 안무를 선보였다. 이번 작업은 프로세스 인잇을 통해 이끌어낸, 개개인의 몸에 축적된 감각과 상호 간의 반응을 탐색하며 움직임의 변화와 확장을 창의적으로 해석한 안무로 구성되었다.

〈정글〉은 야생의 정글로 표상되는 무대 위의 본능적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17명의 무용수들은 감각적인 움직임을 통해 동물과 식물, 빛과 바람 등 정글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어 상호작용한다. 무대는 점차 활동 범위를 넓혀가며 다양한 구성의 안무를 보여준다. 무대미술과 몸의 조화로 이루어진 정글에서 무용수들은 고요한 전쟁을 치른다. “이번 〈정글〉 무대에서 무용수 17명 개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고 밝힌 김 감독의 말에 따르면, 무용수들은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움직임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경쟁을 한 것이다. 이렇듯 소리 없는 경쟁을 벌이는 무용수들의 모습을 통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현대인의 삶을 겹쳐볼 수 있었다. 

초연보다 한층 더 새롭고 깊어진 무대를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김 감독의 “올해 〈정글〉은 정글 안에 들어와 있다”는 설명에 걸맞게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이번 공연의 창작진들이 예술적으로 합을 맞추어 새로운 정글로 재탄생하였다.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Sakamoto Ryuichi, 안무가 다미안 잘레Damien Jalet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한 경험이 있는 일본의 사운드 아티스트 겸 작곡가 하라 마리히코Hara Marihiko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하였다. 단순한 열대우림의 소리가 아닌, 무용수들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는 새로운 정글의 소리는 이번 〈정글〉이 창작진들의 완벽한 하모니로 탄생한 공연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한다. 또한 무대미술은 김 감독과 오랜 호흡을 맞추며 독창적인 무대디자인을 선보이는 시노그라퍼 유재헌이 맡아 정글이라는 무대에 신비함을 더했다. 의상을 맡은 배경술은 무용수 유경험자로, 누구보다 무용수의 움직임을 잘 이해하는 디자이너로서 무용수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정글〉에 힘을 보탰다.

〈정글〉 공연에 앞서, 이와 연계되는 관객 참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리슨 투 유어 바디〉 다큐멘터리 댄스필름 상영회가 지난 3월 16일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리슨 투 유어 바디〉(안무 김성용, 연출 유소라)는 〈정글-감각과 반응〉이 초연되기까지 4개월의 작업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댄스 필름이다. 김 감독의 프로세스 인잇을 기반으로 안무가와 무용수 사이에 오고 가는 이야기들을 다루며 그 과정에서 창작되는 안무적 표현들을 그려냈다. 상영 후에는 〈리슨 투 유어 바디〉를 감상하며 떠오른 궁금한 점을 연출과 안무가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또한, 4월 13일(토) 공연 종료 후에도 이번 〈정글〉 재연에 관해 안무가, 무용수와 소통할 수 있는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어 대중이 현대무용에 대해 느끼는 장벽을 낮출 수 있었던 유의미한 자리였다.

〈정글〉은 오는 7월 23일(화) - 24일(수) 이틀간 2024 파리 올림픽을 기념하여 파리 13구 극장에서 한국 현대무용의 매력을 알리고자 프랑스 현지 관객 앞에 선다. 이어지는 하반기에는 부산, 세종 등 국내를 순회하며 다양한 지역의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정글〉은 사회라는 ‘정글’에서 야생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이 벌이는 특징적인 움직임의 경쟁은 우리가 살아가는 ‘정글’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고유성’은 어떠한지에 대한 사유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 《쿨투라》 2024년 5월호(통권 11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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