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한국 포크의 지금
[음악 월평] 한국 포크의 지금
  • 서영호(음악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20.04.02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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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와 설빈’의 《노래는 저 멀리》와 연영석의 《서럽다 꿈같다 우습다》
ⓒ여유와설빈

 포크는 가장 미니멀하고 소박한 양식을 지닌 음악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멜로디와 가사가 오롯이 서지 않으면 곡을 이끌어갈 추동력을 얻을 곳이 없다. 비트만으로 가슴 설레는 일도 없고 신박하고 힙한 사운드 같은 걸 통한 쾌감도 없다. 그런 걸 기대하고 듣는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록이나 발라드도 유려한 멜로디가 중요한 장르이기는 하나 포크에는 저들이 가진 폭발하는 사운드도 열창도 없다. 어쩌면 그래서, 이렇게 담대하게 드러낸 멜로디와 가사만으로 정면승부를 벌이고 이렇다 할 절정부도 없이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는 포크는 온전한 작가주의 싱어송라이터를 지향하는 아티스트들의 자연스런 선택지인 경우가 많았다.

 BTS의 화려하고 요란한 음악이 세계를 강타한 요즘에도, 한편에서는 관조와 사색의 음악인 포크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니, 한국대중음악상이 선정한 2019년 최우수 포크앨범 부문 중 두 후보작들을 통해 한국 포크의 지금을 확인해보려 한다.

[음악 월평] 한국 포크의 지금
ⓒ여유와설빈

 먼저 소개할 음반은 혼성 듀오 ‘여유와 설빈’의 정규 2집 《노래는 저 멀리》다. 이들의 음악은 섬세하고 짙은 서정성을 미덕으로 한다. 섬세한 음악은 여린 경우가 많고 짙은 음악은 숨죽임을 요구할 때가 많다.

 BGM으로만 소비하면 그 미덕을 포착하기 쉽지 않다. 이런 음악은 본격적인 자세로 감상해야만 비로소 그 보상을 준다. 이들의 서정성은 정통적 포크 양식인 통기타 위주의 소박하고 따뜻한 사운드 질감의 충실한 구현, 아름다운 멜로디와 또 그만큼의 역할을 하고 있는 여백 등에서 온다. 가끔 밴드사운드가 덧입혀지거나 통기타 자리를 전자기타가 대신하기도 하지만 이때도 톤만 바뀔 뿐 그 역할은 다분히 통기타적이며 전체 사운드의 중심은 기타와 목소리이다. 그리고 구성의 단출함이나 나지막이 읊조리는 듯한 창법에 기인하는 포크 음악에서의 여백들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건져 올리는 데 성공했을 때 비로소 더 의미 있는 음악적 시간으로 공간을 채우곤 하는데 바로 첫 번째와 두 번째 트랙인 <그곳에 노래를>과 <초록>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초록>은 간결하면서도 캐치한 멜로디와 이를 테마로 활용한 잘 짜인 기타 리프로 팝으로서도 훌륭한 성취를 거두고 있다.

 한편 이들의 음악에서 귀를 기울이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이리저리 교차하는 남녀의 보컬이다. 곡에 따라 때로는 혼자, 때로는 함께 단선율과 화음으로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혼성 듀오가 보여줄 수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 <초록>은 여기서도 돋보이는데 파랑과 노랑의 만남인 ‘초록’은 각자의 보컬이 만나 함께 노래하는 초록이며 이는 곧 ‘파란 하늘 노란 꽃 한 송이를 피우고 날아드는 평화’인 것이다. 여리고 순수하고 작은 것을 자유롭게 노래하는 포크.

ⓒ맘대로레이블

 한편 연영석이 14년의 공백 끝에 내놓은 《서럽다 꿈같다 우습다》는 ‘여유와 설빈’의 음악과 결이 조금 다르다. 사실 포크라는 범주 안에 함께 묶일 수 있다는 것 정도 말고는 많이 다르다. 그가 노래를 짓는 방식, 노래하는 방식, 노래하는 것 모두 그러한데 이 중 가장 다른 것은 그가 노래하는 내용이다. ‘여유와 설빈’이 자기만의 공간에서 지극한 개인의 서정을 노래한다면 연영석의 노래 속 화자는 문을 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든다. 어쩌면 우리 역사와 사회가 한 편에 안고 있는 어둡고 슬픈 현실을 적극적으로 찾아갔다고 하는 게 맞겠다. 대다수 국민의 삶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는 <윤식이 나간다>와 <내 이름은 진아영>을 통해 드러낸 조선소 노동자와 4.3 사건 피해자의 삶의 이야기들, 이 이야기에 누군가는 그 슬픔에의 공감 여부에 상관없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연영석은 누군가는 우리 사회의 엄연한 일부인 이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름으로써 알리고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그의 재능과 완숙함은 거부감이나 억지스러움 없이도 자신의 신념대로 이러한 이야기들을 스미게 할 수 있는 노래들을 낳았다. 멜로디는 술술 흐르듯 자연스러우며 좋은 연주와 균형 잡힌 사운드는 가사를 제하고도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귀가 즐겁다.

ⓒ맘대로레이블
ⓒ맘대로레이블

 지금 우리가 포크라고 일컫는 이 음악은 미국에서 건너온 모던포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식 문화의 외양을 동경하기에만 바빴던 1960,70년대 한국의 포크 수용과정에서 모던포크의 진보적 사회의식은 거의 상실된 상황이었다. 이후 한대수, 김민기, 정태춘 등이나 이른바 민중가요계에서 그 맥을 이어 오긴 했으나 오늘날의 포크에서 세상에 대한 고민은 점점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포크가 사회 참여적 관점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 세상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큼이나 개인의 감정과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과 서정도 큰 울림을 준다. ‘여유와 설빈’의 감성도 연영석의 시선도 모두 필요하다.

 

 

* 《쿨투라》 2020년 3월호(통권 6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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