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외도의 길에서 정도의 길을 찾다":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인터뷰
[INTERVIEW] “외도의 길에서 정도의 길을 찾다":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인터뷰
  • 양경미(영화평론가, 연세대 겸임교수)
  • 승인 2022.06.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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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이사장 인터뷰
김동호 이사장 인터뷰

  계절의 여왕 5월이면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 칸Cannes에서는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제가 열린다. 5월 17일 시작해 열흘 동안 진행되는 칸 국제영화제다.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치러지는 영화제에 한국영화가 세 편이나 출품됐다. 칸영화제와 깊은 인연을 지닌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인이자, 한국에 영화제를 처음으로 창설한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 16일 경기도 광주 자택을 찾았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소지한 그는 양복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직접 내려주었다. 매너 좋은 노신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김 이사장은 한자리에서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는 데도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에게 칸영화제와 영화 인생에 대해 들어보자.

  칸영화제와의 인연

  제75회를 맞이하는 칸영화제는 세계 최고의 영화제이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화제입니다. 물론 1932년 창설된 베니스영화제도 있습니다만,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와 연출하는 모든 영화인이라면 한 번쯤 칸의 레드카펫을 밟고 싶어 하죠. 그런 의미에서 칸은 전 세계 영화인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1996년 부산영화제를 창설하면서 그해부터 영화제 준비를 위해 칸에 처음 갔고 최근 3년을 빼고 매년 갔어요. 1997년은 칸영화제가 50주년이 되던 해였는데 그때까지도 한국영화는 5편밖에 상영되지 못했죠. 하지만 제가 국제영화제를 돌며 캠페인을 펼치면서 1998년에만 무려 4편이나 상영했어요. 1999년에는 단편영화만 4편이 갔는데 그중 송일곤 감독의 〈소풍〉이 단편영화지만 처음으로 상을 받았고 장편영화로는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경쟁 부분에 올라갔어요.

  1984년 이두영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가 처음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에 1989년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가는 까닭은〉이 같은 부문에 상영됐죠. 1994년에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신상옥 감독이 처음으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심사위원에게는 자신의 영화를 상영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당시 〈증발〉이 상영됐어요. 1996년 양윤호 감독의 〈유리〉가 ‘비평가주간’에 1997년에는 전수일 감독의 〈내 안에 우는 바람〉이 상영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8년에는 4편의 영화,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단편영화까지 상영됐죠.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나면 감독과 배우는 기립박수를 받는데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영화도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어요. 1997년 로테르담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했는데 4~5일 간격으로 베를린영화제가 있었어요. 그때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프랑스로 건너가 칸 사무실에 들러 완성 단계의 한국영화들이 초청받도록 교섭했어요. 2월 당시 칸의 집행위원장인 질 자콥에게 자료를 잔뜩 챙겨줬죠. 2000년 처음으로 〈춘향뎐〉이 경쟁부문으로 선정되어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이태원 사장이 레드카펫을 밟게 됐는데 거기서 서로 부등켜안고 울고 난리가 났어요.(웃음) 2년 뒤인 2002년 〈취화선〉이 감독상을 받았는데 경쟁부문에서 상을 받은 건 처음이에요.

왼쪽부터 김동호 이사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 장 미셸 프로동 《카이에 뒤 시네마》 전 편집장,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사진제공_김동호 이사장
왼쪽부터 김동호 이사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 장 미셸 프로동 《카이에 뒤 시네마》 전 편집장,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사진제공_김동호 이사장

  대한민국의 한류 열풍의 주역

 〈취화선〉때 심사위원 중에 크리스틴 하킴이라고 인도네시아의 국민배우가 있는데 1997년에 부산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왔었거든요. 그때부터 친분을 쌓았어요. 칸의 심사위원으로 11명에서 19명 정도가 위촉되고 그중에서 반 정도가 여자배우들인데 입김이 상당히 세요.(웃음) 아침에 기자시사회를 할 때 하킴을 통해 다른 심사위원들도 영화를 볼 수 있게 권했죠. 그리고 해외 영화인들과 신뢰와 우정을 쌓는 데도 노력했어요. 2002년 ‘타이거 클럽’을 결성했는데 세계영화계 애주가들이 모인 사조직이죠. 회원은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 감독,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 로테르담영화제 집행위원장 사이먼 필드, 네덜란드 원로 언론인이자 영화평론가인 피터 반 뷰런, 그리고 나까지 모두 다섯이에요. 로테르담영화제의 로고가 호랑이고 제 이름 끝에도 ‘호虎’가 들어가 ‘타이거 클럽’이란 이름을 붙였어요.(웃음) 우리는 로테르담, 베를린, 칸에서 자주 만났고 특히 부산에선 매년 모였어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불릴 만큼 좋은 영화들이 많이 등장했어요. 한국영화 점유율은 50%를 선회하며 관객 수도 1천만 관객을 넘었어요. 우리 영화가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고 유수영화제에서 수상할 수 있는 것도 제 노력보다 한국영화의 질적인 성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죠.(웃음)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대상(그랑프리)으로 두 번째로 큰 상을 받았고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심사위원상을, 2010년에는 〈시〉가 각본상을 받게 됐죠. 올해는 〈기생충〉이 세계 영화의 정상에 올라서 한국영화의 재도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요. 칸에서도 인정받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경쟁부문에 올라가서 기대하고 있어요.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하면 좋았을 텐데 이번에는 제가 칸에 가지 못했습니다.

1989년 9월, 〈아제 아제 바라아제〉 팀과 모스크바 영화제에 동행한 김동호 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오른쪽). 왼쪽부터 태흥영화 이태원 사장, 임권택 감독, 배우 강수연.
1989년 9월, 〈아제 아제 바라아제〉 팀과 모스크바 영화제에 동행한 김동호 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오른쪽). 왼쪽부터 태흥영화 이태원 사장, 임권택 감독, 배우 강수연.

  한국영화계 큰 별 배우 강수연과의 인연

  지난 7일 비통한 일이 있었는데 배우 강수연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된 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가 장례위원장을 맡았는데 병원에 입원하던 때부터 장례가 끝날 때까지 곁을 지켰어요. 그러면서 영화계 크고 작은 행사에도 참석했는데, 이번 칸영화제까지 참석하는 것은 무리라며 주변에서 만류했어요. 강수연 배우와의 인연은 제가 사장으로 부임하던 영화진흥공사 시절인데, 그때 한국영화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몬트리올, 모스크바 등 주요 국제영화제에 대표단을 구성해 참가했고 강수연 배우는 1989년 모스크바영화제를 인연으로 처음 만나 33년간 격의 없는 절친으로 지내왔어요. 부산영화제 첫해부터 내가 퇴임할 때까지 개막식과 폐막식 단골 사회자로 나왔고 때론 심사위원도 맡았지요. 부산영화제를 떠난 뒤인 2013년 제가 만든 단편영화 〈주리Jury〉에서는 주연으로 출연했어요.(웃음) 리더십도 뛰어나서 부산영화제가 위기에 처했던 2015년에는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정상화한 뒤, 2017년 10월 제22회 영화제 폐막식과 동시에 영화제에서 나왔죠. 타고난 배우이고 명석하고 창의적인 사람인데…. 안타깝게도 연상호 감독의 〈정이〉가 유작이 됐네요.

  김동호 위원장의 영화인생

  저는 공직 생활을 먼저 시작했어요. 1961년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서 문화부 차관으로 마무리했는데, 퇴직 후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가게 됐어요. 그때 영화계의 많은 반발이 있었죠. 영화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화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영화단체를 돌며 현안을 논의했고 그때부터 영화에 관심을 갖고 영화도 많이 봤어요.(웃음) 종합촬영소를 지은 것도 영화인들을 밤낮으로 만나면서 필요성을 알게 된 거예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의견을 나눈 것은 무엇보다 필요해요.

  부산영화제 시절에는 해운대에서 미포까지 포장마차가 있었는데 밤새 영화인들과 술잔을 나누고 150잔까지 마신 적 있어요.(웃음) 시작은 공직에 있다가 영화로 외도를 한 건데, (영화진흥공사 사장, 예술의 전당 초대 사장,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 최근 강릉영화제까지) 어느새 정도의 길을 걷고 있네요.(웃음) 어떤 자리에서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19년부터는 강릉영화제를 맡고 있는데 규모와 사이즈 면에서 부산영화제와 비교할 수 없지만, 지역적 특색을 맞춰 정체성을 살리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영화제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영화제는 물론 문화예술이 정치적인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강릉영화제는 정치인이 발언할 기회가 전혀 없어요. 한국영화가 K-콘텐츠로서 세계적 명성을 날릴 수 있는 것도 정치와 연관성이 적었기 때문이에요. 다만 정부는 문화예술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 좋을 것 같은데, 지난 정부도 이번 정부도, 문화예술에 관한 정책이 부족한 듯 보여 아쉬움이 있어요.

  지금도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고 있는 김동호 위원장은 아직도 현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사에 칼럼을 쓰고 있다. 여느 청년 못지않게 에너지가 넘친다.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이 비결일까. 한국전쟁 후, 학창시절에는 청량리에서 화동의 경기고등학교까지 2시간을 걸어서 통학했고 지금은 테니스를 즐긴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친 뒤 신문사에 사진을 보내기 위해 직접 운전하고 우체국으로 간다. 인터뷰 동안 김 위원장은 영화에 대해 진심인, 진정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느끼게 했다. 영화인들이 그를 존경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양경미 영화평론가, 연세대 경제대학원 영상콘텐츠전공 겸임교수, 한국영상콘텐츠학회장
전)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직무대행, 전)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분류심의위원,
전)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인정소위원회 위원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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