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관객 스스로가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한 박찬욱 감독
[INTERVIEW] “관객 스스로가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75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한 박찬욱 감독
  • 이은주(서울신문 기자)
  • 승인 2022.06.0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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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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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인 박찬욱(59) 감독이 제75회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품에 안았다. 한국 감독으로서는 〈취화선〉(2002)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에 이어 두 번째 감독상 수상자다. 2004년 〈올드보이〉(심사위원대상), 2009년 〈박쥐〉(심사위원상)을 받아 ‘깐느 박’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그는 역대 세 번째 수상으로 다시 한번 전 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에 있는 ‘K-무비’의 저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그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표 로맨스물’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동시에 그의 영화의 변곡점에 서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등에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나 금기를 파격적인 방식으로 그린 전작들과 비교해 폭력성과 선정성은 확연히 덜하다. 하지만 그의 영화 중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로맨스와 코미디가 중심에 있는 영화를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또 하나의 ‘로코’를 만들었을 뿐이죠. 무엇보다 미묘하고 우아하며 고전적인 멜로 영화를 찍고 싶었습니다.“

박찬욱 ⓒChristophe Simon / AFP

  박 감독의 6년만의 신작 〈헤어질 결심〉은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에게 의심과 사랑을 동시에 느끼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수사 멜로물이다. 그는 “사랑은 인간이란 종족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관계의 유형”이라고 말했다. 칸 현지에서 만난 그에게 폭력과 정사신이 없는 ‘순한 맛’ 멜로를 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전작같은 감각적인 면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막 들이대기보다는 좀 관객 스스로가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를 찍어보려고 했어요. 관객에게 너무 들이대면 자꾸 뒤로 물러나게 되는데, 조금 보여주면 또 앞으로 다가오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박 감독은 이 영화가 육체적 연애보다 정서적 연애에 집중한 ‘어른들의 멜로’라고 여러차례 강조하면서 “두 주인공은 자기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에는 관객이 바로 알아챌 수 있는 대사나 표현이 등장하기 보다는 주인공들이 진심을 숨기는 순간이 더 많습니다. 때문에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이어야 파악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극단적인 폭력이나 정사신을 넣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장면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안 넣었을 뿐입니다. 다른 감독이라면 이런 질문을 받지 않았을텐데….(웃음)”

  박 감독은 취조실에서의 두 번째 심문을 이 영화에서 핵심적인 장면으로 꼽으면서 “우스우면서도 동시에 슬프고, 주인공들이 중의적으로 마음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신체 접촉조차도 전혀 없는데 말할 때 뭔가 좀 도발하는 눈빛, 그런 자극을 하는 말 한마디가 ‘심쿵’하게 만드는 순간들, 작은 미소 등으로 가슴이 더 크게 내려앉는 그런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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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멜로의 원형을 덧입힌 수사극에 외신은 열광했고 “매혹적이 네오느와르 영화”, “박 감독의 연출이 절정에 오른 느낌”이라는 호평을 내놨다. 또한 칸영화제 공식 소식지 《스크린 데일리》에서 영화제 기간 내내 최고 평점을 기록했다. 그는 〈헤어질 결심〉을 만드는 데는 스웨덴 범죄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와 어른스러운 사랑의 원형을 담은 영화 〈밀회〉(1945)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을 찍을 때쯤 고전적인 풍미를 가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구체적으로 『마르틴 베크』에 나오는 배려심 있고 예의도 갖춘 형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범죄영화와 가수 정훈희가 1967년 부른 가요 〈안개〉를 사용해 로맨스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 두 가지가 합쳐지면서 이 영화가 탄생한거죠.“

  영화 전반부는 산, 후반부는 바다를 배경으로 살인범과 살인범을 풀어 준 형사의 금지된 사랑을 그린다. 고급스러운 미장센과 은은하게 퍼지는 정훈희의 노래 〈안개〉가 아시아영화 같은 로맨스극을 완성한다. 하지만 소재만 놓고 보면 익숙한 스토리인 것도 사실. 박 감독은 영화의 1부가 끝나고 2부가 새로 시작할 때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이 작품의 가장 큰 차별점으로 꼽았다.

  “팜므파탈인 줄 알았던 여성이 대상화되거나 신비화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끌고 나가면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이 기존 작품들과의 가장 큰 차별점입니다. 그것이 제가 이 영화에서 이루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고요.”

  박 감독은 감독상 수상 직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충무로의 명콤비’ 송강호와 함께 나란히 프레스센터에 들어섰고 국내 취재진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외신들의 극찬이 쏟아졌던만큼 황금종려상 불발에 대한 실망감은 없을까.

  그는 “사실 평점들이 수상 결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경험이 많아서 잘 안다”면서 웃었고, 옆에 있던 송강호는 “그래도 (외신에서) 최고 평점을 받은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며, 감독상도 황금종려상 이상의 의미가 있는 상이라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한국영화가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 칸영화제에서 2관왕에 오르는 등 ‘K-무비’가 주목을 받는 비결에 대해 박 감독은 수준 높은 한국 관객을 이유로 짚었다.

  “한국 관객들은 웬만한 영화에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장르영화 안에도 웃음, 공포, 감동이 다 있기를 바라죠. 우리가 많이 시달리다 보니 한국영화가 이렇게 발전한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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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박 감독은 경쟁 부문에 나란히 진출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를 예로 들며 한국이 아시아영화 교류의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제 영화에는 중국인 배우가 나오고, 〈브로커〉는 일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습니다. 아시아의 인적 자원과 자본이 교류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60~70년대 유럽에서 힘을 합쳐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을 봤는데, 한국이 중심이 돼서 이런 식의 교류가 활성화되기를 바랍니다.”

  한편 박 감독은 28일(현지시간) 열린 폐막식에서 감독상 수상자로 무대에 올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영화관과 영화가 겪었던 위기를 언급하며 영화인들의 사명을 밝혀 박수 갈채를 받았다.

  “우리가 이 역병을 이겨낼 희망과 힘을 가진 것처럼 우리 영화도, 우리 영화인들도 영화관을 지키면서 영화를 영원히 지켜내리라고 믿습니다.”

  전 세계 영화인들을 향한 격려에 객석에 앉아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눈시울을 붉혔다. 최근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단편영화 〈일장춘몽〉을 유튜브로 공개하기도 한 박 감독은 “각각의 작품에 맞는 각각의 플랫폼이 있는 것이며 극장에서 보도록 만든 극장용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영화관에서 집중력을 가지고 여러 사람과 함께 동시에 영화를 본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 있어 영화관이 가지는 의미는 그만큼 큰 것이죠. 때문에 영화관이 곧 영화라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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