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조선조 5백 년을 지켜본 왕의 꽃 - 경회루 수양벚꽃
[벚꽃] 조선조 5백 년을 지켜본 왕의 꽃 - 경회루 수양벚꽃
  • 김종회(문학평론가)
  • 승인 2023.04.03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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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함께 맞는 봄날

벚꽃Cherry Blossoms이 피기 시작하면, 계절이 봄 가운데로 들어섰다는 신호다. 벚나무속Prunus 벚나무 계열에서 피는 꽃으로, 3월에서 5월 사이에 흰색과 분홍색의 화사한 꽃 무리 군집을 이룬다. 그 꽃말은 ‘정신의 아름다움’이다. 한국을 포함 북반구 온대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데 한국에서는 벚나무, 왕벚나무, 산벚나무 등의 꽃이 대다수다. 드물게 춘추벚나무P. Subhirtella라고 봄과 가을에 각각 꽃이 피는 나무도 있다. 여기서 주목하여 살펴보려는 수양벚꽃은 한반도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봄이 오면 어느덧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이라는 노래도 따라온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걷자고 한다.

한국에는 이미 알려진 벚꽃 명소가 많다. 서울의 창덕궁, 국립현충원, 여의도 윤중로, 한강 선유도, 은평구 불광천, 양재천, 잠실 석촌호수 등이 쉽게 발길 닿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인천대공원, 강릉 경포대, 천안 각원사, 대전 대청호, 대구 이월드, 경주 대릉원과 보문각, 창원 진해, 거창 북상,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 이름난 꽃길들을 모두 찾아갈 수도 없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꽃의 아름다움을 완상하고 계절의 축복을 기꺼워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경관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 마음의 모양과 빛깔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즉 우리 마음을 물들이는 봄의 꿈과 생동감을 먼저 확보한 다음에 꽃의 거리를 찾아갈 일이다.

바다를 건너는 꽃 구경

세상을 무슨 독재 권력처럼 억압하던 ‘코비드19’가 몇 걸음 물러서자, 한국 사람들의 발걸음은 해외 관광으로 한층 빨라졌다. 특히 일본으로 떠나는 벚꽃 여행은 이미 여러 여행사의 인기 상품이 되었다. 도쿄의 스미다, 우에노, 치도리가후치, 이노카시라 등의 공원 이름이 익숙하게 들리는 연유는 순전히 벚꽃 명소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워싱턴 D.C.나 미시간, 캘리포니아에도 벚꽃으로 유명한 공원이 많고 텍사스 댈러스에는 튤립 35만 개와 벚꽃 나무 125그루를 묶은 댈러스 블룸스Dallas Blooms가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이 지역들은 모두 지구의 북반구 온대 기후대에 걸쳐져 있으며, 대체로 문명의 수준이 높은 도시에 속한다. 

전통 수목 경회루 수양벚꽃

경회루는 조선조의 법궁法宮 경복궁의 서북쪽 연못 안에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누각이다.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외국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조선조 3대 왕 태종 12년(1412년)에 연못을 넓히면서 다시 크게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4년(1867년)에 대원군에 의해 재건되었다. 조선조의 왕 가운데 세종과 연산군이 가장 많이 사용했다는 풍설이 있다. 세종은 더위를 피해 일하려고, 연산군은 기생들과 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보 제224호로 정식 명칭은 ‘경복궁 경회루’다.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누각에 올라 인왕산과 궁궐의 경관을 감상하는, 이른바 왕실 정원이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이 경회루 연못가에 ‘춘정春情을 이기지 못하고 줄기줄기 길게 늘어진 수양벚꽃’에 있다. 우리의 전통 수목이다. 이 꽃에 이르기 위해 매우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경복궁과 경회루의 장엄하고 잘 정돈된 풍광에 어울리도록, 이곳의 수양벚꽃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수양벚나무의 공식 명칭은 ‘처진개벚나무’다. 다른 벚나무들처럼 가지가 하늘을 향해 일어서 있지 않고, 수양버들처럼 축 처지는 형상을 보여주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드리울 수’에 ‘버들 양’을 써서 수양垂楊이라고 하고 때로는 ‘물 수’를 써서 수양水楊이라고도 한다. 꽃잎이 만개한 가지를 주렴처럼 아래로 드리우기에, 물가에 심으면 관상으로서의 값이 탁월한 수종樹種이라 할 수 있다. 사정이 그러하니 경회루 연못을 에워싼 수양벚나무, 그리고 수양버들의 경치와 흥김종회취가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워 해마다 너나없이 또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다시 찾게 되는 터이다.

경회루를 노래한 시문詩文

동양문화권에서는 명성이 높은 누각에서 노래한 시문이 많다. 우리나라의 3대 누각이라면 평양 대동강 변의 부벽루, 진주 남강 변의 촉석루, 밀양 남천강 변의 영남루 등을 꼽는다. 그 가운데 부벽루에 올라 시를 쓴 문인으로 고려조 말의 충절 목은 이색이 있는가 하면 조선조의 유학자 율곡 이이가 있다. 목은의 시는 오언율시, 율곡의 시는 칠언율시로 되어 있는데 모두 수려한 풍경에 비친 쓸쓸한 심사를 읊고 있다. 누각에 오른 시로 동서고금에 널리 알려진 것은 중국에서 시성詩聖으로 일컬어지는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다. 이 또한 오언율시인데, 시절과 세월의 덧없음에 눈물짓고 있으니 누각의 시는 모두 이러한 운명인지도 모른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경회루를 노래한 시문을 찾기는 어려웠다. 당대 왕조의 법궁이자 정궁正宮에 있는 누각을 두고 어떤 문재文才가 뛰어난 신료臣僚도 이를 노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조선왕조실록》에 왕의 시문이 있을지 모르나, 이를 찾지는 못했다. 다만 1938년에 인문사에서 간행된 임학수의 시집 『팔도풍물시집』에 「경회루」란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 「경회루」에서는 이 연못의 오리를 통하여 옛꿈에 대한 그리움의 변주를 보여주고 있으나, 그가 시인 또는 소설가로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였기에 자연히 시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지금 경회루의 수양벚꽃은 만개滿開를 이루어 감동적인 아름다움으로 휘황하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150여 년 세월의 증언자

삶의 연한이 한정된 인간은 자연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한다. 이 수양벚꽃만 해도 그렇다. 경회루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지 150여 년이 지났고, 그동안 온갖 영욕의 시간이 휘몰아치는 역사의 과정을 묵묵히 지켜본 산 증인이다. 사람은 왔다 가고 그렇게 하기를 여섯 세대가 지나갔건만, 꽃은 변함없이 봄이 되면 다시 피었던 것이다. 지금은 참으로 좋아진 세상이다. 마음 나누는 친한 벗과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저 옛날 세종이 거닐던 그 수양벚꽃의 꽃그늘 사이를 아무런 제재 없이 거닐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이 좋은 봄날에 바람결에 날리는 벚꽃잎을 바라보면서, 이토록 여유 있는 상념에 잠길 수 있으니 참으로 소소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김종회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6년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8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나온 이래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해 왔으며 현재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 촌장, 이병주기념사업회 공동대표,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김환태평론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문학과 예술혼』 『문학의 거울과 저울』 『영혼의 숨겨진 보화』 등의 평론집,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 등의 저서와 『삶과 문학의 경계를 걷다』 등의 산문집이 있다.

 

 

* 《쿨투라》 2023년 4월호(통권 10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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