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돌아온 새봄, 그대와 벚꽃 엔딩
[벚꽃] 돌아온 새봄, 그대와 벚꽃 엔딩
  • 서영호(음악가, 문화콘텐츠 연구자)
  • 승인 2023.04.0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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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새봄

‘살아감’의 본연은 반복 속 차이, 순환 속의 변화일 거다. 자고, 먹고, 싸고, 자고를 매일 반복하지만 와중에 그는 성장하고 늙어간다. 일상에서 느껴지는 ‘생명’ 활동의 본질이 언뜻 지리한 반복의 심상에 치우쳐있다면, 그것이 누적된 결과로써 한 ‘인생’의 본질은 차이와 변화, 즉 ‘어제와 다른 나’에서 찾아져야 할 거다. 이 차이가 평생에 걸쳐 이미 확정 예고된 그 반복의 굴레에서 그나마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가 매번 돌아올 새 아침과 새봄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작년, 그리고 어제와 다른 나로 그것들을 맞이하리라는 기대와 희망 때문이다.

우리가 기다렸던 새봄, 다시 돌아온 이 봄만은 유독 ‘새’봄이다. 새 여름, 새 가을, 새 겨울은 어색하다. 물론 그 연원은 겨우내 웅크렸던 생명의 기운이 다시 움트고, 새순과 꽃을 내며 새로운 순환주기의 시작을 알리는 봄의 영감 때문이겠다. 그런데 새로움과 시작이라는 것은 언제나 기대와 설렘, 낯섦을 동반하는 것이어서 다시 피어나는 갖은 빛깔의 현혹 속에 굳었던 우리 마음도 흐물거린다. 일찍이 이규보가 “오직 봄만은 때에 따라 곳에 따라 화창해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며, 저절로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눈물이 흐르기도 하여, 사람마다 그 감정이 흐르기도 하여 감정이 천 가지, 만 가지로 변한다. 취했을 때 바라보면 즐겁고, 깬 뒤에 바라보면 슬퍼지고…”라고 통찰한 것을 보면 예로부터 봄이 사람들의 마음을 묘하게 흔들어 놓는 시절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몽글한 봄에 우리가 하는 것 중 하나는 저마다의 ‘그대’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대와 벚꽃

‘그대여’를 다섯 번이나 외치고 시작하는 독특한 인트로를 지닌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은 최근 한 10년간 우리 봄의 반주였다. 노래는 흩날리는 벚꽃 사이로 그대와 손잡고 거닐 것을 종용한다.

“몰랐던 그대와 단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떨림과 둘이 걸어요…
사랑하는 그대와 알 수 없는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대중가요는 듣는 이에게 노래의 가사에서 자신과 맞닿는 부분만을 기억하게 하는 마법을 지녔다. 자연이 내리는 환한 축복의 절정 속을 함께 거닐고 싶은 것은 연인뿐이 아니다. 그러므로 다분히 연인과의 로맨스를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노래에서 ‘그대’는 저마다의 다양한 그대로 확장된다. 새봄의 생동력은 절정의 벚꽃이 벌이는 이 축제가 끝나기 전에 한동안 보지 못한 소중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라고, 새로운 나로 새로워진 그들과 또 다른 봄을 새기라고 부추긴다. 그렇게 〈벚꽃 엔딩〉은 연인을 넘어 그리운 가족과 벗과 스승과 제자, 또 그 모든 소중한 이들과의 반가운 재회의 배경 음악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런 야속함을 토로할 것이다. 왜 봄이 되어서야, 벚꽃잎 휘날리는 화려함 속에서만 나를 찾느냐고. 그 들뜬 마음의 가벼움 속에 나와의 만남이 ‘동원’된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이 또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의 순리라고 이해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내면의 계절인 겨울의 칩거, 정체, 잠복이 종식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나를 찾아 나선 것이었음에 감사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겨우내 사랑하는 이를 찾지 않은 이를 너무 원망하지 말자. 흩날리는 꽃보라 속에서 시야는 흐려지고, 치기와 설렘의 욕망도 관용되고, 까다로움은 무뎌져 다시 만나 좋았다는 기억만 남을 것이다.

엔딩

벚꽃이 벌이는 화려한 봄의 소요가 소중한 것은 그 역시 유한하고 끝이 있음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장범준의 가성을 타고 흩날리던 벚꽃잎들이 땅에 떨어질 때면 봄도 엔딩을 맞는다. 정확히는 벚꽃이 지는 순간이 봄의 끝은 아니지만, 낙화와 함께 들떴던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잔치는 끝난다. 하지만 이 공허함은 초록 푸른 5월과 진정한 생명의 절정-여름을 맞이할 새로운 설렘으로 이내 채워진다. 따라서 봄의 한 정점을 지나고 있음을 알리는 ‘벚꽃 엔딩’은 일 년의 시작, 한 해를 펼쳐낼 새로운 이야기, 그 서문의 마지막 문장이자 서막의 피날레일 뿐이다.

한편에서 생각해보면 삶이 일정한 순환주기들의 반복과 그 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은 오히려 다행이다. 학습과 실험을 통해 삶의 노하우를 터득할 새 기회가 끊임없이 제공되니 말이다. 같은 노래를 오래도록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것도 달라진 나로 인하여 그 의미가 매번 다르게 들리기 때문일 거다. 내년에 〈벚꽃 엔딩〉이 울려 퍼질 때면 더 성숙한 우리의 봄이기를.

 

 


서영호 음악가, 문화콘텐츠 연구자. 고려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경희대학교에서 대중음악을, 다시 고려대학교에서 문화콘텐츠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음악가로서 ‘원펀치’와 ‘오지은서영호’로 활동하며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병행해왔다. 《쿨투라》 신인상에 영화음악평론으로 당선되었고, 주요 앨범으로 《Punch Drunk Love》와 《작은 마음》, 저서로는 『유튜브 시대에 문화는 어떻게 기억되는가』가 있다. 대학에서 문화콘텐츠, 음악,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 《쿨투라》 2023년 4월호(통권 10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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