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죽음 앞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들의 의미를 자각하다: 서정의 〈슬픈 시〉
[음악 월평] 죽음 앞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들의 의미를 자각하다: 서정의 〈슬픈 시〉
  • 이준행(음악가)
  • 승인 2023.04.0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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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쉽사리 하지 않는 것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을 ‘홍대병’이라고 부른다. 남들과 다른 취향을 가지고 그것을 잣대로 타인을 비판하는 현상을 지칭하며, 이 문화를 모르는 사람조차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개념이 되었다. 주로 부정적인 상황에 쓰이긴 하지만, ‘홍대’라는 단순한 대학교의 명칭이 사회 현상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제법 다르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만큼 ‘이 문화가 한때는 제법 융성했던 문화였구나.’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이 홍대병에도 작용-반작용, 혹은 자정 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홍대병의 홍대병’이라고 한다. 주로 모던 락, 하드 락, 펑크 락이 득세하고 있는 2023년의 밴드 씬에서, 포크 팝, 포크 락이라는 반작용으로서 반짝이기 시작한 한 밴드가 있다. 싱어송라이터가 아님에도 포크 장르로 밴드를 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니, 이들을 홍대병의 홍대병이라고 칭할만 하지 않을까.

‘일상의 언어로 사연을 풀어내는 밴드’ 서정은 보컬의 이화섭, 기타의 박상현, 키보드의 노민준, 그리고 작년 가을부터 합류한 베이스의 이승민과 드럼의 김민규로 이루어진 5인조의 포크 락 밴드이다. ‘서정’이라는 개념은 감정이나 정서를 표현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서정성’이라는 것들을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랑의 세레나데 같은 범주에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 감정이나 정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서정은 인간의 본질 그 자체이다. 사랑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 그리고 그 이별에는 죽음도 포함된다. 서정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에 ‘죽음’이라는 주제가 있다는 것은 절대 이질적인 것이 아니다. 죽음의 끝에서 삶을 발견하는 서정의 여정, 곧 발매될 EP 1집 《슬픈 시》에 수록된 동명의 타이틀 곡, 〈슬픈 시〉 속으로 떠나보자.

매일 잔을 하나씩 사다가 놓으니
내 꿈은 이제 저 잔들을 모두 쓰는 것
눈은 주로 현관을 마주하고 있으니
너의 방이 무너지면 나를 찾아와

나는 아마 슬픈 사람으로 기억될 거야
아냐 누가 기억이나 해줄지 몰라
그래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니
너의 밤이 무너지면 여길 찾아와

1절에서 화자는 잔을 사다 놓고 잔들을 모두 쓰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잔은 우리가 일상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하기에 어떠한 의미도 없이 쓰는 도구이다. 그러나 실은 우리는 잔을 통해서 우리의 생명을 유지한다. 예수는 죽기 전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잔의 의미가 강조되는 것은 죽음의 순간에 느낀 우리의 목숨을 의미하는 메타포로 사용된다. 매일 잔을 하나씩 산다는 것은 그 각자의 잔들에 모두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을 뜻한다. 화자가 사 모은 잔은 동일한 형태의 잔이 아니라, 소중한 남은 날들이라는 각기 다른 형태의 잔인 것이다.

화자의 눈은 항시 현관으로 향하고, 그곳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는 이처럼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 누군가 나에게 찾아와 주어야만 하고 우리가 다가갈 수는 없는,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은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공간성과 시간성에 대한 자각이 드러난다. ‘너의 방이 무너지면’에서 ‘방’이라는 공간성이 드러난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방’을 관심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공간은 단순히 공간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공간은 곧 그 존재의 표현이며, 그 존재 자체이다.

‘너의 방’은 ‘너의 밤’과 형태, 의미적 호응을 이룬다. ‘밤’은 시간성이면서 앞선 ‘방’과 형식적인 운율을 이룬다. 방의 시간은 곧 밤의 시간이고, 밤의 공간은 곧 방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각각 이어지는 표현인 ‘나를 찾아와’와 ‘여길 찾아와’에서도 교차됨을 알 수 있다. 공간인 ‘방’이 무너진다면 ‘나’의 시간을 찾아오라는 것이고, 시간인 ‘밤’이 무너지면 공간인 ‘여길’ 찾아오라는 교차가 일어난다. 이처럼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직접적으로 자각하며, 오히려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방’과 ‘밤’을 관심하는 지점에까지 이른다.

나지막이 불러보았던 너희들의 이름은 하나하나 예쁘고
내가 먼저 죽어버리면 우리 엄마 아빠는 불쌍해서 어쩌지
사실 나는 마음 속에다 날카로운 것들을 품어두고 있었지
내가 먼저 죽어버리면 남은 나의 친구들은 내가 보고싶을까

타인의 삶을 자각함으로서 화자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행위에 도달한다. ‘이름’은 사회적으로 그 사람을 그렇게 부르기로 한, 사회적 약속인 자의적 기호에 가깝다. 그러나 앞서 자신의 잔, 타인의 방과 밤을 새롭게 인지한 화자가 발견한 ‘너희들의 이름’은 유의미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나지막이’라는 표현은 상당히 재미가 있다. 조용히 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가사의 주제와 결합해보면, ‘나의 마지막’을 줄여 표현한듯한 느낌도 전달하기 때문이다.

뒤이어 화자는 우리에게 생명을 전달했던 존재들인 부모의 슬픔을 떠올린다. ‘날카로운 것들’은 많은 것들을 포괄한다. 그 어감이 전달하듯이, 모든 부정적인 것들의 총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날카롭다라는 표현은 중의적이다. 무딘 것들 속에서 생동하는 것들을 또한 우리는 날카롭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품어두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한다. ‘품어두는’ 행위는 무엇인가를 소중하게 품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인간 고유의 행위이다. 화자는 기호의 껍데기인줄로만 알았던 이름 뒤에 감춰줘 있던 타 존재의 유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에게 생명을 준 존재들인 부모를 떠올리면서, 우리는 무딘 것들 사이에 있는 생명의 날카로움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실은 소중히 ‘품어두는’ 있었다는 자각으로 이어간다.

미워하는 마음을 거두어야 하나요 / 나를 위한 별나라가 아름답긴 할까요
나를 사랑했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를 미워하고 있나요
겨울이 오기 전에 보내야지 했는데 / 내가 적던 시는 아직 쓰여지고 있어요
좁은 방에 남겨진 볼품 없는 것들도 추억이 될 수 있네요

마지막 후렴구의 가창은 쉴 틈 없이 가사를 쏟아내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마치 생의 마지막을 앞둔 자가, 삶의 모든 것을 토해내는 것의 형식적인 표현처럼 다가온다. 죽은 자는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다.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미움마저 거둬질 죽음의 시간이 급박하게 다가온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살아 있기에, ‘나’ 혹은 타인들을 미워하며 살아갈 것이다. 죽음이 슬픈 것은, 부정적인 것들마저 삶의 요소로서 자각되는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 있는 자들에게 겨울은 끝이 아닌 순환이다. 죽음을 앞둔 자에게 계절은 더이상 순환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자가 적던 시는 자신이 써 내려갔던 것이 아니라, 계속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서정의 〈슬픈 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정성’에 대한 해묵은 관념을 깨뜨린다. 사랑과 이별의 스테레오타입으로서의 서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정서’의 표현으로서의 서정성을 표현한다. 〈슬픈 시〉는 삶의 순간에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공간과 시간, 그리고 존재의 이름들, 그 좁은 방에 남겨진 볼품 없는 것들이, 실은 나의 삶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의 선언이다. 그렇기에 슬픈 시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시로 계속해서 쓰여갈 것이다. 죽음 끝에서 삶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슬픔’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생명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지막이 그들을 불러보게 될 것이다.

 


이준행 음악가. 락 밴드 벤치위레오 보컬, 기타로 활동 중.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박사과정 수료. 시와 음악의 연관성, 그리고 시와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서정(@seojeong_official)

 

* 《쿨투라》 2023년 4월호(통권 10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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