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제는 사라졌을 도시의 기호, 구본창의 'Incognito'
[갤러리] 이제는 사라졌을 도시의 기호, 구본창의 'Incognito'
  • 박영민(본지 기자)
  • 승인 2019.11.0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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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한가람 미술관

서울 잠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구본창의 사진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 <Incognito>가 열렸다. 이 전시는 현대 사진의 다양성을 보여준 사진가들의 근황과 한국 사진의 현주소를 조명하는 기획전으로 박기호, 김중만, 민병헌 개인전에 이은 전시다. 구본창은 1980년대부터 낯선 삶 속에서 새롭게 인지한 도시의 곳곳에서 느끼는 소외, 자신에 대한 고민, 빠르게 사라지는 과거의 흔적 등을 통해 자신의 경험으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빠르게 변화한 사회로 접어든 1990년대에 한국 현대사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새로운 세대의 사진가들이 담아낸 일상적 시각은 시대와 문화의 스냅숏을 만들어냈다. 사진가 구본창은 그 새로운 사진의 가장 앞에 있었다. 사회적인 영향 탓인지 당시 한국 사진은 지나치게 저널리즘에 빠져있거나, 또는 심미적인 사진으로 양분화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본창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사물과 사건을 대하였다. 평범한 사람으로 서울을 떠나 독일 유학길에 올랐고 사진가로 돌아와 익숙하던 곳에서 혼자만 느끼는 낯섦과 소외, 예술가로서 느끼는 고민, 빠르게 사라지는 자신의 흔적 등 내면의 깊은 사색을 보여주며 자신을 혹은 시대를 작업에서 드러내왔다. 그 연장된 시선을 최신작 <Incognito>에서 선보인다. 허름한 공간, 쓸쓸하고 해석이 모호한 풍경, 그럼에도 숨 가쁘게 압박하는 도시의 혼란을 익명으로 포착한다. 그리고 이제는 사라졌을 도시의 기호를 발견해 사진으로 남긴다. 이것이 구본창의 사진이 품은 시대성이다.  

그는 사진을 통해 숨겨진 자아를 찾았고, 매우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의 사진은 사실인지 아닌지, 어디인가와 관계없이 그가 보는 세상이며, 대상을 마주보면서 확인하는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사진 뒤에 숨겨진 자아를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 그것이 자신의 내면이든 외면이든, 또는 하나의 작품이든 그 자체는 궁극적으로 파편적인 자아일 수밖에 없다. 결국 구본창의 사진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독백이며 일기다.

그는 “1980년대에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었던 그때의 느낌은 이제 없다”고 말한다. 시간이 바뀌고 도시가 변했지만 사진가의 눈은 변함이 없다. 고개 숙인 무덤덤한 시선, 더디게 옮기는 발걸음. 연민 가득한 시 선으로 부드러운 천이나 장애물을 통과하여 밖에서 안을 들여다본다. 매끈한 표면과 다양한 질감들로 가득 한 도시의 익숙함,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가 비워진 공간의 낯섦은 너무도 익숙한 동시에 생경한 파편적 이미지로 기억된다. 어디선가 본 듯한 현실과 처음 보는 듯한 이미지와의 묘한 경계, 그 거리두기를 반복하면서 사진가의 시선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익명자로서 스스로를 사진 속에 숨긴다.

연속성 없는 유사한 이미지들이 반복되기도 하고, 기억에서 잊히거나 숨겨진 감정들이 드러나거나, 현실과 다른 꿈에서나 본 듯한 혼란스러운 느낌이 반복된다. 모호한 패턴들과 기호가 우리 사고 깊숙한 곳에 묻 어둔 불안한 삶의 한 자락, 소외된 감정들을 자극한다. 미술관 20층 제 3전시실에서는 이번 전시 <Incognito> 연작의 바탕이 되는 1985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흑백 사진 작업, <긴 오후의 미행> 연작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긴 오후의 미행>은 작가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서울의 길거리에서 찍은 스냅 사진이다. 이 연작에서 보여주었듯이 관련이 없는 듯한 이미지들의 흐름 속에서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감추어진 자아를 찾는다. 이러한 방식이 발전된 신작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여전히 도시의 생경함에 주목하지만, 전작과 달리 컬러사진이 등장하였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촬영된 이미지들은 오히려 현실을 은폐하고 있다.

구본창은 은밀히 개인의 소외감을 노출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매일 신문과 뉴스에서 접하는 사회의 불합리와 부조리, 국가와 계층간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환경문제 등을 인식한 그의 세계관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 전시장을 찾은 관객 또한 각자의 기억과 무의식적 지각 경험을 통하여 자신만 의 해답을 얻길 바란다. 전시와 함께 발간된 <Incognito> 사진집에는 55점의 컬러와 흑백 작품, 스페인 독립 큐레이터 알레한드로 카스테요테의 글이 실렸다. 12일 오프닝에는 구본창 작가와 함께 하는 전시 투어&북사인회도 열렸다. 구본창 사진전은 오는 2020년 1월 11일까지 이어진다. 구본창을 둘러싼 세계가 무엇이며, 그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표현했는가를 직접 대면해 보자.

 

 

* 《쿨투라》 2019년 11월호(통권 6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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