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시나리오 쓰기 8] 주인공의 목표, 그리고 이율배반적인 내적 세계
[재미있게 시나리오 쓰기 8] 주인공의 목표, 그리고 이율배반적인 내적 세계
  • 이무영(영화감독, 시나리오작가)
  • 승인 2020.08.26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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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환경과 주인공을 아는데 필요한 정보들이 다 소개되면, 이제 영화는 중반부로 넘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전반부를 빈틈없이 마무리하기 위해 이 지점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더 세심한 고민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

 

  이야기를 규정하는 사건
  전반부 끝 지점에 꼭 등장해야 하는 건 바로 ‘이야기를 규정하는 사건’이다. 주인공의 운명을 바꿔놓는 사건이요, 영화의 원동력이 되는 사건이다. 앞서 말했듯 작가는 이 사건을 활용, ‘드라마적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주인공에겐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고, 관객에겐 가장 중점을 두고 봐나가야 하는 문제다.

  딸이 납치됐다면 아버지는 그녀를 찾기 위해 나서야 한다. 누군가 내 목숨보다 소중한 친구를 때려죽였다면 어떻게 응징해야 할지 결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새 학기 강의실에서 너무도 맘에 드는 남학생을 봤다면, 어떻게 사랑을 쟁취할지 정한 후에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써야 한다.

  이처럼 주인공은 ‘이야기를 규정하는 사건’을 계기로 얘기치 않은 험난한 여정으로 내몰린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영화는 말에 박차를 가하듯 숨 가쁘게 내달리기 시작한다. 당연이 이 정도 강도의 사건이라면, 그건 매우 획기적이야 한다. 이 사건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반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로 인해 주인공에겐 예측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닥쳐올 것이다. 이제 주인공에겐 어떤 특별한 목표가 주어지고, 그는 이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몸부림쳐야 한다.

  <밀양>의 신애는 아들 준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유괴범이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한다. 그녀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어느 길을 택하든 그녀의 목표는 아들을 살리는 것이다.

  <마더>의 도준은 여학생 아정을 살해한 범인으로 몰린다. 주인공 엄마는 아들의 결백을 믿는다. 그녀는 아들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돼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의 류는 누나 신장이식 수술을 위해 모은 돈을 장기밀매 조직에게 사기 당해 빼앗긴다. 아울러 자신의 콩팥 하나까지 놈들에게 도둑맞는다. 류는 놈들을 찾아 절단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누나의 수술비를 다시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 수중에돈 한 푼 없는 류가 어디서, 어떻게 그 돈을 마련한다는 말인가!

  ‘이야기를 규정하는 사건’을 통해 제기된 ‘드라마적 문제’는 나중 클라이맥스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맺어야 한다.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의 원래 목표가 이뤄질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주인공이 이길 수도, 패할 수도 있다.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결론이 무엇이든, ‘드라마적 문제’는 무조건 클라이맥스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돼야 한다.

  <마더>의 엄마는 아들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 살인현장을 직접 봤다는 고물상 사내를 만난다. 그런데 그는 도준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가 무죄로 풀려날 거라는 엄마의 말에 사내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도준이 범인임을 알리려 한다. 그 찰나 그녀의 원래 목적은 무의미해지고, 대신 사내를 제거해야 한다는 새로운 목표가 그녀 마음 속에 생겨난다. 그녀는 주저 없이 사내를 때려죽인다. 그녀의 원래 목적은 클라이맥스에서 허망한 실패로 결론난다. 하지만 그녀는 고물상 사내를 살해함으로 어찌 됐든 제기된 ‘드라마적 문제’를 해결한다. 이제 그녀에게 중요한 건 아들의 결백이 아니라, 아들이 절대 살인범이 돼서는 안 된다는 신념뿐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누나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류는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유괴를 저지른다. 처음엔 그가 생각하는 대로 ‘좋은 유괴’로 끝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동진의 딸 유선이 물에 빠져 죽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류는 유선이 빠져죽은 냇가에서 동진에 의해 아킬레스건이 잘린 채로 익사한다. 류는 결국 유괴를 통해 누나를 실리려 했던 목표를 이루는데 처절하게 실패한다. 그리고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른다.

  <밀양>에서 신애는 유괴된 아들 준을 살리려고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실패한다. 이제 그녀는 다른 목표를 세운다. 신에 의지해 아들 잃은 슬픔을 이겨내려 하지만 이도 실패로 끝난다. 이어서 신에게 선포한 전쟁에서도 패배하고, 마지막으로 손목을 그어 죽으려 하나 이마저도 뜻을 이루지 못한다. 실패로 일관하는 그녀의 몸부림을 보며 관객은 애잔한 연민을 느낀다.

 

  주인공의 목표, 그리고 이율배반적인 내적 세계
  ‘이야기를 규정하는 사건’은 주인공에게 어떤 명확한 목표를 부여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주인공은 달려 나간다. 그런데 커다란 장애물이 나타나 딱하니 그를 가로막는다. 적이 나타나 그가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목표가 정해졌으면, 작가는 왜 주인공이 그 목표를 갖게 됐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왜냐면 이 이유가 향후 그가 취하는 행동의 동기부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밀양>에서 신애는 준이 유괴된 후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돈을 마련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아들을 살리는데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류는 영미의 조언에 따라 유괴를 결심한다. 도덕적으로 올바르고자 하는 그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건 누나를 살리기 위해무조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더>의 엄마는 아들의 결백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경찰과 변호사, 심지어 아들의 친구 진태에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모든 걸 감내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규정하는 사건’과 주인공의 명확한 목표가 자리를 잡으면, 아마추어 작가들은 “자, 전반부를 훌륭하게 세팅했으니 이제 신나게 얘기를 전개해 나가보자!”라며 바로 중반부로 넘어가려 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점검해야 하는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주인공의 목표 외에 내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결핍이나 욕망 등에 대한 연구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내면세계는 영화가 진행되며 계속해서 플롯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 대부분은 목표를 지닌 채 살아간다. 사람이 목표를 잃는다면 분명 삶의 의지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목표는 삶의 원동력이다. 주인공의 목표는 영화 속에서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인간 대부분의 마음속에 이율배반적인 정서나 태도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 결핍이나 욕망, 콤플렉스 등에 대해 깨우치지 못한다.

  결혼한 남자 다수가 아내를 가장 사랑한다고 한다. 이 경우 아내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게 그의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당수 남자가 매혹적인 여자가 나타나 치맛자락만 휘날려도 너무도 허망하게 무너져버린다. 만약 당신이 남자인데, 이 경우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대단한 위인이거나, 위선자다. 영화적으로는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다.

 

  <위험한 정사>(애드리안 라인 감독, 1987)에서 댄 갤리거는 성공한 변호사로 매력적인 아내 베스를 매우 사랑한다. 그런데 베스가 출타한 날, 파티에서 만난 여성 알렉스 포리스트와 화끈한 정사를 나눈다. 댄의 하룻밤 외도는 그의 가정을 지옥으로 빠뜨린다.

  자 그럼 여기서 댄을 점검해보자!

  그의 원래 목표는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아니, 알렉스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어도 그의 목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자신의 목표를 배반하는 행동을 했을까?

  답은 매우 간단하다. 내적 욕망이 그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매력적 여인의 육체를 탐하는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 항상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모순덩어리이고, 위선덩어리다. 명문대에 가겠다는 학생이 공부를 등한시한다. 자본주의의 탐욕을 증오한다 말하나, 속으로 벤츠자동차를 타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훌륭한 작가라면 이런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자신의 창작에 무기로 활용해야 한다. 인간의 위선과 모순을 간과하는 작가는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없다.

  만약 댄이 알렉스의 유혹을 뿌리치고 귀가해 아내와 사랑을 나누었다면, 그는 훌륭한 남편으로 남을지 모르나 영화는 무지하게 재미없었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영화화할만한 얘깃거리도 되지 못했 을 것이다.

  영화를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작가는 무조건 인물의 무의식적 내면에 대해 깊이 연구해야만 한다. 주인공을 움직이게 만드는 진짜 자극이 그의 이율배반적 욕망이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밀양>의 신애는 전반부 자신을 전도하려는 약사에게 절대 신을 믿지 않는다고 큰소리쳐놓고는 정작 아들이 죽자 기독교 신앙에 의지해 슬픔을 이겨내려 한다. 아들을 죽인 도섭이 신께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다는 애기를 들었을 때 신애는 그에게 화를 내지 않고, 엉뚱하게 신을 향해 분노한다. 진짜 용서가 이뤄졌는지 도섭의 말만 들었지 신에게 확인한 것도 아니다. 그래놓고 그녀는 마치 신을 무너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는 무리한 투쟁을 전개한다. 절대 이길 수 없는 그 전쟁 끝에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린다. 그러고는 거리에 나가 나약하게 살려달라고 울먹인다.

  이처럼 한없이 유약한 그녀는 영화 내내 필요 이상으로 주변인들 앞에서 강한 척한다. 아들을 잃은 후에도 그 아픔을 다 극복한 것처럼 위장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녀도 당연히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실상 그녀가 깨우치지 못하는 내면의 자아는 여전히 아들 잃은 슬픔 가운데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의 류는 누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유괴를 저지른다. ‘좋은 유괴’가 있다며 괴변을 늘어놓는 영미에게 절대 안 된다고 해놓고는 막상 막다른 길로 내몰리자 자신이 주장과 정반대되는 선택을 한다. 두 경우 다 주인공의 모습은 매우 이율배반적이다.

  물론 주인공의 내면이 항상 전반부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영화가 한참 진행된 후 ‘짜잔’하면서 목표와 상반되는 그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마더> 전반부가 끝날 즈음 엄마의 목표가 정해진다. 물론 그건 당연히 아들의 결백을 밝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중에 아들이 정작 살인자였다는 사실이밝혀졌다면 그녀는 어찌 해야 할까?

 

  당연히 그녀의 목표 달성을 향한 동력은 멈춰야된다. 그런데 그녀는 이 지점에서 급작스럽게 목표수정을 한다. 아들의 살인현장을 목격한 애꿎은 사람을 죽인다. 결국 그녀는 아들의 무죄입증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정작 그의 유죄여부엔 전혀 관심이 없다. 물론 그녀가 의식적으로 이 사실을 인지하는 건 아니다. 그녀의 욕망은 그 누구도 아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일그러진 모심이요, 용서받을 수 없는 부도덕이다. 애초 그녀의 목표는 어느 정도 정의로운 포장을 하고 있었으나 사실이 드러난 후 수정되는 그녀의 목표는 어둡고 추악한 그녀의 정신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섬뜩하다. 그런데 이런 그녀의 내면세계가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인공의 내적 욕망과 결핍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로 <색, 계>(이안 감독, 2007)를 들 수 있다. 여주인공 왕치아즈(탕 웨이 분)는 애국조직의 명에 따라 이(양조위 분)를 암살하려 한다. 목표도, 이유도 명확하다. 이가 친일매국노이기 때문이다. 만약 시나리오가 그녀의 목표와 이유만을 바탕으로 쓰였다면, 필경 영화는 별 재미가 없었을 게 분명하다. 이 영화를 흥미롭게 끌고 가는 진짜 힘은 바로 왕치아즈의 목표와 이율배반적 내면세계의 충돌이다.

 

  그녀는 이에게 접근, 몇 차례 정사를 나누며 어이없게도 그에게 빠져버린다. 그의 치명적 매력은 결국 그녀의 목표를 흔들리게 만든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그르칠까 걱정돼 조직원들에게 거사를 서두르자고 부탁까지 한다. 하지만 그녀의 동지들은 이 사실을 간과한다. 그녀 속에서 타오르는 육체적 욕망에 대해 무지했기때문이다.

  그녀가 조국을 배신할까? 아닐까? 관객은 그녀의 목표가 이길지, 아니면 내적 욕망이 이길지 손에 땀을 쥐며 영화에 빠져든다. 그렇기 때문에 둘의 섹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클라이맥스에서 왕치아즈의 내적 욕망이 그녀의 목표를 뭉개버린다. 그녀는 조국을 배신하고, 조직원들과 함께 결과적으로 자신이 살려준 이의 손에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대단한 아이러니다.

  영화 속 왕치아즈를 입체적으로 점검해보자!

  그녀의 목표 - 이를 암살하는 것.
  이유 - 용서할 수 없는 매국노니까!
  이율배반적 내면 - 이를 향한 욕망.

  <색, 계>처럼 영화로 펼쳐보면, 주인공의 내면 정서를 묘사하는 게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시나리오 단계에서 주인공의 목표나 그 목표에 대한 이유보다 내적 욕망이나 결핍을 창조해내는 게 훨씬 더 어렵다.

  솔직히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구축하는데 왕도는 없다. 그저 해답을 얻을 때까지 묵묵히 캐릭터의 내면에 대해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어찌 됐든 주인공 내면의 참모습을 찾아내면 스토리의 강렬함이 커지고, 대립하는 인물과의 갈등도 매우 흥미로워진다.

  수도 없이 고치고, 또 고쳐 써야 흥미로운 주인공의 내면세계가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머리를 싸매고 계속 태클하다 보면, 분명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산물은 영광스런 성취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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