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시나리오 쓰기 4] 아이디어의 확장
[재미있게 시나리오 쓰기 4] 아이디어의 확장
  • 이무영(영화감독)
  • 승인 2020.04.22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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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lywood Pictures

 영화의 주인공이나 그가 놓인 환경, 그와 관계를 맺는 주요 인물, 또는 기폭제가 되는 사건 등을 떠올랐다면, 이제 작가는 그 아이디어를 점차 확장시키며 드라마의 틀을 만들어가야 한다.

 첫째, 주인공이 정해졌다면 가장 먼저 그가 왜 이 얘기 속에 들어왔는지, 영화적으로 그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는 과연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가? 그리고 그는 왜 그런 목표를 갖게 됐는가?

 <요람을 흔드는 손>(커티스 핸슨 감독, 1992)에서 모트 부인은 바텔 가에 유모로 취직한다. 영화가 진행되며 그녀가 일자리가 필요해 유모가 된 게 아니라 죽은 남편의 복수를 위해 위장 취업한 사실이 드러난다.

 이처럼 주인공의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둘러싼 동기부여와 배경에 대해 연구하고 결정하는 건 시나리오의 틀을 짜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첫 스텝이다.

 둘째, 주인공과 다른 주요인물이 맺는 관계에 대해 뚜렷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추가로 그 관계가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한다.

 그들 관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협력관계인가? 원수인가? 아니면 협력하는 관계로 보였는데 알고 보니 철천지원수인가?

 <요람을 흔드는 손>의 초반부에서 모트 부인은 성실한 유모로 위장하고, 여주인 클레어 바텔은 그녀에 대해 꽤나 만족한다. 하지만 둘은 본질적으로 협력할 수 없는 관계다. 모트 부인이 바텔 가를 망가뜨릴 목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반에 비춰진 관계가 나중에 드러나는 관계와 정반대인 경우가 영화 속에서 효과적으로 쓰일경우 관객은 탄성을 자아낸다.

ⓒHollywood Pictures

 셋째, 주인공과 다른 인물 사이에 특정한 대립과 마찰의 구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누군가와 마찰을 빚는 건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 대립과 마찰은 관객으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만약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어느 누구와도 갈등을 빚지 않거나 특별히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면 필경 그 영화는 관객을 잠의 늪으로 빠뜨리고 말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남의 싸움을 보는 걸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참 한심한 존재다.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 대부분도 이런 한심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주요 인물들이 다투는 걸 즐긴다. 당연히 영화 내내 등장인물들이 사이좋은 걸 용납하지 않는다.

 이 주장이 맞는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작가는 관객에게 그럴싸한 싸움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 작가가 건축해야 할 대립과 마찰의 구도는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막중한 책임으로 작용한다. 대립으로 인한 긴장이 없으면, 관객은 곧바로 흥미를 잃는다.

 대립과 마찰이 발생하는 건 주인공이 자신에게 없는 그 무언가를 얻으려 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처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그 과정 가운데 발생한다. 영화는 결국 주인공이 대립과 마찰을 이겨내거나, 반대로 실패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Hollywood Pictures

 마지막으로 작가는 시나리오를 쓰기 전 확고한 콘셉트로 무장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자신이 쓰는 작품이 무엇에 관한 얘기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 <복수는 나의 것>은 삭막한 자본주의 세상이 어떻게 유순한 구성원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동진은 아내에게 버림받고, 가업이 망하며 딸까지 잃는다. 류는 직장과 콩팥, 누나, 자신이 납치한 여자아이 유선,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자 친구 영미까지 잃는다. 슬프게도 모든 걸 다 잃은 둘은 세상에 선전포고를 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향해 복수의 칼을 겨눈다.

 - <밀양>의 신애는 매정한 신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교회집회에서 사고를 치고, 독실한 장로를 유혹하기도 하지만 신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 야속한 신은 왜 아들을 잃는 크나큰 불행이 그녀에게 닥쳤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 <마더>의 주인공은 무서운 한국형 엄마다. 그녀는 세상을 비관, 다섯 살 아들 도준과 농약을 먹고 동반 자살하려 했다. 그런 그녀가 이제 와서 성인이 된 지적장애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다.

 

 스토리텔링의 비법

 아이디어 확장을 통해 시나리오 쓸 무기들을 다량 확보했다면, 작가는 지체 없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스토리텔링은 말 그대로 ‘이야기하기’다. 시나리오의 경우 꾸민 이야기니 ‘거짓말하기’가 오히려 더 적합한 표현일 듯하다. 세상 그 어떤 예술보다 오래 존재한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아마 언어가 없었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손짓발짓으로 얘기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흥미로운 얘깃거리에 매료된다. 친구나 가족 간에 매우 슬프거나, 즐겁거나, 무서운 애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둘이 모여 그곳에 없는 제3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을 때도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아직까지 연극과 영화, TV드라마 등에서 쓰이는 스토리텔링의 형식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1. 주인공이 있다.
2. 그는 무언가를 원한다.
3. 그래서 그는 그걸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4. 하지만 그의 노력은 장애물과 집요한 방해로 위기를 맞는다.
5. 그는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클라이맥스를 만난다.
6. 성공이든 실패든, 그는 결말에 도달한다.

 주구장창 잠자거나 뽀뽀하는 장면만 담은 앤디 워홀의 아방가르드영화 <잠>(Sleep, 1964)이나 <키스>(Kiss, 1963)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영화는 이 형식을 충실히 지킨다. 이 여섯 가지 형식이 전반, 후반, 그리고 결말에 나뉘어 녹아들어 비로소 한 편의 영화가 된다.

ⓒCJ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영화의 3단계 구조
전반, 중반, 그리고 결말

1) 장편영화에서 전반부는 보통 10-20분 정도를 차지하는데, 드라마적 필요에 따라 30분 이상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전반부는 주인공과 그가 놓인 환경을 소개하는 게 급선무다. 이어서 그가 맞닥뜨리게 되는 일은 그를 헤어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뜨린다.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은 그를 괴롭히는 적이나 환경과 절체절명의 대결을 시작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 궁극적으로 주인공이 품게 되는 목표는 대부분 전반부가 끝날 즈음에 드러난다. 그가 애초에 품었던 원래 목표가 이 시점에서 수정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 <마더> 초반 주인공 엄마는 특별한 목표를 드러내지 않는다. 약재상을 운영하며 단지 지적으로 모자란 아들 도준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정도다.

그런데 전반부가 끝날 즈음 아정이란 소녀가 죽고, 도준이 범인으로 몰린다. 이제 엄마에게 선택이란 없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아들의 결백을 밝히기위해 나선다.

ⓒCJ엔터테인먼트
ⓒCJ엔터테인먼트

 - <복수는 나의 것>의 류는 청각장애 노동자로 성실히 살며 누나의 신장이식수술을 위해 돈을 모은다. 하지만 그는 공장으로부터 해고당하고, 밀매업체를 통해 장기를 구하려 하나 오히려 자신의 콩팥 하나마 저 잃어버린다. 이런 가운데 병원에서 누나에게 적합한 신장을 찾았다며 수술준비를 하라고 한다.

 류는 이제 수중에 돈 한 푼 없다. 하지만 누나는 꼭 살려야 한다. 그의 목표는 당연히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세 편 영화 모두 전반부가 끝날 즈음 주인공의 운명을 바꿔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주인공은 강렬한 목표를 품게 되고, 영화는 이 시점에서 명확히 향후 이야기의 전개 방향에 대한 힌트를 던진다. 나는 이것을 작가의 ‘드라마적 문제 제기’라고 한다. 돈을 구하려는 류나 준을 찾아야 하는 신애, 아들의 결백을 밝혀야하는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드라마적으로 거의 정해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드라마적 문제 제기’가 이뤄지자마자 영화는 가장 긴 러닝타임의 중반부로 넘어간다.

 이제 주인공은 이기기에 버거운 상대와 맞서거나 행한 환경 속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나 방해꾼과 장애물로 인해 온갖 어려움을 겪는다. 더 큰 어려움이 밀려옴으로 인해 또 다시 목표가 수정되기도 한다.

 주인공이 마주대하는 장애물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부지런히 애써야 하고, 결과적으로 관객은 더 큰 흥미를 갖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의 그릇된 심보가 관객의 이중성을 통해 드러난다.

 관객은 스스로를 온갖 난관과 싸우는 주인공의 편이라 생각한다. 그를 응원하고 가엾게 여기기도 하며 불행에 좌절하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만약 관객의 마음대로 주인공이 영화 내내 별 어려움 없이 평탄하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영화를 쌍수 들어 환영할 관객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러닝타임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주인공은 점점 더 어려운 수렁에 빠지게 된다.

 - <마더>의 엄마는 아들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 결국 아들이 범인인 걸 알게 된다. 따라서 그녀의 목표는 수정된다. 결국 그녀는 아들의 범죄를 덮기 위해 애꿎은 고물상 노인을 살해한다.

 - <복수는 나의 것>에서 류의 누나는 자신의 수술을 위해 동생이 유괴범이 된 사실을 알고는 자살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괴한 여자아이 유선이 죽고, 유괴에 동참한 여자 친구 영미는 동진에 의해 살해된다. 류의 목표도 수정된다. 그는 자신을 이런 지옥에 몰아넣은 장기밀매조직원들, 그리고 동진과의 전쟁
을 시작한다.

  온갖 역경을 딛고 영화 내내 성실히 목표달성을 위해 애쓴 주인공의 궁극적 운명은 클라이맥스에서 결정된다. 주인공에겐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의 면류관이 주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영원한 지옥의 고통이 기다릴 수도 있다.

ⓒ시네마서비스
ⓒ시네마서비스

  - <밀양>의 신애는 결국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고통을 견디지 못해 손목을 긋고 거리로 뛰쳐나간다. 하지만 곧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외치는 나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 <복수는 나의 것>의 류는 영미의 복수를 하려하나 동진에게 역습당해 고향 냇가에서 아킬레스건이 찢긴 채로 죽는다.

 - <마더>의 엄마 덕에 도준은 무죄로 감옥에서 나온다. 엄마는 자신의 애초 목표를 달성했으나 남은건 커다란 도덕적 내상이다.

 

 3) 클라이맥스가 끝나면 영화적 에너지가 뚝 떨어지면서 영화는 결말로 넘어간다. 클라이맥스에서 채 소개되지 못한 추가정보들이 드러나면서 마침내 영화는 마침표를 찍는다.

 - <밀양>의 신애는 결국 살아나고 종찬은 그녀를 돌본다. 신애는 종찬과 함께 미장원에 갔다가 준을 죽인 살인자의 딸과 맞닥뜨리게 되고, 견디다 못해 문을 박차고 나온다.

 - <복수는 나의 것>의 동진은 류를 죽인 후 그의 시신을 수습하는 가운데 음독한 팽기사의 아들이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는다. 곧이어 죽은 영미가 속했던 무장혁명세력이 나타나 동진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그의 가슴팍에 칼을 쑤셔 넣는다.

 - <마더>의 엄마는 아들 대신 무고하게 살인자로 몰린 다운증후군 청년을 찾아가 엄마가 없느냐며 위선을 떤다. 그러면서 양심의 고통을 잊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에 침을 놓는다.

 결말 부분에서 관객은 자신이 지금까지 관람한 영화의 의미를 되새기며 정서적 배설을 이루거나 커다란 통찰력을 얻기도 한다.

 두 시간, 약 1만 원 정도 돈을 투자해 두 가지를 모두 얻는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거래가 어디 있는가!

 

 

* 《쿨투라》 2020년 4월호(통권 7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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