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4인의 화가가 그리는 로맨스
[Gallery] 4인의 화가가 그리는 로맨스
  • 김준철(시인,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4.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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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장, 김소윤, 전미영, 최고운

 

  J 바쁘신 중에 이렇게 자리에 함께 해주신 4명의 작가님들께 우선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오늘 진행순서는 우선 간단히 각자의 소개를 해주시고 그다음 이번 전시회에 대한 자신의, 서로의 느낌이나 평을 나누겠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이번 쿨투라의 주제인 ‘로맨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에 딱히 순서를 정하지는 않을 것이고 자유롭게 이야기하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스텔라장입니다. 팝아트 계열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풍성한 색상으로 순수예술을 지향하고 있으면 주로 아크릴, 유화로 그리며 주제는 여러 그림이나 사진 등으로 크고 작게 그리면서 그것을 통해 영감을 찾고 있습니다. 현재는 그림으로의 한계를 느껴서인지 시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전 그거 좋은 생각 같아요. 안녕하세요. 전미영입니다. 시인이 보는 세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훨씬 풍성한 느낌이 될 것 같아요. 너무 부러워요...저는 원래 디자인을 전공했고요. 한국화를 25년 정도 해왔었습니다. 한국화를 할 때는 디자인적 느낌을 버리려고 노력했었고 현재는 반대로 단순함과 디자인적 느낌을 가지고 새로운 시선의 해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새롭게 현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김 김소윤이에요. 아까 말씀에 저도 동의해요. 저도 사실은 시 전공을 했고 현재 카피라이트 일도 하고 있거든요. 한국어로 쓰는 시 작업을 좋아하고요 사실 영어로 쓰는 것은 느낌이 좀 드라이한 생각이 들어서요. 개인적으로 영어는 시에 안어울린다는 생각이거든요. 어쨌든 저는 주로 유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그림의 원하는 느낌을 위해 직접 페인트를 만들어서 쓰고 있습니다. 저는 보통 콘셉트를 정리하여 그리기 보다는 내 안에 있는 영감을 그때그때 토해내서 확인하듯 그리고 해석을 나중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는 작업 자체가 현실에서 도망가는 몸짓이었거든요. 그렇게 내 세상을 구축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예전의 기억으로 회귀되어서 현재는 찰나의 순간, 포착할 수 있는 일상의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J 맞아요. 굉장히 재미있는 시도이고 방법인 것 같네요. 어디서나 그런 불편하고 비밀스런 시선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아요. 찰나의 감정, 그 시선을 묘사하여 다시 그들에게 돌려준다는 것이 굉장히 기대가 되는 작업 같습니다. 

  저는 최고운이구요 선화 예중, 예고, 이대 조소과를 나왔습니다. 이후 3D 애니메이션 작업과 게임, 영화 쪽에서 10여년 일을 하다가 다시 순수예술로 돌아 왔습니다. 현재 일상적인 곳에서 소재를 찾는데 지금은 메탈릭한 호일을 주제로 반추상적, 유화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J 게임이나 영화는 한국에서 하신 건가요?

  최 아니요. 미국에서 했어요. 게임의 경우는 소니에서 ‘갓 오프 더 워’ 이라는 제법 인기 있던 게임인데 그거 만들었어요. 시니어아티스트로 일했어요. 그런데 그 일을 하면서 실망을 많이 했죠. 아무래도 게임의 경우는 보여지는 부분보다 프로그램에 무게가 더 실려 있기 때문에 한계를 느낀 거죠. 그래서 영화 쪽으로 갔다가 결국 순수예술로 다시 돌아왔어요.

  J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만 들어도 4분의 성향이나 그림에 대한 백 그라운드 등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모이게 되셨나요?

  장 맞아요. 사실 서로 잘 몰랐습니다. 한 지인을 통해 알게되었는데 서로 사용하는 컬러나 주제도 전혀 다르기에 걱정도 했지만 그 다름이 주는 ‘시너지’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J 그럼 이번 전시회에서 서로 간의 작품에서 혹은 전제적으로 느낀 점을 간단하게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장 서로가 아직 만족스러운 자신의 색을 만들어내진 못했다고 여겨지지만 갈라진 길 위에서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연습한다면 더 좋은 기회가 오리라 믿습니다.

  최 저는 개인적으로 김소윤작가의 작업이 굉장히 시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르게 느끼게 되는, 혹은 배우게 되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는 그 무게나 고민이 너무나 컸고 무엇을 할지 몰랐는데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할 일이 많아지고 또 그 생각이 에너지처럼 안에서 터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리고 이번 전시회에서도 다른 형식의 작가들과의 교류가 주는 느낌이 그림을 만들어내는 방법론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경우는 스텔라장작가의 그림이 굉장히 강렬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예전에 그리신 시리즈들도 너무 좋아했고요. 주제 선정이 탁월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최고운 작가의 메탈릭한 세밀한 터치와 그 안에서 오히려 그림으로 인식하게 해주는 감성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전미영작가의 그림에서는 재료와의 소통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모습이 좋아보였어요.

  J 전시회에서 서로의 작품을 마주하듯, 오늘 네 분의 소감도 서로에게 인상적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자, 그럼 이제 이번 쿨투라의 주제이기도 한 ‘로맨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너무 죄송하지만 제가 여러분을 뵙기 하루 전에 ‘로맨스’라는 주제를 전해드려서 상당히 미안한데요. 어떠십니까? 자유롭게 로맨스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 너무 빤한 답을 드릴 것 같아서 제가 먼저 답할게요.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가장 오랜 로맨스가 제게는 결국 그림이고 재료인 것 같아서요. 그게 사실 저에게는 애증과도 같은 느낌이거든요. 스튜디오에 혼자 작업을 할 때면 페인터로써 페인팅과 붓질 사이에서 로맨스를 가질 때 그 결과물로 결국 내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이라 믿어요.......그래서 그림 그리는 작업이 굉장히 즉흥적이고 또 붓질 역시 캔버스와 대화하듯 주고받는 작업 형식이 많아요.

  J 그렇군요. 말씀하신대로 가장 뻔하지만 안전한 답이어서 제일 먼저 답해주신 것 같네요. 하지만 즉흥적인 움직임이나 서로간의 밀당같은 붓질이 로맨스가되어 그림을 만들어낸다는 말은 상당히 로맨틱하게들리네요. 이번에는 최고운 작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최 저 역시 그다지 신선하진 못할 것 같네요. 어쨌든 전 ‘로맨스’라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면 이와이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입니다. 10대의 기억, 그 첫사랑, 무엇보다 서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등등 뭐 이런 느낌이 아련하게 그려져요.

  J ‘러브레터’는 거의 첫사랑에 대한 교과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고 하기 보다는 시작도 하지 못한 사랑이라고 해도 될 것 같기는 하지만요. 그런 시선으로 본다는 ‘로맨스’는 상당히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최 맞아요. 그래서 원초적인 로맨스는 김소윤 작가의 말처럼 작품인 것 같기도 해요.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의 만족을 위한 그림 작업은 많은 상처 속에서도 불구하고 그 자체, 그 행위가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J 그런데 이러한 것을 로맨스로 명명하기에는 좀 모호한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요...다른 견해를 가지신 분은 없으신가요?

  김 네, 전 조금 반대적인 생각인데요. 비현실적인 상태를 로맨스라고 부르기는 힘들 것 같다고 봅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환상의 대상과 사랑에 빠진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예전에 애인과 워싱턴DC에 방문했다가 길거리에서 엄청나게 싸운 적이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먼 곳까지 차를 운전해서 갔고 결국 함께 차를 운전하고 돌아와야 했던 거죠. 그때가 좋았던 게 결국 환상이라는 사랑이 깨지고 현실이라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저는 그런 현실적인 사랑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우의 수들이 로맨스가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그 애인과 곧 결혼할 예정이구요.

  J 축하드립니다. 재밌네요. 현실적인 사랑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우의 수. 물론 싸움이나 더 나아가서 이별까지도 로맨스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 못해본 것 같습니다. 전미영 작가는?

  전 저는 간단해요. 살아있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J 굉장히 선문답적인 답변 같은데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답해주실 수 있을까요?

  전 굳이 선문답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고요. 말 그대로 누구나 가지고 있고 또 묻어놓고 또 잊어 먹거나 잃어버리기도하는 뭐 그런 거 아닐까요. 예전에 처음 커피가 들어왔을 때 그것을 즐기는 것이 낭만이었고 또 트위스트 춤이 유행했을 때는 그 춤을 추는 것 낭만이었듯이 내가 살아서 숨 쉬며 공유하는 문화나 예술이나 사람과의 대화가 낭만 혹은 로맨스가 아닐까 싶어요.

  장 저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로맨스, 소위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이 다 다르다고 봐요. 목소리, 얼굴, 사는 곳, 먹는 것 다 다르듯 사랑의 무게도 제각각이라고 생각해요. 내 사랑도 남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고 또 경험되어질 수도 없다고 봐요. 결국 그 판단은 극도로 개인적이라는 거죠.

  J 결국 로맨스라는 것은 그 한계점이나 기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해석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을텐데요. 가볍게 보자면 우리가 요즘 흔히 말하는 ‘썸’이라는 것에 해당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무겁게 보자면 사랑의 진행과정에 두어야 할 텐데.저희가 나눈 이야기로 볼 때는 결국 이상적인 로맨스는 이루어지지 않아야 완성되어지는 것이고 또 그런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이기적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그럼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내가 추구하는 로맨스에 대해 말해주시겠습니까?

  김 저는 겨울바다를 꿈꿔요. 물론 경험에서 나온 거죠. 오래전, 겨울 바다에 갔다가 너무 추웠어요. 정말 충격적이라고할 만큼 매서운 추위였어요. 그런데 그 충격이 지나고 나니 어느 순간에 평온한 상태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실내에 들어와서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저릿한 느낌이 이어지더라고요. 그때,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로맨스도, 사랑도, 그랬으면 좋겠고 또 그럴 것이라고 믿어요.

  J 아까 전미영 작가가 말씀하신 살아있다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말에 이어지는 말씀같이 들리네요. 반박은 못하겠네요. 결국 살아있어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니까요.

  전 가끔 영화‘매디슨카운티의 다리’가 떠올라요. 늘 사랑을 갈망하고 또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그러다 혼자 춤도 추고 술도 한잔 하고 노래도 부르고 다시 그림을 그리고 또 내 그림에 키스도 하고…….제가 꿈꾸는 로맨스는 아마 끊임없이 갈망하는 그 무엇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J 상당히 흥미로운 답을 주시네요. 저도 오래 전에 책과 영화를 다 봤는데 오랫동안 두 중년 배우의 연기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선명했지만 세상에는 모호했던, 그 저울의 무게로 많은 이들과 토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 그럼 마지막 스텔라장 작가도 답해주시죠?

  장 예술이라는 이름에 내가 한 작업들이 너무나 초라할지 모르지만 결국 예술을 대상으로 한 사랑에 버금가는 것은 없는 거 같아요. 오랜 시간 이상적인 사랑을 지고지순함에 두고 있지만 그러나 그 대상은 인간끼리가 아닐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해요. 저는 작업 중에 많은 음악을, 특히 사랑에 관련된 음악을 틀어놓고 하는데 나와 음악 그리고 작업의 이질적 환경 속에 작업을 하면 할수록 누구와도 절대 나눌 수 없고, 얘기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봐요. 예술가이기에 가장 숭고하고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을 추구하지만 그러기에 다시 한 번 인간을 대상으로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네요.

  J 오늘 저는 여러분과 정말 유익하고 인상적인 이야기를나눈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의 길에서, 나는 로맨스가 항상 누구에게나 가까이 존재하고 어떤 로맨스는 이미 깊은 기억의 상자에 있다고 믿습니다. 어쨌든,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잊혀졌고 또 다른 일부는 여전히 가시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과 나 자신 모두가 '로맨스'가 항상 우리의 삶에 힘을 불어 넣었으며, 우리가 그것을 기억할 때 그것은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되새긴 것 같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더 나은 작품과 최고의 로맨스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김준철
《시대문학》 시부문 신인상과 《쿨투라》 미술평론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꽃의 깃털은 눈이 부시다』 『바람은 새의 기억을 읽는다』가 있음. 현 미주문인협회 부회장 겸 출판편집국장, 《쿨투라》 미주지사장 겸 편집위원. junckim@gmail.com

 

 

* 《쿨투라》 2019년 4월호(통권 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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