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ICON] 멋있거나 귀엽거나, 허니제이의 두 가지 매력: 2021 ICON 방송 부문
[2021 ICON] 멋있거나 귀엽거나, 허니제이의 두 가지 매력: 2021 ICON 방송 부문
  • 김세연(미디어평론가)
  • 승인 2021.12.01 0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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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제이 공식 트위터
ⓒ허니제이 공식 트위터

  대한민국 여자들 춤 X나 잘 춰!

  〈스트릿 우먼 파이터〉(Mnet) 6화에 등장한 제시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음주가무의 민족이라 했던가. 한민족이 흥이 많고 가무에 능하다는 이야기는 중국 고서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술과 노래에 비해 춤을 즐기는 일은 드물지 않나?얼큰하게 달아오른 노래방에서 필 충만한 곡조를 뽑아내는 사람은 있어도, 댄스 실력을 자랑하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못 봤다. 그런데 나의 이런 편견을 뒤바꿀만한 현상이 요즘 벌어지고 있다. 유튜브에는 댄스 챌린지 영상들이 심심찮게 돌아다니고, 공연 직캠 영상에는 가수가 아닌 댄서를 응원하는 댓글들이 달린다. 동네 댄스학원 수강생까지 늘어나는 추세라 하니, 대한민국에 춤바람이 불고 있다 할만하다.

  K-댄스 돌풍의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바로 ‘허니제이’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 최종 우승팀인 ‘홀리뱅’의 리더이자 한국 걸스힙합의 전설로 불리는 그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하루 종일 허니제이 영상만 찾아보고 있다’, ‘춤은 말할 것도 없고 인성이 빛난다’, ‘허니제이 언니랑 결혼하는 법 좀 알려주세요’ 등 지금 SNS에서는 ‘허니제이 앓이’가 한창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방송에서 했던 말을 따라 하고, 그녀의 가방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한다. 스스로를 ‘스우파 과몰입러’로 칭하는 사람들은 허니제이의 매력 포인트를 두 가지로 꼽는다. 멋짐과 귀여움. 이 상반된 매력의 조합이 한계를 모르고 상승하는 허니제이의인기 비결이다.

ⓒ엠넷 페이스북
ⓒ엠넷 페이스북

  ‘멋짐’은 그녀의 견고한 댄스 실력에서 기인한다. 비주류였던 ‘걸스힙합’이 스트릿 댄스의 중심 장르가 된 데는 허니제이의 역할이 컸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 스트릿씬에서 성행하는 걸스힙합 스타일은 다름 아닌 허니제이 스타일”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춤꾼들 사이에서 이미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녀의 실력이 이번 〈스우파〉 출현을 계기로 대중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된 것이다. 〈스우파〉 심사위원을 맡은 황상훈 안무가의 말을 빌리자면 “페미닌한 멜팅 그리고 와일드”가 그녀의 무대를 설명해주는 수식어다. 여성스러운 무드 속 강인함과 절제된 카리스마. 허니제이는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멋있을 수 있는지 몸으로 구현해 보인다. 그동안 눈요깃거리 정도로 여겨지던 여성 댄서들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것도 이 지점과 맞물린다. 예쁘다, 섹시하다 대신 ‘멋지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허니제이의 그루브에 시청자들은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다면 ‘귀여움’은 무엇인가. 이 단어는 허니제이의 인간적인 매력들을 통칭하는 데 사용된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와 달리 일상생활에서 허니제이는 다소 허술한 면이 있고 소탈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시청자와 소통하는 모습은 어이없을 정도로 친근하다. ‘순대는 초장에 찍어 먹어야 맛있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허니제이를 보면 조금 전까지 무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던 사람과 동일인물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상반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낙차에 오묘한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허니제이의 꾸밈없는 성격을 보여주는 예로 ‘퇴근가방 짤’이 있다. 〈스우파〉 개인 인터뷰에서 허니제이가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있는 장면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허니제이 퇴근하다 붙잡혔냐’, ‘칼퇴 욕망을 담은 가방’ 등 익살스러운 댓글들을 불러온 이 장면은 지금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화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신경 쓰지 않는 듯, 무심하게 가방을 멘 채로 춤 이야기에만 몰두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웃음버튼을 눌렀다.1

  그녀의 소탈하고 쿨한 성격은 경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흔히 이런 배틀 프로그램에서 기대하게 되는 것은 출연자들의 넘치는 스웩과 자신감이다. 그런데 허니제이는 과장된 당당함을 연출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경연에 임하며,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평가에 대해서도 쿨하게 받아들인다. 프로그램 초반 허니제이가 속한 홀리뱅 팀은 연이어 낮은 성적을 기록하는 불운을 떠안았다. 이때 그녀는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는 한편으로 “나는 평가하러 나온 사람이 아니라 평가 받으러 나온 사람이다”라며 결과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말에는 내가 비록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원하는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겸허함이 녹아있다.

  늘 운이 좋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면, 나의 노력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한 억울함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점점 스스로를 불신하게 되고 나를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허니제이가 택한 방식은 끝내 나다움을 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메가크루미션에서 홀리뱅 팀은 개성이 짙은 무대를 구현한다. 경연에서 이기기 위해 대중성을 고려하기보다는 평소 자기 색깔대로, 그냥 홀리뱅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대반전이었다. 대중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안무가 오히려 대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순간순간 자신을 포장해 돋보이려 하기보다는, 불안하더라도 스스로를 믿고 정면승부하는 사람의 승리에 시청자들은 함께 감동했다.

  최근 허니제이와 관련된 과거 미담들이 여기저기서 속출하고 있는 모양이다. 허니제이는 “나도 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닌데 너무 좋은 점만 부각된 것 같아 무섭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나 대중들은 허니제이를 완벽한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때로는 흔들리고, 허술한 면이 많고, 우왕좌왕할 때도 있지만 그렇기에 매번 더 나은 선택지를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녀의 성장을 함께 응원하는 크루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틀에 출전하던 허니제이에게 립제이가 보낸 찬사를 인용할까 한다.

  “믓찌다 믓찌다 울언니!”

 

 


늘 지니고 다니는 이 가방에는 천식 호읍기가 들어있다고 후에 허니제이가 밝혔다.

김세연
미디어비평가.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소설집 『홀리데이 컬렉션』이 있다. 현재 동국대 다르마칼리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 《쿨투라》 2021년 12월호(통권 9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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