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별과 달과 돌이 꿈꾸는 곳: 경북 영천 시안미술관 & 별별미술마을
[미술관 탐방] 별과 달과 돌이 꿈꾸는 곳: 경북 영천 시안미술관 & 별별미술마을
  • 김명해(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1.03.0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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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은 맑고 바람은 차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이다.

  농부들이 바빴던 가을걷이도 끝나고 올겨울 따뜻하게 지낼 마른 장작도 패두었다. 맛있는 엄마표 김장도 넉넉하게 저장해 두었으며, 한해를 정리하며 새로운 새해를 맞이할 준비도 다 했다. 그런데도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벌써 1년, ‘코로나의 존재로…

  뉴스에서 매일 같이 보도되는 확진자 수, 지역별 확진 현황, 중증환자와 사망자 수, 그로 인해 사람 간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 밀폐ㆍ밀접ㆍ밀집 지역 방문 자제, 손씻기, 먹을 땐 말 없이 얘기할 땐 마스크 쓰고. 하루에도 몇 통씩 안전안내문자가 지금의 심각한 상황을 알릴 때마다 어딜가기도 답답한 노릇이고, 이젠 이런 것들이 무감각하게 들리고 일상의 자유가 너무 그리울 뿐이다.

  아기 예수 탄생한 즐거운 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도 코로나로 집에 계셔야 하고, 줄줄이 꼬리에 꼬리를 문 연휴에 쾌청한 바람이 적절히 불어오니 문득 어디론가 움직여야 될 것만 같아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집에서 가까운 영천 시안미술관과 별별미술마을로 출발했다.

  시안미술관은 집에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이자 미술관 주변 동네가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볼거리가 많아 종종 가는 편이다. 또 이곳은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고 안부를 묻고 싶은 것도 많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귀애정(龜厓亭) 정자 앞 연못의 연꽃들은 올겨울 우째(어떻게) 지내는지, 귀애고택(龜厓古宅) 앞 별 따는 소년은 단짝 강아지랑 추운데도 아직 별을 따고 있는지, 가상교(다리) 앞 수달은 굶지 않고 내(川)를 잘 지키고 있는지, 동네 버스정류소 지붕에 달린 풍선은 바람에 몽땅 날아가 버리진 않았는지, 마을 안 〈우리 동네 박물관〉주민들은 잘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시안미술관은 경북 영천시 화산면에 2002년 폐교된 화산초등학교 가상분교건물을 삼각지붕의 현대식 건물로 리노베이션하여 탄생시킨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이자 전문 미술관이다. 옛 학교의 향수와 현대식 건축물이 공존할 수 있도록 2004년 시안아트센터로 설립하여 지역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대도시 위주의 문화편중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제 1종 사립미술관이다. 특히 연간 3~4회의 기획전시를 통하여 동시대 현대미술의 다양한 담론과 방향성을 주제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제시해 오고 있으며, 지역은 물론 대한민국 대표 작가와 해외 작가를 포함한 다양한 창작가들의 작품을 통하여 수준 높은 전시의 구성과, 다양한 지역 연합체와 지역민과의 소통을 위한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시안미술관은 본관 3실, 별관 1실로 구성된 총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금 전시는 《BE TRUE》라는 전시명으로 청년작가 4인(강원제, 권효정, 최승준, 하지원)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주하는 하지원 작품은 대상(원형)을 해체하고 새로운 구성으로 조립하여 존재하지 않거나 사라진 원형(소멸된 진실)에 대해 질문하고, 권효정은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을 통해 대상을 온전히 볼 수 없더라도 그 너머의 원형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시키며, 3층 전시실에 있는 강원제 작품은 완성된 그림을 소멸(훼손)시키고 선택된 대상이 새롭게 생성됨으로써 결과와 과정의 흐려진 경계를 지시하며 전시의 끝과 다시 시작점으로 역전시키는 작업들로 전시되어있다.

  현대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전시실의 마룻바닥은 옛 학교의 바닥을 그대로 살려두어 전시장을 걸을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마룻바닥 소리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고양이걸음으로 움직이게 한다. 교실과 복도 경계였던 기둥들은 작가의 작품설치에 따라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되고 현대적 전시실은 과거의 흔적들로 적절하게 어울리고 거기에다 젊은 작가들의 실험성 강한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삶의 의미와 예술의 진정성을 부추긴다.

  그 외, 시안미술관에는 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깔아 주요 조각 작품을 전시해 놓고 있으며, 다양한 기획의 미술관 교육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 전용 공간인 교육실, 연간 4~5명의 젊은 작가를 선정하여 창작공간과 전시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레지던스 룸, 작가의 창작품으로 구성된 다양한 문화상품 판매하는 뮤지엄샵, 소규모 미술 워크숍은 물론 공방 등 다양한 활동이 진행 중인 아트스위치 스튜디오가 있다. 특히 필자의 딸이 제일 좋아하는 미술관 2층 카페는 시야가 탁 트인 공간으로 운동장과 주변풍경을 만끽하기 좋은 공간이다.

  2005년 한국여행작가협회로부터 ‘폐교를 활용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선정된 바 있어 최근 각광을 받고 있지만 필자는 미술관에 갈 때마다 늘 반겨주는 오래된 플라타너스나무 형제들이 좋다. 어릴 적 내가 다닌 초등학교의 플라타너스나무를 보는 듯하다. 우리 학교도 몇 년 전에 폐교되었지만 학교의 역사와 함께한 플라타너스나무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 여기 이 나무들처럼… 미술관 지킴이이자 수호신으로. 정말 정겹다.

  플라타너스나무에게 눈도장을 찍고 시안미술관 옆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돌아 들어가면 바로〈별별 미술마을의 한 구역인 가래실문화마을이다. 이곳 문화마을은 시안미술관이 미술관의 담을 허물어 마을과의 물리적인 경계를 없애고 마을과 다양한 연계사업을 펼쳐 지역사회의 새로운 상생모델을 구축해 온 결과로, 2011년 마을미술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문화예술마을이다.

  별별미술마을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신몽유도원-다섯 갈래 행복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북 영천시 화산면과 화남면 일대 마을의 문화유산과 자연풍광, 주민의 일상을 예술작품과 연계하여 예술마을을 조성하여 다섯 개의 길을 중심으로 마을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도록 했다. 다섯 개의 길은 걷는 길, 바람길, 스무골 길, 귀호마을 길, 도화원 길로 마을 역사와 작가의 이야기를 담아낸 설치, 벽화, 조각, 미디어 등 약 70여점의 예술작품들이 제작 설치되어있다.

  우선, 걷는 길은 가상리 마을을 중심으로 골목골목 숨어 있는 예술 작품을 찾아보는 산책길로 쉬엄쉬엄 걸으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풍선과 여행에 초점을 맞춰 환상적인 동심의 세계로 떠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예쁜 시골버스 정류장 〈풍선을 타고 떠나는 환상여행〉, 버려진 폐가에 노란 철망이 그물처럼 쳐져있는 설치작품 〈새장의 새〉, 농산물을 판매하고 주민이 만든 전통 규방공예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아트마켓 〈알록달록 만물상〉, 2대째 운영되고 있는 오래된 정미소의 건물벽인 나무를 통해 이 정미소와 마을이 보내온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작품 〈연륜〉, 빈집을 안내센터이자 무인카페로 탈바꿈시킨 〈바람의 카페〉, 가상리 마을 분들의 예전 생활모습을 볼 수 있는 풍경사진, 인물사진, 생활사진, 가족사진, 문화재사진과 사용하던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어 이 마을의 역사와 마을 어르신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우리 동네 박물관〉, 역사와 생태를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재실 〈풍영정〉 등 마을의 이야기와 다양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 꽃잎을 통해 삶에 순응하며 착하게 살아가는 마을사람의 순수함을 표현한 〈꽃잎〉과 마을 주민들이 직접 핸드프린팅한 작품인 〈위대한 손〉, 화산면 마을사람들의 농촌생활 모습을 그린 〈신강산무진도〉 등의 그림벽화가 마을골목이나 큰길 담벼락 곳곳에 그려져 있고, 지금 당장이라도 여행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여행가의 하늘〉, 마을 건조장엔 영남내륙지방에서만 먹을 수 있는 생선 돔베기(상어고기)를 형상화한 〈돔베기〉, 금방이라도 하늘위로 뛰어오를 기세로 한옥 바깥화장실 지붕위에 설치된 〈버블맨〉 같은 입체설치작품도 있다.

  특히 마을 곳곳에는 영천이 별의 도시인만큼 별과 달, 바람 등 자연을 주제로 한 벽화, 입체, 설치 작품도 많다. 〈별이야기〉 벽화와 여러 종류의 별자리를 형상화한 〈별자리〉 부조벽화 뿐만 아니라 조각 작품 〈해와 달, 돌의 소리〉, 별을 손바닥으로 들고 있는 〈별빛소녀〉, 찬란하게 빛나는 별을 따고 싶은 사람들의 소박한 바람을 동화적으로 표현한 〈저 하늘 별을 찾아〉, 마을 앞 다리를 알록달록 작품으로 설치한 〈별다리〉 등 우리가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곳곳에 수준 높은 예술작품들이 숨겨져 있다. 그 밖에 별별미술마을은 걷는 길 외에도 바람의 자전거, 아트자동차로 바람을 타고 마을을 커다랗게 한 바퀴 도는 바람 길이 있으며, 스무골길은 역사와 풍수로 이 마을의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는 생태·역사·예술 트레킹 코스로 가상교 근처 실개천에서는 수달이 살고 있으며 스무골의 혈등 자리와 바람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풍향계 조형물은 관을 통과하여 울리는 바람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귀호마을 길은 지방문화재인 귀애고택과 귀애정의 역사와 잘 어우러진 예술작품 〈저 하늘 별을 찾아〉을 감상하고 만끽하는 보물 길이며, 도화원 길은 위치상 행복프로젝트의 시작이자 끝에 해당하는 길로 넓은 복숭아밭이 펼쳐진 모산 골짜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는 산책코스로 5월이면 복사꽃으로 향긋한 행복 길이다.

  이렇듯 영천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미술관이 들어서고 마을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생동감 넘치는 예술문화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관람객들은 시안미술관의 전시작품 뿐만 아니라 마을을 산책하며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조형물들을 감상하며 화산마을의 오랜역사와 전통, 마을주민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마을 주민들은 타지역에서 온 관람객들에게 마을을 소개하고 예술에 스며있는 일상적 이야기를 펼칠 기회를 줌으로써 서로가 공공미술을 통해 공유하고 소통하고 미적 체험을 경험하는 결과에 이르렀다.

  문화예술자원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앞으로도 계속 미술문화마을로 잘 유지하고 보존되기 위해서는 마을 주민들뿐만 아니라 지역지자체와 예술작가, 관람객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지지가 요구된다.

  영천 시안미술관과 별별미술마을은 예술마을프로젝트의 롤모델(Role model)이며 이러한 공공예술마을이 우리나라 곳곳에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미술마을 동네 한 바퀴 돌고나면 마지막엔 미술관 2층 카페에 들러 차를 마셔야 행복 길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추운 날이라 달달하고 따뜻한 코코아를 마셨는데 카페에 손님이 한명도 없다. 지금 상황이 불안하니까 어쩔 수 없다. 생뚱맞지만 이 동네에 오면 꼭 이 노래가 생각난다 .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은 ♬밤 하늘이 반짝이더라∼∼
긴 하루 끝♩ 고요해진 밤거리를 걷다♪ 밤 하늘이 너무 좋더라∼∼
♬나와 별 보러 가지 않을래∼∼
- 적재 〈별 보러 가자〉

  코로나 마침표를 찍으면 보현산(영천) 천문대에 별 보러 가야겠다.

 

출처: 영천 시안미술관 http://www.cianmuseum.org/
이미지 출처: 영천시청 문화관광 https://www.yc.go.kr/toursub/garaesil

 

* 《쿨투라》 2021년 2월호(통권 8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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