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현대미술을 마주하다: 경주 우양미술관과 현대미술
[미술관 탐방] 현대미술을 마주하다: 경주 우양미술관과 현대미술
  • 김명해(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2.04.0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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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oyang Museum of Contemporary Art
ⓒ Wooyang Museum of Contemporary Art

1991년 경주 보문호수 옆,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가을엔 노란 은행가로수가 장관을 이루는 곳에 현대미술 중심으로 계획된 미술관이 들어섰다. 보문 힐튼 호텔과 같은 대지에 서로 엇비슷하게 마주보고 있는 미술관은 깔끔하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상기된다. 미술전문 잡지나 도록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현대미술 작품을, 그것도 해외유명작가의 작품을 서울 아닌 지방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에는 엄청난 일이었다. 필자도 현대미술을 맘껏 감상하고 지방인으로서 겪는 문화적 소외감을 달랠 겸, 매년 경주까지 전시를 보러 열심히 다녔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에 국공립미술관이나 사립·개인미술관이 많이 생겨났다. 각각의 미술관들은 그들만의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체계적인 조직과 전문적인 전시기획 구성으로 미술관 운영을 잘하고 있다. 하지만 90년대 초 현대미술이 흔하게 보급되지 않던 시기에 들어선 경주 ‘선재미술관’은 매번 국내외 거장들을 초청하여 전시했고, 기획과 홍보, 전시 관련 세미나와 작가와의 만남을 실시하는 등 현재의 다른 미술관 설립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재미술관’은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이자 미술애호가였던 정희자 여사의 개인소장품에서 출발해 고향인 경주에 미술 보급을 위해 개관하게 되었고,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큰아들 ‘김선재’를 기리는 의미에서 ‘선재미술관’으로 명명되었다. 그러다 대우그룹의 경제난으로 인해 지금은 수산기업인 우양산업에 2013년 매각되어 ‘우양미술관’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고, 지금도 꾸준히 현대미술 중심으로 전시를 진행해 오고 있다.

ⓒ Wooyang Museum of Contemporary Art
ⓒ Wooyang Museum of Contemporary Art

우양미술관은 국내 미술관 건립이 거의 전무하던 시기에 가장 성공적으로 디자인된 미술관 건물로도 평가받고 있다. 미술관 건축은 국내 건축계 1세대 원로이자 살아있는 전설 김종성 건축가의 작품이다. 그는 “건축의 주인공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우양미술관은 그런 나의 건축관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다.”라고 했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의 현대적 구조를 갖춘 단순한 직사각형 건물(전시관)과 둥근 돔을 낀 직사각형 건물(업무동)을 살포시 포개 놓은 미술관은 수평으로 길고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지만, 굉장히 돋보이는 건물이다. 왜냐하면 외관이 주는 단조로움을 희석하고 조형적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 분홍과 진녹색의 자연석으로 마감하였고, 내부는 우리의 전통 한옥 건축의 구조를 빌려와 건물을 지어 ‘빛과 기둥, 비율’로 절제된 형태와 기능을 충실히 구현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지붕 외관의 반원통형 천정을 통한 자연채광과 인공채광을 함께 사용해 전시실의 밝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또한 내부 습도 조절을 위해 바닥에 나무 자재를 사용하는 등 당시의 미술관으로서는 첨단시설과 규모를 자랑한다. 외관상의 형태적 다양성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내부 공간의 활성화와 역동성에도 신경을 썼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증·개축이 없었으며, 30년 동안 이곳을 드나든 필자 눈에도 우양미술관은 지금도 처음 모습 그대로다.

백남준 〈고대기마상〉(1991)
백남준 〈고대기마상〉(1991)

미술관 주출입구 중앙로비에 들어서면 전시실과 공영공간이 양옆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하 1층과 2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바로 보인다. 3개의 층이 서로 개방되어 있어 2층 천정에서 비치는 자연광이 1층 로비까지 내려와 내부 전체가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일관적이다. 로비 왼쪽 2전시실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품이 하나있다. 바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고대기마상〉(1991)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경주에 현대적 미술관이 설립되는 것을 기념하여 옛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라의 〈기마인물형토기〉를 모티브로 제작한 작품이다.

우양미술관은 우리나라 동남권의 대표적 현대미술관으로서 해외 미술관과 연계된 대규모 국제전을 비롯해 현대미술을 역사적으로 조망하며 국내외 중견·원로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회화, 조각, 설치, 비디오아트, 사진 등 현대미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폭넓게 소개해 오고 있다. 그래서 이번 「미술관 탐방」은 우양미술관에서 현재 진행 중인 소장전시를 비롯하여 미술관이 소장한 해외작가 작품 위주로 소개하려 한다. 미술관 소장품 중에는 각국의 여성작가들이 유독 눈에 띈다. 니키 드 생팔, 막달리나 아바카노비치, 로트라우트 클라인 모콰이, 낸시 그레이브스, 샌드 스코글런드는 여성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니키드생팔 〈나나-천사〉(1993)
니키드생팔 〈나나-천사〉(1993)

우선, 니키 드 생팔(프랑스, 1930-2002)은 1960년 누보레알리즘Nouveau Réalisme1 작가로 인정받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현대미술가이다. 어린 시절 성적학대와 결혼생활에서 상처받던 여성으로서의 굴레를 극복하고자 시작한 미술치료가 계기가 되어 회화, 조각, 영화 등 다방면에서 예술 활동을 했다. 〈나나〉 시리즈는 대중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은 역작 중 하나로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를 과장하여 풍만한 이미지와 화려한 색채로 장식한 여성상을 미의 화신처럼 묘사한 작품이다.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 얼굴에는 눈, 코, 입이 없으며 자유분방하게 뛰어다니는 활력 넘치는 동세를 취하고 있다.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정립하고,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고 과감하게 드러내며 성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예술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폴란드 출신의 막달리나 아바카노비치(폴란드, 1930-2017)는 다양한 섬유를 이용한 조각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로 표현한다. 그녀의 작품 〈등80〉(1976-80)은 인체의 ‘등’ 부분을 도드라지게 강조한 군상 80개가 군중 속의 소외감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유년 시절 나치에 의해 자행된 학살과 공산주의 정권 아래 작가가 겪어야 했던 탄압과 억압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 삶이란 그 자체가 고통이자 짐이며 고뇌였기에 여러 신체 부위 중 힘없고 처진 어깨의 뒷모습인 ‘등’을 집중적으로 포착하여 삶의 무게를 상징하듯 표현한 작품이다.

원색의 강렬한 색채를 활용하여 생동감을 부여하고 특유의 절제되고 간결한 형태로 작품세계를 표현하는 로트라우트 클라인 모콰이(독일, 1938- )도 여성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감수성을 작품에 반영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 〈사랑의 다리〉(2003)는 상쾌한 바람에 긴 머리를 날리는 여인이 무지갯빛 하모니를 노래하며 우리를 이상향의 세계로 인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조각 작품이다.

낸시그레이브스 〈키메라〉(1983)ⓒ Wooyang
낸시그레이브스 〈키메라〉(1983)ⓒ Wooyang

낸시 그레이브스(미국, 1939-1995)는 밀랍, 유리, 알루미늄, 종이 등 다양한 소재에 우연성을 개입시켜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는 설치미술가이다. 작품 〈키메라〉(1983)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나운 괴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마치 열대의 화초처럼 화려하고 이국적인 형태를 띄우며 급선회하는 리듬적인 요소와 환각적인 색채가 전반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갖추고 있다.

무대를 직접 꾸미고 필요한 오브제를 만들어 사진을 찍는 ‘만드는 사진Making Photo’을 주도한 여성 작가 샌드 스코글런드(미국, 1946- )는 현실세계를 통해 다른 세계를 만나는 몽환적인 느낌을 사진이라는 역설적인 매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작품 〈일터의 산들바람〉(1987) 또한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오브제들을 생생한 색채와 함께 현장감 있게 연출한 후 마지막에 사진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붉은색과 청색의 보색 배열로 대조된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적인 공간으로 각색하여 그만의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여성작가들 외에 남성작가의 작품들도 살펴보자.

요르그 임멘도르프(독일, 1945-2007)는 자국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2 작가다. 그의 작품 〈친구들과의 저녁식사〉(1987)는 식탁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노동자·정치가·사업가·기자-을 등장시켜 실재 세계에 대한 은유적 혹은 반어적 표현을 통해 전후 독일의 정치 상황, 사회, 예술 등과 관련해 자신이 가진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토마스 맥나이트(미국, 1941- )는 여행지에서의 감흥과 그곳의 이국적인 풍경을 밝고 따뜻한 색채와 단순화된 형태로 낭만적인 세계를 실크스크린으로 표현하여 보는 이에게 편안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작품 〈보스턴 펍 가든〉이나 〈에게 바〉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이 아름답게 장식된 실내에서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시선으로 그려져 있고, 그린 공간은 고요하면서도 그 속에는 잔잔한 리듬감과 생동감이 넘친다.

짐 다인 〈알토나에서 뜨거운 격정〉(1992)
짐 다인 〈알토나에서 뜨거운 격정〉(1992)

짐 다인(미국, 1935- )은 미국의 팝 아티스트이자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해프닝 작업을 하는 행위예술가이다. 그를 대표하는 주제 〈하트〉 시리즈는 불꽃같이 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붓의 흔적을 활용하여 복잡한 인간의 감정과 정신세계를 표현하며 개인적인 의식의 흐름을 상징화하는 표현주의적 화풍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미하일 세미아킨(러시아, 1943- )은 미술뿐만 아니라 연극, 철학, 종교에 관련된 주제를 다양한 매체로 선보이며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하는 작가이다. 작품 〈카니발〉은 불균형적이고 이상한 얼굴의 난쟁이들을 러시아 귀족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연출하여 기괴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분위기로 관람객을 초현실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레오니드 티쉬코프(러시아, 1954- )는 직접 제작한 달 모형을 가지고 세계를 여행하며 사람들 마음에 달빛을 비추는 설치 프로젝트를 해오고 있는 설치 예술가이다. 그의 〈사적인 달〉 시리즈 사진작품들은 어두운 공간에 환한 빛을 발산하는 초승달이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장소에 있을 뿐인데, 동화적이고 몽환적 이미지로 다가와 관람자를 어떤 판타지 공간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이렇듯, 각 나라의 미술 경향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으며,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전달되는 미적 감성은 우리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마치 어릴 적 최고의 선물인 ‘종합선물세트’를 받는 기분이다.

알렉산더 리버만 〈한국1〉(1991)
알렉산더 리버만 〈한국1〉(1991)

미술관 맞은편에 호숫가의 산책로를 따라 넓게 펼쳐진 조각 공원에도 조각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 중에서 알렉산더 리버만(미국, 1912-1999)의 붉은 금속 작품 〈한국1〉(1991)은 백남준의 작품과 함께 우양미술관의 상징이 된 작품이다.

우양미술관은 국내 최초 사설 현대미술관으로 경주의 고대문화와 현대미술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문화적 초석을 놓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다양한 전시기획을 통해 현대미술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여 소개함으로써 국내 여러 미술 기관 중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도 현대미술관의 연맥을 계속 이어나가 국제적인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길 희망해 본다.
 

 


1 1960년대 초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적 미술운동으로 ‘신사실주의’로 번역된다. 당시 유럽과 미국의 화단을 지배한 추상미술의 현실도피성에 회의를 품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수용하려는 미술 경향을 말한다.
2 1980년대에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표현주의적 회화 경향이다.

참고자료
우양미술관 http://www.wooyangmuseum.org/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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