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라이프] 06 - 지금 여기가 학교다
[MZ 라이프] 06 - 지금 여기가 학교다
  • 함은세(본지 객원 기자)
  • 승인 2021.10.13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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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세상으로

  18살 때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해야 할 때마다 사용했던 단어는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종업식 날 18pt는 족히 되어 보이는 대문짝만한 크기로 ‘자퇴원’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종이를 교무실에 제출하며 10년 간의 학교생활을 마무리하던 순간, 내 안에는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쳤다. 후련하지만 섭섭하고, 아쉽지만 속 시원한 오묘한 마음은 얇은 A4 용지 한 장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비대하며 복잡했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를, 그것도 남들 (거의) 다 다니는 고등학교를 그만둔다는 것은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매년 작성하는 연간 목표나 장래 계획 그 어디에도 ‘고등학교 자퇴’ 같은 “섬뜩한” 플랜을 남겨본 적도 없었다(애초에 그런 걸 남기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나는 도리어 입학하고 싶은 대학교의 수시 전형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프린트해 방에 걸어 놓는, 인서울 뭐시기 저시기를 기대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중고딩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가까웠”을 뿐 실제로 지극히 평범한 중고딩은 아니었다(주변인들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감상적이고 유별난 기질이 타고 났던 탓인지, 중학교 입학 이후 나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병원과 집에서 보내야 했다. 갑자기 실신하거나, 숨을 잘 쉬지 못하거나, 헛구역질을 하거나, 손발이 저리고 가슴이 아픈 건 내게는 무척 흔한 상황이었다. 신체적인 고통이 없을 때는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다. 극단적인 우울감과 병적인 불안, 설명하기 어려운 혼란이 나를 심연의 바닥으로 몰고 갔다. 언제나 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바다 어딘가에 홀로 가라앉아 오들오들 떨며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자퇴를 권유한 건 고등학교 교사인 엄마였다. 너의 아픈 몸과 마음을 옥죄이는 시스템에 네 자신을 가둘 필요가 없다며, 넌 어디서나 잘 할 테니 틀 밖으로 나가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는 엄마의 눈빛은 상당히 담백했고 확신으로 반짝였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을 양양의 서퍼들과 함께 보냈고, 변화무쌍한 파도들 앞에서 인내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며 친구로서 바다를 사랑하는 서퍼들을 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본인에게 맞는 파도를 기다리고, 그 파도를 힘껏 즐기고, 혹여라도 맞지 않는 파도를 택했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더욱 더 본인을 갈고 닦는, 그리고 종내에는 넓은 망망대해와 하나가 되는 이 멋진 서퍼들 덕분에 새로운 길을 걸어갈 용기를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 나는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대신, ‘청소년’이라는 길 위를 걷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세상을 학교로

  그로부터 (벌써!) 어언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뭘 했냐고? 두 번의 배낭여행, 한 번의 제주도 자전거 종주, 세 가지의 아르바이트, 한 번의 방송 출연, 여러 번의 다양한 강연과 컨퍼런스 참여, 정식 출판 계약, 모 NGO의 프로젝트 총괄 디렉터 등등… 나열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만큼 많은 일들에 도전했다. 그 과정에서 수십 번의 좌절과 수백 번의 고뇌를 경험했고, 나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 하지만 필요할 때는 도피해도 된다는, 그 도피로부터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는 엄마의 말이 맞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선택으로 꾸려가는 삶은 곧 나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마치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돌파하듯 다양한 고비를 넘을 때마다 점점 성장하는 내가 고스란히 와닿았다. 물론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은 내가 야심차게 계획했던 10대의 마지막 해를 산산조각 냈지만, 오히려 그 과정이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능동성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벽에 부딪혀도 이제는 나의 내면을 달래고 응원하며 건강한 방식으로 난관을 넘어설 수 있었다. 넘어지더라도 일어설 의지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용기가 갈수록 굳건해졌다.

  그와 동시에 다양한 경험들과 그 경험들을 일궈내는 흥미로운 사람들이 내 삶에 찾아왔다. 이 기묘한 돌연변이(AKA.나)의 인생이 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계속 연결됐고, 나는 그들을 통해 세상의 무궁무진함을 보았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인류애를 산산조각냈던 ‘말만 어른인’ 사람들과 달리 나이에 상관없이 나를 주체이자 한 명의 ‘사람’으로 대하는 ‘진짜 어른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들은 한국 사회가 원하는 학력이나 커리어가 곧 그 사람의 재능이나 인간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님을 나에게 지속적으로 상기시켰고, 뜻이 맞고 본인의 능력을 보여준다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찾아오고 배경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들의 삶이 곧 내게는 각각의 교과서와도 같았다. 학교 책상에 앉아 들여다보던 손바닥만 한 책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엄청난 이야기들과 크나큰 세계를 그들 덕분에 간접적으로 체감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방 한 개만 덜렁 멘 채 현지 친구들과 뒤섞여 지내며 거쳐 간 이국의 땅들이, 가지각색의 인간 군상을 마주하게 한 아르바이트 장소들이, 자전거를 타고 중간중간 명상을 하며 온몸으로 느낀 제주가 나의 교실이었고, 스쳐 지나가듯 만났을지언정 내게 영감을 준 모든 사람들이 전부 나의 스승이었다. 그 순간 비로소 보였다.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한 이 사회가, 세상 전체가… 나에게는 어느새 학교가 되어 있었다.

 

  학교를 세상으로

  교육 혁신과 미래 교육의 방향성을 주창해도 모자를 판에 갑자기 ‘Out Of Box’의 삶을 사는 천방지축 스무 살의 인생 모험기를 읽게 되어 적잖이 당황한 독자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대체 언제까지 ‘혁신’을 논하며 대학의 대체제로 “또 다른 대학”을 내세우고, ‘미래’세대를 이야기하며 “지금 당장”에는 집중하지 않을 생각인가? 인간은 매 순간 배우고 성장한다. 단순히 학교에 있는 시간에만 지적 수준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학교라는 공간과 시스템만이 인생의 배움터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낡은 관념이다. 이제 우리는 그 개념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New Normal School’ 같은 복잡하고 소위 말해 ‘Fancy’한 명칭으로 포장지만 갈아 끼우는 것과 다름없으며 큰 신발을 신어서 한 보 앞으로 나아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제자리걸음 말고, 아이들에게 수많은 삶과 드넓은 우주가 존재함을 직시하고 일러주는 시각적 전환은 이제 필수적이다. 나는 그걸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형태로 정의해보려고 한다.

  첫째, 학교에서 세상으로. 아이들의 시야를 학교가 아닌 세상을 기준으로 넓혀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다.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을 비롯해 우리의 삶에 따라오는 여러가지 면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침묵을 곧 중립성의 유지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지 말고, 아이들로 하여금 직접 사고하고 활발히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학교 문화의 본질적인 시작점이다(예컨대 나와 함께 동남아 배낭여행을 했던 독일인 친구들은 대화 도중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데에 거침이 없었는데, 그것 역시 독일의 정치교육이 만들어낸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문화였다).

  둘째, 세상을 학교로. 아이들의 배움이 학교라는 공간을 넘어 세상 전체에서 이뤄지도록 사회와의 연결성을 찾고 다양한 형태의 지식의 장을 열어주는 것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나의 시야를 확장시켜 주었던 게 사회에서 이루어진 경험과 인연이었던 것처럼, 일률적인 교육 대신 세상과의 커넥션을 기반으로 개개인의 재능과 창의성이 발현될 기회를 만듦으로써 아이들 안에 제각기 다른 모양의 불꽃이 존재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셋째, 학교를 세상으로. 교육 시스템과 학교 체계에 대한 불만을 묵살하고 입시 제도를 견고히 하는 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실제로 그 교육을 받고 있는 주인공이자 당사자인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의견과 방향성을 받아들이며 세상을 학교 안으로 가져오는 게 중요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며 좋은 경험을 하고 인생의 길잡이가 되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지만, 학교를 그만둔 후에 내가 마주했던 세계는 학교 시스템 안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와 결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 흥미로운 교실들에서 더 다채로운 스승들과 함께 더 비범한 세상을 학교로 삼았다. 물론 아직 대학도 가지 않은 스무 살의 어린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말대로 최소한 “삶의 모험을 즐기는 태도”를 갖게 됐음에, “나의 삶을 나의 것으로 여기는 마음”과 거기서 비롯된 “나의 사랑을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픈 마음”을 지닐 수 있음에 무엇에도 비하지 못할 기쁨과 열망을 느낀다. 대학 입시나 안정된 직장을 위한 공부를 넘어 직접 부딪히며 나아가는 이 ‘세상 공부’가, 나처럼 유별난 돌연변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침으로 삼아 현재를 살며 미래를 준비하는 바로 지금의 아이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함을 주저 없이 당돌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재입시를 앞둔 지금, 나는 미국에 있다. 홀로 몇 개월을 씨름하며 준비한 학위도 없는 덴마크 학교로의 유학이 팬데믹으로 인해 무산되며 고꾸라진 순간 마치 필연처럼 찾아온 신비로운 기회에 거침없이 응답하고 꼬박 반년을 누구의 도움도 빌리지 않은 채 노력한 끝에 맺게 된 결실이다.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도, 입시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기에 누군가는 쓸데없는 시간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지만, 온전히 나의 힘으로 이루어내는 일들이 점점 늘어날수록 내 안에는 용기와 희망이 가득차고, 그것들이 다시 연결되어 새로운 운명들을 만들어가는 매일매일이 감사하고 즐겁다.

  그렇기에 사회가 기르고 세상이 키운 나는 오늘도 이 드넓은 학교에서의 인생 수업을 이어간다. 나 역시 언젠가는 누군가의 스승이자 학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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