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라이프 11] 문화적 아포칼립스 앞에서
[MZ 라이프 11] 문화적 아포칼립스 앞에서
  • 함은세(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2.03.02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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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유노 스퀴드게임?

  11월 말, 뉴욕 주 윗지방인 업스테이트Upstate NY에서 기차를 타고 뉴욕시티New York City로 내려오던 날이었다. 15분 정도가 지나 도착한 다음 역에서 비어있던 내 옆자리를 채운 건 인상이 좋은 건장한 흑인 남성 분이었다. 업스테이트의 한 동네에서 프리랜서 재활치료사로 일한다는 그 분과 나는 어쩌다 보니 뉴욕시티로 향하는 2시간 반 내내 온갖 세상사와 인생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별의별 스몰톡small talk이 오가던 와중에 아시아 국가 별 차이점과 문화적 특성에 관한 주제가 나왔다. 그분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보며 냅다 외쳤다. “Do You Know 〈Squid Game〉?”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서로를 바라보며 눈만 끔뻑이던 우리는 동시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웃어버렸다. 한국인인 나한테 미국인인 그분이 “두유노 스퀴드게임?”하고 물었다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뭔가 진짜 예전과 다른가봐.

  실제로 내가 미국에서 만난, 10년 이상 미국에 거주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의 위상이 전과 달라졌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특히 한국인은커녕 아시아인 한 명 보기도 힘들던 시절에 이민 와 홀로 고군분투하며 고생한 1세대 이민자 분들은 더더욱 이런 상황을 신기하게 여기시고는 한다. 맨해튼 32번가의 Korean street 가게들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고, 내가 매일 보는 유명 토크쇼에서 〈오징어 게임〉의 인기로 인해 할로윈 시즌에 흰색 반스Vans 스니커즈가 전부 매진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한국어를 하고, 블랙핑크의 로제가 하이엔드 브랜드 수석 디자이너와 함께 패션계 최대 행사인 멧갈라MET Gala에 참여하고, 에스파가 미국에서 제일 큰 추수감사절Thanksgiving 기념 퍼레이드에 참석해서 그걸 생중계로 지켜보고. 단 한 번도 나의 조국이 이렇게까지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한 나는 사람들이 내 국적을 물어볼 때 “Where are you from?”이라는 말과 함께 “Are you Korean?”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생경할 뿐이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에게 “두유노 스퀴드게임?”하고 묻는 그 남자 분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네, 봤어요. 근데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았어요.”

〈타이타닉〉 스틸컷

  어디쯤 왔는가, 미디어의 퀄리티여

  이 말을 들으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안다. 〈오징어 게임〉은 한류의 정점을 찍은 아이코닉한 드라마고, 넷플릭스 전 세계 1위라는 기염을 토한 입지전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 뿐만 아니라 최근 또다시 한국 드라마로서 엄청난 흥행 성과를 세운 〈지금 우리 학교는〉에 대한 생각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돌풍 같은 기록과 별개로, 나는 그 두 작품에 향하는 찬사에 동의하기 어렵다. 

  두 작품은 절체절명의 아포칼립스apocalypse 상황에서 생존의 본능이 발현된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잠재된 잔혹한 원초성을 이야기한다. 생사의 기로 앞에서 타인을 짓밟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면 기꺼이 타인을 해하고,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파는 행위 정도는 마다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두 드라마의 주된 메시지는 결국 사회화된 인간의 심리에 드리워진 ‘악’의 공포스러움이다.

  초대형 플랫폼의 막대한 후원을 받아 제작된 두 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던 이유는 이제는 ‘재난’보다는 ‘일상’에 가까워진 역병의 시대를 살아가며 아포칼립스를 머나먼 판타지로만 느끼지 않게 된 2020년대의 사람들을 정확히 타겟팅한 ‘익숙한 곳에서의 재앙’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갑자기 빙하기가 찾아오거나 화산이 폭발하는 대형 자연재해야말로 언제나 인간과 공존해온 ‘재앙’이지만, 대중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 재해’에 더 큰 관심을 느낀다. 문명사회가 무너지고 전 지구가 뒤집어지는 기막힌 괴멸보다는 그 안에서 사투를 벌이며 살기 위한 발버둥을 치는 ‘바닥의 인간’에 더 집중하는 건 작품이 그렇게 유도하는 탓이다.

  그렇기에 작품을 감상한 시청자들은 역시 인간의 내면에는 악한 마음이 있고, 살기 위해 남을 짓밟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우리는 지금 사회화가 되어 내면의 동물적인 본능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중이라고, 약육강식은 생태계의 당연한 먹이사슬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뭐,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인간 안에 내재된 태초의 원초성은 문명의 훈련을 통해 몸을 옹그린 것뿐이라는 얘기가 맞을지도 모른다. 강한 짐승이 약한 짐승을 잡아먹는 행위를 통해 생태계가 유지되는 건 과학적 사실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악’의 형태를 띤다고 장담하기에는 생각의 원천이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죽음을 코앞에 둔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라면 사회에서 ‘선’으로 정의하는 행위들을 포기할 것이라고 우리가 어떻게 확신하는가?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탑승자들의 불안감을 가라앉히려 선박 내부가 물에 잠기는 와중에도 연주를 계속하던 음악가들, 여공들의 노동 처우 개선을 부르짖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희생을 감수하며 끝까지 대피를 도운 선생님들, 불이 난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 화재 진압과 시민들의 구조를 이어가다 세상을 떠난 소방관들.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절대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지 않고 인간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선’에 대한 긍지를 꿋꿋이 지켜낸 이들에 대한 기억이 우리에겐 무척이나 많다.

  물론 두 작품에 ‘선’이 결여되었단 의미는 아니다.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기훈(배우 이정재)은 같이 게임에 참여한 이들이 베푼 선을 통해 생존자가 되고, 〈지금 우리 학교는〉의 아이들 역시 교사인 박선화(배우 이상희)의 희생으로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이 두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선’은 전부 어딘가 무기력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들의 ‘선’은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장치에 가깝다. 죄다 ‘희생’이고 ‘이별’이다. ‘선’이 가진 진정 강력하고 담대한 ‘힘’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그렇기에 ‘선’은 작품 내의 본질적인 진리로서 작용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이 작품들의 구시대적 형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벼랑 끝에 몰린 여성들의 인권이 성적으로 유린 또는 소모되고, 파편화된 전개를 극단의 폭력성으로 대충 봉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다 제쳐놓고” 추앙과 칭송을 받는 건 이 작품들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덕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양의 관심’이다. ‘서양’의 인정은 곧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이니까. 불안하고 피폐하던 과거의 역사적 기억들로 인해 유난히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갈증이 심한 한국 사회의 갈증은 아직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남아공 소웨토 아파르트헤이트 기념비 ⓒPixabay

  그렇게 중요합니까?

  인류가 늘 그러했다지만, 바야흐로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갖 범죄와 음모와 간악함이 들끓는 시대가 왔다. 이타적인 태도는 곧 자기 자신을 수렁에 빠뜨리는 함정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SNS에는 “착하게 살아서 뒤통수 맞을 바에는 그냥 썅x으로 살아라” 같은 밑도 끝도 없는 감성글이 휴짓조각처럼 여기저기 나뒹군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성악설이 왠지 그럴듯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만약 ‘악’이 인간의 심리에 도사리는 근원적 감정이라고 할지라도, 솔직히 “어쩌라고”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제 악은 그저 ‘뻔하다’. 영장류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형성되고 그들이 모여 마을을, 민족을, 국가를 이뤄 문명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반만년의 시간이 걸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정책)가 폐지된 지 60여 년도 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2015년이 되어서야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됐다.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게 고작 40여 년 전이다. 전쟁은 필요치 않은 죽음만을 무더기로 쏟아내는 것이고, 다른 이를 괴롭히고 해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며, 약자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궁리하는 게 인간의 도리라는 사실을 기본적 인식으로 삼고 그런 생각을 발전시켜 후대에 넘겨줄 고민을 하는 인류가 되려고 얼마나 노력해왔는가?

  전 세계의 인정을 받고, 국가 자체가 트렌드 세터가 되고, 글로벌 ‘문화 대통령’을 갈망하고. 그게 정말 중요할까? 그런 것들보다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흘려온 피와 눈물들, 나는 그것이 더 흥미롭다. 이렇게 차갑고 날이 선 세상에서도 마음의 불씨를 소중히 하는 이들, 나는 그들에게 더 관심이 간다.

  ‘미친 세상’에서도 ‘미치지 않기 위해’ 악을 써야 한다. 우리는, 사회는 그래야만 한다.

 

 


함은세
고등학교 자퇴한 걸 자랑하고 다니는 02년생. ‘인생 재미있게 살기 프로젝트’ 라는 명목 하에 삶을 모험하며 세상을 읽는 눈을 키우는 중이다.

 

* 《쿨투라》 2022년 3월호(통권 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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