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꽃이다
오광수
후드득 비바람에 곤두박질친 뒤에야 알았다
화사했던 꽃의 한때가 순간이었다는 걸
뒤뚱거리는 오리 떼들이 나를 짓밟고
초록 속으로 떠난 뒤에야 알았다
달맞이꽃이 남모르게 피고 지는 비밀을
열흘 붉은 꽃들이 빨강빨강 하는 이유를 알았다
지나고 나면 청춘은 그뿐이었다는 걸
꽃이란 꽃 죄 꺾어 들고
들판을 내달린 뒤에야 알았다
화무십일홍, 화무십일홍의 비밀을
꽃으로 불타는 산, 불타는 산이 된 꽃을
한 아름 안고 당신에게 찾아간 저녁
붉은 장미로 천 리를 내달리던 당신이
가시를 세운 이유를 알았다
마음이 스쳐도 가슴이 뛰지 않는 비밀을
무리 지어 피는 꽃, 저 혼자 피는 꽃
그냥 다 꽃이다
* 《쿨투라》 2022년 2월호(통권 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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