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늘의 영화 - 더 포스트] 시대를 바꾼, 한 여성의 어려운 선택 〈더 포스트〉
[2019 오늘의 영화 - 더 포스트] 시대를 바꾼, 한 여성의 어려운 선택 〈더 포스트〉
  • 김동환(영화 프로듀서,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1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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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더 포스트〉
ⓒCGV 아트하우스

〈더 포스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마지막 엔딩 씬이다. 실제 닉슨 미국 대통령의 통화 내용이 그대로 나오는 장면으로, 닉슨은 앞으로 절대 워싱턴 포스트 기자는 백악관에 단 한 명도 출입시키지 말라고 지시한다. 닉슨의 실제 목소리와 함께 보이는 영상은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워터게이트 건물이다. 건물 경비원이 열려진 사무실 문을 열고 손전등을 비추며 들어간다. 곧 영상은 워터게이트 건물 전면을 보여주며 손전등을 들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끝난다.

〈더 포스트〉의 이 엔딩 씬은 1977년 아카데미 4개 부분 수상작인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의 오프닝 시퀀스로 바로 연결이 된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닉슨대통령이 헬기에서 내리고 나자 공화당 의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의회에 입장하고 연설을 시작한다. 이후, 영화 타이틀이 나오고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오는 첫 씬이 바로 〈더 포스트〉의 마지막 씬과 동일하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직 임기를 못 마치고 물러난 초유의 대통령이 된 닉슨과, 역사상 최초의 패배한 전쟁인 베트남 전쟁. 이 역사적 소용돌이의 가장 중심에 있던 신문사가 바로 〈워싱턴 포스트〉다. 

그동안 우리는 닉슨 대통령 개인이나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많이 봐 왔다. 그 영화들 중 대다수는 닉슨 대통령 혹은 그와 직, 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었던 사람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공교롭게도 거의 모든 영화 속 주요 캐릭터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던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도 결국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폭로했던 밥 우드워드, 칼 번스타인 두 남성 기자의 이야기다.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개 부문 수상과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영화 〈스파이 브릿지〉에서 동서 냉전 시대의 스파이물을 묵직하게 연출한 헐리우드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그가 〈더 포스트〉의 연출을 맡았고, 워싱턴 포스트지의 회장인 케이 그래엄 역에는 메릴 스트립 그리고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 역에는 톰 행크스가 캐스팅 되었다. 역사적 격변기인 70년대 미국의 현대사를 다루는 영화에는 언제나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캐스팅 되었다. 앞서 말했던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폭로한 두 기자의 이야기에도 당시 최고 배우였던 로버트 레드포드와 더스틴 호프만이 캐스팅 되었으니 이 사건의 역사적 무게감을 알 수 있다.

ⓒCGV 아트하우스

전투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

영화의 시작은 베트남에서 일어난 전투 장면으로 시작된다. 비록 짧은 시퀀스의 전투 장면이지만 여러가지 함축된 정보를 담고 있으며, 스필버그 감독이 수없이 연출해 온 전투 장면처럼 짧지만 큰 긴장감을 가지고 보게 된다. 하지만 그 긴장감의 힘은 이번엔 좀 다르게 관객에게 다가간다. 인종에 상관 없이 징병을 당해 참전 중인 미국의 젊은 병사들이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며 전투를 준비하지만 그들의 표정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그들과 교대하는 다른 부대원들의 얼굴에서 보여지는 무표정함과 패색 짙은 병사의 모습은 초강대국 미국의 뜻대로 전쟁이 치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 병사들과 함께 수색 작전에 참전하여 보고서를 쓰는 댄 엘스버그 기자. 그와 함께 수색을 나갔던 병사들은 매복해 있던 베트남 해방전사들에 의해 습격을 당하게 된다. 전투가 끝난 후, 헬기에 후송되는 부상병들과 비닐백 속에 들어 있는 전사자들이 한 공간에 보이고, 그 공간 속에서 댄은 타자기를 두드리며 보고서를 쓰고 있다. 이때 댄이 쓰는 보고서는 미국이 절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국무장관 맥나마라의 보고서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하다. 

케이와 이사회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신문사 회장이 된 케이(메릴 스트립 분). 그녀는 회사 주식의 일부를 투자기관에 매각해서 안정된 운영자금을 확보하려 한다. 당시 미국의 언론사가 남성의 위계질서 강한 문화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서 스필버그 감독은 한 씬으로 그것을 설명한다. 케이가 문을 열고 이사회가 열리는 회의장에 들어가자 수트를 입은 수십 명의 남성 임원들이 그녀를 맞는다. 이 씬은 남자들의 세계에 들어간 케이의 심리 상태와 불안정한 회장의 위치를 관객들이 잘 느끼게 해주는 아주 효과적인 씬이다.

이사회 회의 장면에서 카메라는 몇몇 회사 임원의 얼굴만 클로즈 업 할 뿐 나머지 이사들의 얼굴은 스크린에 나오지도 않고 상반신 양복 자켓만 비춰준다. 이때, 스크린에 등장하는 케이는 반쪽 얼굴만이 겨우 비춰질 뿐이다. 이 역시 한 신문사의 회장으로서의 위치를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케이를 잘 설명해 준다. 이사들의 거침없는 공격적인 발언에 케이는 그들을 설득하려고 준비해온 ‘기사의 수준이 수익을 결정한다.’는 메모를 계속 바라본다. 하지만 망설이며 발표를 주저하는 순간, 옆에 앉아 있던 케이의 측근 프리츠가 케이가 들고 있는 메모를 보고 이사진에게 케이 대신 설득한다. 이때, 처음으로 카메라는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는 케이의 얼굴 정면을 클로즈 업 한다. 

다시 댄 엘스버그

베트남 전쟁에 직접 참전하여 보고서를 썼던 댄은 사실을 알리고자 1급 기밀 보고서를 빼돌려서 〈뉴욕타임즈〉에 제보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루만,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그리고 닉슨의 미국 행정부가 베트남 정세를 오판하고 왜곡하여 전쟁을 일으켰고 또한 전쟁의 승산이 없는 걸 알면서도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뉴욕타임즈〉는 이 보고서를 인용해 기사를 터뜨리지만 행정부의 법적 조치로 인해 후속 기사를 더이상 싣지 못하고 있다. 이 때 〈워싱턴 포스트〉 기자인 백 디키언은 수소문 끝에 옛 동료 댄을 찾아 4천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확보하고 곧바로 편집국장인 밴 브레들리의 집으로 향한다.

ⓒCGV 아트하우스

케이의 고민과 선택

밴 브래들리(톰 행크스 분) 편집장 집에서 보고서를 정리하며 기사를 쓰는 기자들. 신문에 실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밴이 직접 진두지휘하여 다음날 신문의 헤드라인 기사를 준비한다.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에서 밴은 케이를 찾아가 마지막 결단을 요구한다. 케이는 고민을 하게 된다. 신문사 사주로서 당연히 언론의 자유를 위해 옳은 선택을 내리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하지만 결정은 쉽지 않다. 이미 〈뉴욕타임스〉도 법적 조치로 인해 더 이상의 기사를 못 내는 상황이고, 자칫 기사를 냈다가는 법원모독죄로 감옥에 갈 수 있는 상황. 고민하던 중에 딸과 대화하면서 “여자가 설교를 하면 뒷다리로 개가 걷는 것과 같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얘기하는 케이.

케이가 집에서 편집국장 밴과 전화 통화를 하는 씬이 있다. 통화 하는 동안 당시 케이 집에 와 있던 회사 이사들은 둘의 통화 내용을 당당하게 엿듣는다. 통화내용을 알게된 그들은 오히려 케이에게 기사를 내지 말라고 노골적인 압력을 가한다. 케이는 법정 구속의 압력과 주식 매각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케이는 〈워싱턴 포스트〉의 가치인 ‘국가의 안녕을 지킨다’, ‘뛰어난 기사를 찾아 보도한다’ 그리고 ‘자유언론의 원칙을 준수한다’라는 신문사의 강령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뜻이 확고해졌음을 천명한다. 이 확고한 케이의 믿음 앞에 이사들은 거세게 반대하지만 케이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다. 그리고, 케이는 단호히 이야기한다. “여기는 더 이상 내 아버지의 혹은 내 남편의 회사가 아니에요.” 케이는 이렇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위대한 선택을 한다.

활자 윤전기

케이가 결정을 내리고 난 후,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중요한 캐릭터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은 사라진 활자 윤전기를 영화가 다시 부활시켰다.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알파벳 한자 한자를 식자하고 신문의 조판을 짜놓은 상태에서 모든 준비를 마친 인쇄소 직원들. 마감 시간에 인쇄를 시작해야 새벽에 신문 배달이 시작되지만 신문 인쇄의 최종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초초하게 기다리던 모두에게 드디어 케이의 결정이 전해진다. 웅웅거리는 윤전기 소리와 함께 모든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인쇄의 프로세스가 몽타쥬로 보여진다. 이 소리와 진동은 신문사 건물 전체를 휘감으며 보고서를 입수했던 백 키디언 기자의 타자기를 흔든다.

마침내 기사는 수만 부의 신문으로 만들어지고 새벽 배달트럭에 실린다. 실로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스필버그 감독은 영상으로 깨우치게 해준다.

 

 


김동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영화 프로듀서 whatamovie@naver.com

 

* 『201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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