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늘의 영화 - 서치] 상실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
[2019 오늘의 영화 - 서치] 상실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19.12.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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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픽처스 리얼리징

좋은 영화는 없다. 절대적인 무엇이 있다는 것 자체가 촌스럽고 구식인 세상이지 않은가. 니체가 신의 죽음을,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게오르그 루카치가 밤하늘 별의 실종을 고백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모든 것의 상실을 목격한 우리 자신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바로 좋은 영화다. 타인의 의견은 내가 아닌 누군가의 취향일 뿐, 내 생각에 덤으로 덧붙여진 댓글과 같다. 세상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영화로 구분된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영화’는 탄생한다. 

작품성과 오락성, 흥행까지 모두 이루어낸 영화 〈서치〉는 누가 봐도 좋은 영화임이 틀림없다.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의 고군분투를 다룬 이 영화는 오직 디지털 기기의 스크린을 통해서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독특한 형식실험과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반전 서사로 주목받았다. 또한, 백인 배우들의 전유물이었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아버지 역할에 한국계 미국 배우 존 조가 캐스팅되고, 서양인들의 편견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능동적인 인물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무엇보다 28살 젊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관객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찼는데, 앞으로 그가 보여줄 새로운 작품에 대한 높은 기대 덕분이었다. 

하마터면 깜박 속을 뻔했다. 〈서치〉를 보기 전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정말 그냥 ‘좋은’ 영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서치〉는 남들이 말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그는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디지털 기기로 전달되는 아날로그적 온기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그는 한결같이 차분했는데 온탕과 냉탕에 한발씩 걸치고 있는 사람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니까 〈서치〉는 그렇고 그런 재미없는 모범생이 아니었다.

좋은 영화란 자고로 정해진 답이 없는 법.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의문형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좁은 시야로 〈서치〉를 구속하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의 가난한 상상력을 뛰어넘어 훨씬 매력적인 작품으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영화’를 만드는 건 영화감독이 아니라 관객이니까. 

ⓒ소니 픽처스 리얼리징

왜 아버지인가

새로운 형식의 스릴러로서 〈서치〉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긴장감을 조성해낸다. 첫째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 속에서 아버지가 과연 딸을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둘째는 과연 감독이 화면 구성에 있어 제한적인 카메라 시점의 한계를 극복하고 끝까지 형식실험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는 잃어버린 딸과 반갑게 재회하고, 영화는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디지털 매체의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극적 긴장감을 견지하는 데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결합이 전제되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영화는 배우의 얼굴이 아닌 컴퓨터 화면만을 비추면서도 감정 표현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마우스 커서가 깜빡이고 메시지를 썼다가 고치는 장면은 우리가 보았던 그 어떤 영화의 명장면보다 오랜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왜 하필 SNS일까. 왜 노트북, 휴대폰, 그리고 집안에 설치한 CCTV일까. 그러니까 언제부터 평범한 아버지가 뛰어난 수사관이 된 것일까. 범죄를 해결하는 것은 원래 경찰이나 검사의 역할이 아니었던가. 영화를 보는 내내 평범한 사람이 왜 스릴러의 주인공을 맡게 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추적의 긴장감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 

국가와 정부가 나와 내 가족을 지키지 못한다는 공포와 불안. 영화 〈서치〉속 주인공의 놀라운 IT 활용능력과 추리능력 이면에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숨어 있다. 경찰은 물론이고 자신의 동생까지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영화 초반에 아버지와 딸의 일상적인 관계를 이어주던 디지털 기기가 점점 추리와 스릴러의 도구로 사용되고, 사소한 단서에도 주인공이 과도한 집착과 과잉된 폭력을 보이는 것은 모두 그 때문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던 그는 그렇게 가정 밖으로 위태롭게 내몰린다.

ⓒ소니 픽처스 리얼리징

왜 어머니인가

스릴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서치〉는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영화로 알려져 있다. 엄마의 죽음 이후 조금씩 멀어져 버린 아버지와 딸, 그들의 관계가 실종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계기로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고 가족애를 회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가족애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면 왜 범죄를 저지른 범인과 범행을 은폐하려던 그 경찰은 모자지간으로 설정된 것일까.

부성애나 가족애가 영화의 주제라면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범인 캐릭터를 훨씬 더 강력하게 구축했어야 했다. 가령, 거대한 배후세력을 가진 조직원이나 피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로. 동일한 소재를 다룬 영화 〈테이큰〉에서 전직 특수요원 출신인 아버지의 화려한 액션씬이 자주 등장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잃어버린 딸을 찾는 아버지의 고군분투가 강조될수록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와 감동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치〉는 엄마의 보호 아래 있는 나약한 아들을 범죄자로 내세운다. 심지어 그 범행은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소심한 남자의 실수에 의한 것이다. 차가운 교도소에 혼자 있기에는 너무나 불안한 아들을 위해 엄마는 경찰이란 신분을 활용해 범죄를 은폐한다. 직업적 소명이나 제 안위 따위는 다 팽개치고 오직 아들을 위한 희생이었다. 잘못된 것일지라도 그건 분명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이해도 용서도 받지 못한다. 우수 경찰로서 명예로운 삶을 영위하던 그녀는 그렇게 일상 밖으로 거칠게 추방당한다.

왜 찾는가

영화의 모든 사건은 가족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잃어버린 딸을 찾으려는 아빠와 아들을 잃지 않으려는 엄마. 그들의 부성애와 모성애가 영화를 이끌고 나간다. 하지만 부성애와 달리 모성애가 실패로 끝남으로써 가족애는 미완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영화에서 ‘search’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search’를 계속할수록 숨은 진실이 계속 밝혀지는데, 첫째는 어머니를 잃은 딸아이의 슬픔이고, 둘째는 아들을 잃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두려움이다. ‘상실’이라는 공통된 사건을 대하는 서로 다른 자세이지만 그 사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딸은 아버지와 충분히 마음을 나누지 못했고 아들의 실수에 대해 어머니는 아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들은 오로지 상실을 은폐하고 망각하는 일에만 내몰렸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다.

잃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 딸의 실종, 아들의 살인, 경찰의 범죄은폐, 친구의 거짓 우정 등 우리가 당연히 여겨왔던 모든 것들을 상실의 대상에 올려놓음으로써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찾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저 멀리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로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세월호, 청년실업, 난민, 묻지마살인 등 우리는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믿음과 희망과 꿈을 상실했다. 그동안 우리를 지탱해왔던 가치이자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질서였던 것들이다.

카오스의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은폐나 망각이 아니다. 상실에 대한 애도, 즉 있는 그대로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영화는 부성애 혹은 모성애, 그 무엇도 절대적인 선에 올려놓고 당위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위선이나 위악으로 관객을 기만하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침착하게 질문하고 상실의 좌표 위에 오롯이 서있는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김민정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를 졸업, 중앙대학교 문학박사. 현재 중앙대에서 스토리텔링콘텐츠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저서로 드라마 인문교양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소설집 『홍보용 소설』, 이 사람 시리즈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등이 있다. reise81@hanmail.net
 

 

* 『201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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