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늘의 영화 - 폴란드로 간 아이들] 다큐멘터리에 대한 편견을 깨트린 웰메이드 영화
[2019 오늘의 영화 - 폴란드로 간 아이들] 다큐멘터리에 대한 편견을 깨트린 웰메이드 영화
  • 손정순(시인, 쿨투라 편집인)
  • 승인 2019.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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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판다

작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된 추상미 감독의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기대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태풍 콩레이가 부산을 관통했지만 예정된 GV는 객석을 가득 메웠으며,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개봉관에서 예술극장으로 스크린을 옮긴 후에도 이 열기는 장기 흥행으로 이어졌다.

“폴란드 선생님들이 개인의 상처이자, 역사의 상처를 다른 민족의 아이들을 품는 데 선하게 사용한 것처럼, 우리가 가진 상처도 어떤 프레임,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해 선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고 싶었다”는 추상미 감독은 여성 감독 최초로 인류의 평화공존과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김대중노벨평화영화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여성감독에 대한 편견도, 다큐멘터리에 대한 편견도 깨트리고 한 편의 웰메이드well made 영화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그 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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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이 꿈이었던 감독의 시네 다큐

그동안 우리에게 ‘추상미’는 배우였다. 연극에서 시작해서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시쳇말로 연기를 아주 똑 부러지게 잘하는 베테랑 배우였다. 뒤늦게 대학원 영화연출과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연출공부를 한 그녀는 “처음 배우를 시작할 때부터 사실 연출이 꿈이었다.”(쿨투라54호)고 밝혔다. 추 감독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여주인공 블랑쉬나 안톤 체홉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미련이 있었지만, 그녀가 왕성하게 연기했을 당시만 해도 남성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여성이 많았기 때문에 나중에 자신이 직접 연출할 영화에서는 살아있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아이를 출산하면서 휴학했고 지독한 산후 우울증을 겪던 중 북한의 〈꽃제비(어린이 걸인)〉 관련 영상을 보게 되었으며, 그 후에 지인이 하는 출판사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이번 작품의 소재가 된 한국전쟁 고아들의 비밀 실화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1951년 폴란드로 보내진 1,500여 명의 한국전쟁 고아와 폴란드 선생님들의 비밀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추상미가 직접 기획, 각본, 연출, 출연, 편집을 도맡았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로 시작했던 게 아니었으며, 극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끼어든 케이스로 ‘시네다큐’ 혹은 ‘드라마적 다큐’로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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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연출 여정

추상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북한 꽃제비 출신 탈북 여대생 이송과 추상미의 폴란드 여정으로 전개된다. 두 편의 단편 작업 후 장편 소재를 찾던 감독은 우연한 계기로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동양 아이들을 분신처럼 돌봤던 폴란드 선생님들이 아직도 그들을 잊지 않고 그리워하는 영상을 보게 된다. 폴란드 선생님들이 이방인을 향해 보여준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 그 근원에 대한 물음이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단초이다. 극영화 자료 조사차 폴란드를 방문했던 감독은 “우리 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 실화였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로서의 기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 “분단현실의 현재성을 조명하기 위해 탈북 소녀 송이와 여정을 함께했다고 말한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은 폴란드 선생님들과 한국전쟁의 피해자인 고아들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며 먹먹한 감정을 자아낸다. 세계열강에 둘러싸여 분단을 경험한 두 나라의 비슷한 역사는 특별한 교감을 느끼게 했다. 극중 폴란드 선생님들은 거의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에도 당시 아이들이 사용했던 몇몇 한국어를 기억하고, 지금도 사랑한다고 전해달라고 울먹이자 객석 여기저기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상처가 깊을수록 동일한 상처를 겪은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 또한 깊어지는 법이다. 그래서일까. 폴란드 선생님들은 기차역에 처음 보는 동양 아이들이 도착했을 때 타국의 아이들이 아니라 내 유년의 일부처럼 느끼며, 자신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게 했다. 폴란드 선생님들 역시 전쟁의 상흔이 깊었기에, 북한 전쟁고아들을 혈육처럼 보듬었고, 이를 통해 그들의 상처 또한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련과 상처들이 선하게 쓰일 수 있다

인터뷰에서도 또한 몇 차례 참석한 영화 GV에서도 추상미 감독은 폴란드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쏟았던 아낌없는 사랑에 거듭 경의를 표했다.

“상처들을 치료해줄 수 있는 것은 폴란드가 깊어요. 저는 자신의 상처를 다른 민족의 아이들을 품는데 선하게 썼던 폴란드 선생님들의 실화를 통해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가진 우리들의 상처는 어떻게 성찰되어 왔는지를 되돌아봤습니다. 시련과 상처들이 선하게 쓰일 수 있다는 믿음, 이 메시지를 통해 관객분들도 위안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시고 많은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영화와 예술을 얘기할 수 있고. 문학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폴란드 선생님들이 보여준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위대한 사랑’을 전했다. 전쟁과 분단을 넘어 화해와 통일을 향해 가는 현재의 우리에겐 어쩌면 숙제 같은 영화다. 폴란드 선생님들처럼 우리도 그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고아들이 다시 북한으로 송환된 이후 폴란드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했던 아이들은 대부분 엘리트 그룹을 형성했고 40여 년 후에 폴란드 대사나 영사가 되어, 혹은 교환교수가 되어서 폴란드를 찾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폴란드로 보내진 아이들이 모두 북한의 전쟁고아인 줄 알았는데 남한의 아이들도 같이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추 감독은 부산영화제 GV에서 본인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폴란드 전쟁 고아 출신이었다는 탈북민이 오기도 했고, 아버지가 폴란드 전쟁고아 출신이라는 분도 연락이 닿았다고 전했다. 또 그 아이 중 한 명이 탈북하여 남한에 거주하다가 작년 간암으로 타계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뛰어넘는 웰메이드 영화

폴란드로 간 전쟁고아들의 역사적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현실의 허구적인 해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증언을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 이 영화가 선전 영화도 계몽 영화도 아닌, 현실을 윤색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 준 다큐멘터리였기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역사 속의 객관적 기록인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감독이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부터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오가며 “상처의 연대는 악순환이 아닌 선순환을 그려낼 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의 프레임을 담아냈다.

다큐멘터리가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지만 상업적 이윤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코 제작사와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장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관람객 평점 9.63점은 물론 기자와 평론가로부터도 높은 평점을 받으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는 이 영화야말로 다큐멘터리를 뛰어넘는 웰메이드 영화가 아닐지.

 


손정순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졸업.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과 저서로 『흰 그늘의 미학, 김지하 서정시』, 『목월 詩의 현대성』 『문화예술현장에서 통섭적 글쓰기』 등이 있음. 월간 《쿨투라》 편집인. more-son@hanmail.net

 

* 『201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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