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늘의 영화 - 플로리다 프로젝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큐멘터리로 찍는다면
[2019 오늘의 영화 - 플로리다 프로젝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다큐멘터리로 찍는다면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1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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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AUD)

“웃음은 세월에도 변치 않고, 상상력은 나이를 먹지 않으며, 꿈은 영원하다”고 월트 디즈니는 말했다. 디즈니랜드의 슬로건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고, 이 테마파크의 상징인 신데렐라의 성 ‘매직 캐슬’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매직 킹덤’의 별명은 ‘세상에서 가장 마법같은 곳’이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감독 션 베이커)의 여섯살 소녀 ‘무니’는 플로리다 디즈니월드 근처 어딘가, 파스텔톤 보라색 모텔 ‘매직캐슬’에서 엄마 ‘헤일리’와 둘이서 살아간다. 이 모텔의 그럴듯한 이름과 외양은 사실 동네 양아치의 허세 비슷한 것이다. 모텔엔 투숙객보다 ‘주민’이 더 많고, 대부분은 집도 제대로 된 일자리도 없이 일수 찍듯 방값을 버텨내며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디즈니랜드가 상상력과 돈의 짝짓기로 빚어낸 상업적 판타지의 진경眞境이라면, 모텔 매직캐슬은 그 소비의 구정물이 흘러드는 하수구에 위태롭게 떠 있는 종이배 같다. 월트 디즈니가 남긴 말이 무색하게도, 이곳에서 웃음은 쉽게 시간에 깎여 나가며, 상상력은 쉬이 늙고, 꿈은 무참하고 간단히 짓밟힌다.

울기 직전 어른의 표정을 아는 소녀

무니와 모텔의 어린 망나니들은 난간에서 주차된 차를 향해 침뱉기 내기를 벌인다.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고, 무료 배급 음식을 빼돌리며, 버려진 집에 돌멩이를 던져 유리창을 깨뜨리다 불까지 지른다. 그래도 엄마 헤일리는 되바라진 말썽꾼 딸 무니를 끔찍히 사랑한다. 이 대책없는 모녀는 그저 사람답게 살기를 꿈꾸지만 사회안전망의 그물코는 이들을 거두기엔 너무 헐겁다. 낙오된 홀엄마에게 홀로 설 기회는 잘 오지 않는다. 이렇게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필연적으로 이야기는 너무 일찍 어른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 소녀의 성장담이자,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 하층민의 삶을 담대하게 잘라 들여다보는 단면도가 된다. 그 안엔 대개의 날들이 시궁창을 닮은 보통사람의 인생과, 잠깐씩 구원처럼 빛나는 사소한 선의善意, 그보다 더 사소하지만 생의 의지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타인의 악의惡意가 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솜씨좋게 담아내면서도, 영화는 아련하고 아름다운 동화같아서 더 참혹하게 보는 이의 가슴을 저며 놓는다.

ⓒ오드(AUD)

모텔 침대 리얼리즘

1960년대 영국의 브리티시 뉴웨이브 영화들은 구질구질한 부엌에 새겨진 노동계급의 삶을 주목했다. 땟국물 후줄근한 싱크대에 번잡하게 쌓아올린 설거지 그릇은 노동계급의 삶의 조건을 짐작케 하는 시대의 은유였고, ‘키친 싱크 리얼리즘’으로 불렸다. 켄 로치는 브리티시 뉴웨이브의 끝자락에서 걸작 〈케스〉를 만들어냈다. 절실함과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스티븐 달드리의 〈빌리 엘리어트〉나 마이크 리의 〈세상의 모든 계절〉 같은 영화들에 여전히 그 맥락이 이어진다. 이 영화들은 괴로우면서도 즐겁고, 재미있지만 지켜보기 힘들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그런 영국적 전통의 미국적인 변형 같은 냄새를 풍긴다. 영국 지방 공업도시 공장 노동자의 퀴퀴한 부엌 냄새는 이 영화에서 모녀가 뒹굴며 시간을 보내는 모텔 침대의 눅눅한 냄새로 바뀌었다. 다만 이 모녀의 ‘모텔침대 리얼리즘’은 영국의 ‘앵그리 영 맨’들처럼 세상을 향해 날선 분노를 드러내는 대신 아이의 눈높이에서 응시하는 쪽을 택한다. 아픈 가난과 소외의 풍경을 담으면서도, 값싼 동정을 유발하는 ‘빈곤 포르노’의 함정을 피해 갈 수 있었던 것은 이 눈높이의 덕이다. 〈탠저린〉 같은 수작을 꾸준히 만들어온 션 베이커 감독은 영리하다. 가치판단을 개입시키는 대신 줄곧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식으로 평균대 위를 걷듯 연출의 균형 감각을 지켜낸다. 감독의 시선은 줄곧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게 될 가난과 사회적 위치에 대한 자각을 갖기엔 아직 어린 소녀 무니의 시야를 좇는다. 

사회의 가장자리, 뒤엉키는 현실과 판타지

잔인한 현실과 달리 이 키치 취향 보라색 모텔과 무니 모녀는 때때로 아름답다. 해질녘 어둑어둑할 때 난간을 짚고 선 모텔 관리인 ‘바비’(윌리엄 데포)가 담뱃불을 붙이면, 거뭇하던 복도를 밝히며 노란 복도등이 차례차례 불을 밝힌다. 바비의 선의善意는 기댈 데 없는 모녀의 삶을 잠깐씩 밝히는 빛이고, 윌리엄 데포의 품격 있는 연기는 영화를 지탱하는 굵은 기둥이다. 골프장 앞에서 향수를 팔던 모녀가 모텔로 돌아오는 길, 아이스크림 사달라 보채는 무니를 엄마가 업으면 붉은 노을과 모녀의 검은 그림자가 한 폭의 그림같다. 핑크색 모텔 ‘퓨처월드’에 사는 무니의 단짝 친구 소녀 젠시를 위해 강변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땐, 디즈니월드의 야간 불꽃놀이가 축포처럼 밤하늘을 밝힌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 중 하나다. 무니는 디즈니월드의 그림자 속에 사는 허깨비 같은 이 공간을 허클베리핀처럼 누비고 다닌다. 욕쟁이에 말 안듣고 예의없는 아이지만 무니를 탓하기는 어렵다. 이 영화에선 딸 무니 눈높이의 세계와 엄마 헤일리가 사는 잔인한 현실이 자주 충돌하며 정서적 아이러니의 바닥을 다진다. 

영화의 분노와 슬픔은 등장인물을 통해 스크린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 각자의 가슴에서 스며나오며 증폭된다. 부하직원의 실수로 첫날밤을 모텔 매직캐슬에서 보내게 된 신혼부부를 지켜보던 무니는 단짝 소년 스쿠티에게 말한다. “근데 저 여자 불쌍해. 곧 울 것 같아. 난 어른이 울 것 같으면 금방 알거든.” 어른의 눈물을 줄곧 지켜봐온 이 아이는 ‘왜 피자에 페페로니가 없냐’고 불평하다가도, 방값을 내야 한다는 엄마 말에 금세 수긍해 버린다. 엄마가 끝내 인터넷으로 성매매까지 하게 되며 낯선 남자가 모텔방으로 찾아오고, ‘아저씨 또 오줌 마렵대?’ 하고 무니가 물어볼 때, 관객의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엉성하게 뒤엉킨 커다란 나무 위에서 무니는 말한다. “나는 이 나무를 가장 좋아해. 땅바닥에 쓰러졌는데도 계속해서 자라거든.” 무니는 쓰러져도 계속 자라는 나무 같다. 그래서 관객의 가슴에 스며나오는 슬픔의 농도도 더 높아진다.

ⓒ오드(AUD)

부자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polis)를 벗어나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자는 천사나 짐승 밖에 없다”고 했다. 천사는 불멸의 존재이고, 후자는 자신이 사멸하는 존재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보통사람들이 사는 도시에 섞여 살 수 없어 꿈의 도시 디즈니월드 외곽에 살아가는 헤일리와 무니 모녀의 모습에선 천사와 짐승이 함께 보인다.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도 모녀를 품어 안지는 못한다. 미국 언론과 평단이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준 것은, 이 영화가 미국이 처한 현실을 극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디즈니월드가 있는 플로리다의 빈부격차는 미국에서도 악명 높다. 미국 인구조사국 2017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대도시 25곳 가운데 가구소득 중간값이 가장 낮은 도시가 탬파베이, 꼴찌에서 두번째가 탬파, 세번째가 올란도였다. 모두 플로리다주에 있다. 2017년 2월 조사에 따르면, 플로리다는 여전히 전체 가구의 45%가 ‘근로빈곤층’으로 분류됐다. 소득으로 기본적 생필품이나 건강보험, 교통비나 집세 등을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디즈니랜드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2018년 발표된 한 보고서는 약 3만 명의 디즈니랜드 근로자 가운데 85%가 시간당 15달러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음식이나 숙소 건강보험 등 기본적인 생활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수입이다. 

헤일리와 무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경제적 불평등은 전지구적 현상이다. 이 매우 미국적인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언어와 지역을 넘어 공감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저변에 낮은 음조로 깔려 있는 불평등과 빈곤을 주변에서 더 자주 더 깊이 보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의 잔인함을 뛰어넘는 판타지

현실은 예정된 비극적 결말을 향해 내달린다. 젠시의 집 앞, 엄마와 자신을 떼어놓으려는 주정부 아동가족부 공무원들에게서 도망쳐온 무니는 한참을 눈물만 흘리며 서 있었다. “우린 제일 좋은 단짝인데…. 다시는 못 보게 될지도 몰라….” 그때, 내내 무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했던 젠시가 처음 친구의 손을 잡아 끈다. 둘은 달리고 또 달린다. 카메라는 달려가는 아이들의 허리 높이에서 놀라 쳐다보는 어른들의 시선을 받으며 디즈니월드 속으로 뛰어든다. 멀리 매직캐슬이 보이고, 사람들 사이로 두 소녀가 묻히기 직전까지.

이 영화의 엔딩은 꽃이 피어나는 과정이나 벌새의 비행을 초고속으로 촬영한 화면을 보는 듯한 카메라워크로 마지막 메시지를 뿜어낸다. 어른에게 어른의 사정이 있다면, 아이들에게는 아이들만의 논리가 있는 것이다. 똑똑한 어른들이 합리와 이성으로 펼쳐놓은 지옥 같은 세상을 두 아이는 꼭 맞잡은 손의 따뜻함으로, 어른은 흉내낼 수 없는 공감의 힘으로 헤쳐나갈 것이다. 이 전율의 엔딩으로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의미와 형식 두 측면 모두에서 독보적 영화적 성취에 도달한다. 이 영화는, 어쩌면 다큐멘터리로 찍은이 시대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일 것이다.

 

 


이태훈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종교, 미술, 영화 등을 담당했고, 현재는 공연 담당. libra@chosun.com

 

* 『201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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