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늘의 영화 - 팬텀 스레드] 폴 토마스 앤더슨의 이토록 로맨틱한 사도마조히즘, 〈팬텀 스레드〉
[2019 오늘의 영화 - 팬텀 스레드] 폴 토마스 앤더슨의 이토록 로맨틱한 사도마조히즘, 〈팬텀 스레드〉
  • 윤성은(영화평론가 ·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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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I 코리아

〈팬텀 스레드〉(Phantom Thread, 2017)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시스템 안에 군림해 살아가는 한 남성과 그 벽을 허물고 그의 세계를 바꾸어 놓고자 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두 남녀의 만남과 사랑, 갈등과 화해가 서사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연애담이지만, 장르 영화의 관습을 벗어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만의 화법으로 만들어져 눈길을 끈다. 장편 데뷔작인 〈리노의 도박사〉(1996)부터 〈매그놀리아〉(1999), 〈펀치 드렁크 러브〉(2002),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마스터〉(2012)에 이르기까지 그간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폴 토마스 앤더슨 작품들의 내연은 대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팬텀 스레드〉에도 그의 프로이디안적 면모는 강하게 드러나 있다. 평단의 반응과 달리 상기한 작품들이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던 것은 그의 영화가 주로 비평 능력을 가진 이들, 혹은 적어도 영화의 기저까지 탐색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훨씬 흥미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에 흩어져 있는 메타포를 짜맞추는데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관객들에게는 〈팬텀 스레드〉 역시 지루하거나 잔혹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기껏해야 독특한 사랑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뒤집어서 말하면, 〈팬텀 스레드〉같은 작품만큼 비평을 촉구하고 그 가치를 높여주는 영화도 드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팬텀 스레드〉는 195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특수한 관계를 통해 사랑의 보편적인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Masochism)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다소 충격적인 사랑의 한 방식을 폴 토마스 앤더슨은 특유의 차분하고 정교한 연출로 우아하고 세련되게 보여준다. ‘레이놀즈 우드콕’(다니엘 데이 루이스 분)은 왕실과 사교계 인사들의 드레스를 만드는 유명 디자이너다. 드레스가 삶의 전부인 그는 자신이 축조한 성 안에서 그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는 누이, ‘시릴’(레슬리 맨빌 분)과 함께 살고 있다. 많은 직원들을 거느린 무소불위의 권력자로서 그의 성격은 영화 초반부, 아침 식사 때 자신을 방해한 연인(조한나 분)을 내보내기로 결정하는데서 잘 드러난다. 그의 숨 막히는 생활 방식과 까다로운 취향에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이들은 가차 없이 이 성에서 살 자격을 박탈당하고 만다. 조한나를 내쫓기로 한 직후 그는 시골에서 새로운 뮤즈, ‘알마’(빅키 크리엡스 분)를 만난다. 레이놀즈가 첫 데이트에서 알마에게 들려주는 어머니를 향한 비상한 애착은 그의 모든 행동이 죽은 어머니와의 관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유령의 실’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일차적으로 레이놀즈의 삶을 무의식중에 조종하고 있는 그와 어머니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을 의미하는 것이다.

ⓒUPI 코리아

레이놀즈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첫째, 처음 일을 가르쳐준 대단한 여성(quiet remarkable woman)이며 둘째,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정신적 연인이다. 이러한 어머니의 두 가지 의미는 그가 스스로를 결혼과 인연이 없다고 믿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중년이 되어서까지 양복에 어머니 사진을 넣어 다니는 레이놀즈의 여성 판타지는 어머니가 두 번째 결혼을 하던 열여섯 살 소년에 머물러 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레이놀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에게 어머니를 빼앗긴 채 신경증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사진 속의 어머니, 그리고 독버섯 차를 마시고 앓아누운 레이놀즈가 마주하는 어머니의 환영이 그가 손수 바느질 해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시간이 그 시절에 멈추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레이놀즈에게 드레스를 만드는 행위는 리비도의 분출과도 같고, 그것을 여성들에게 입히는 것은 어머니를 소환하는 주술적 의식(ritual)과도 같다. 시골 별장에서 알마와 사랑의 눈길을 주고 받던 레이놀즈가 섹스 대신 별안간 그녀의 신체 치수를 재는 장면은 그의 사랑 방식을 잘 보여준다. 

한편, 시골 식당의 직원이었던 알마는 처음에 레이놀즈의 집에 함께 살게된 것을 기뻐하면서 그의 세계에 적응해 보려 한다. 사실,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의 갈등은 레이놀즈가 알마의 치수를 잴 때부터 명확히 예견된다. 레이놀즈에게는 ‘평소의 자세’가 등을 곧게 편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알마에게는 편안한 자세를 의미하는 만큼 둘의 간극은 크다. 그러나 알마는 레이놀즈가 이전까지 만났던 여성들과 달리 영민하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그의 마음을 얻는다. 우둔하고 못생긴 ‘바바라 로즈’의 결혼식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레이놀즈의 드레스가 너무 아깝다고 말한다. 아름답고 교양 있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드레스를 입혀줌으로써 완벽한 어머니의 현신을 바라는 레이놀즈에게 이만큼 감동적인 행동이 있을까. 두 사람이 바바라로부터 드레스를 빼앗아 오는 길에 나눈 키스는 〈팬텀 스레드〉에 단 두 번밖에 없는 키스신이자 처음 등장하는 키스신이다.

ⓒUPI 코리아

결정적으로 알마가 레이놀즈를 굴복하게 만든 것은 두 차례에 걸쳐 그의 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행위다. 알마는 레이놀즈가 육체적으로 힘들 때 아이처럼 자신에게 의지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멀어진 그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기꺼이 사디스트가 됨으로써 목적을 이룬다. 아픈 레이놀즈가 어머니의 환영을 보며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알마가 간호하러 들어오는 장면에서 그녀는 어머니의 지위를 차지하고 다음날 레이놀즈의 프러포즈를 받는다. 알마의 가학적 사랑이 결혼에 대한 레이놀즈의 저주를 푼 것이다. 그러나 알마의 사디즘과 레이놀즈의 마조히즘이 완벽히 합을 맞추는 것은 두번째로 독버섯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알마를 사랑하게 된 레이놀즈는 자신의 시스템이 파괴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조한나처럼 그녀를 내보내고자 한다. 그러자 알마는 은밀하고 조심스러웠던 첫 번째 시도와 달리 요란하게 독버섯 오믈렛을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는다. 그 모습을 의미심장한 눈길로 바라보던 레이놀즈는 그 요리의 정체를 알면서도 그것을 삼킴으로써 알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한다. 7분 동안 지속되는 이 식사 신은 전체 서사에서의 의미상 비중도 크지만 터질 듯한 긴장감을 이끌어내, 연출적으로도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오프닝에 등장한 “레이놀즈는 내 꿈(dream)을 이뤄줬어요, 대신(in return) 난 그가 가장 열망하는 걸(desires most) 줬죠. 내 전부요.”라는 알마의 대사는 이 장면에서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사디스트의 꿈과 마조히스트의 열망이 등가를 이루자 그들은 각자가 할일을 수행하고, 상처와 갈등을 봉합한다는 의미로 키스를 나눈다. 이로써 이들의 관계에도 유령의 실이 생긴다.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 독버섯을 먹이고 먹는 알마와 레이놀즈의 관계는 특수하다. 잔혹하고, 극단적이고, 무엇보다 비이성적이다. 그러나 <팬텀 스레드>의 설정 전체를 대유법으로 가정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 사람을 극단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지극히 전형적인 연애담으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초반에 시릴에게 죽은 사람, 곧 어머니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편안하다고 말했던 레이놀즈는 독버섯 오믈렛 신 바로 직전에 이 집에서 나는 죽음의 냄새가 너무 싫다고 소리친다. 알마를 통해서 그는 자신이 군림하는 세계가 아니라 지배당하는 세계가 얼마나 안전하고 평화로운지 깨닫고, 스스로 그녀에게 주도권을 내어준 것이다. 레이놀즈가 보여주는 변화는 사랑의 보편적 속성 안에 있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알마는 팜므 파탈이 아닌 구원자로 남는다. 그가 평생 어머니를 숭배하면서 얻지 못했던 구원을 연인에게서 얻는다는 결말은 사랑의 승리라는 주제를 설파한다. 그래서 레이놀즈가 독버섯을 먹고 알마와 키스하는 장면부터 영화의 톤 앤 매너는 로맨틱하게 반전된다. 극적인 음악과 알마의 감성적 대사들, 둘 사이에 끊임없이 오가는 사랑의 표현들은 알마와 레이놀즈가 비로소 평등한 관계로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팬텀 스레드〉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방식으로 완성된 한없이 낭만적인 러브스토리다. 혹자는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한다고, 허세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치밀한 각본을 디코딩(decoding)하는 과정에는 묘한 쾌감과 중독성이 있다. 어쩌면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들 자체가 사도마조히즘을 유발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영화와 관객의 관계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충분히 경험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윤성은 영화학 박사. 201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이후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공연과 리뷰》 PAF 평론상 수상. amee9@naver.c om

 

* 『201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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