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늘의 영화 - 쓰리 빌보드] 아수라장 속 캐릭터들의 향연,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간적 품격
[2019 오늘의 영화 - 쓰리 빌보드] 아수라장 속 캐릭터들의 향연,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간적 품격
  •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교수)
  • 승인 201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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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폭스 코리아

그녀는 엄마고 노동자다. 그녀는 리벳공 로시 작업복을 입고 있고 예쁘지않다. 그녀는 욕을 입에 달고 살고 누구든 공격한다. 그녀는 무표정이고 무자비하다. 그녀 이름은 밀드레드. 〈밀드레드 피어스〉(1945)의 그 밀드레드는 버릇없는 딸로 인해 비극의 낭떠러지로 추락했다면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 역시 딸의 죽음에 대한 분노, 그리고 딸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세상 모두를 적대시한다.

미국 남부지역 미주리 주에 위치한 가상의 외곽 도시 에빙이 배경이다. 조용한 고속도로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나 스티븐 쇼어의 사진 속 풍경처럼 황량하고 쓸쓸하다. 어느 날 도로 길가에 서 있는 색 바랜 낡은 대형 광고판 세 개에 밀드레드는 눈이 간다.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잊혀져버린 딸의 살인사건에 대해 세상의 이목을 다시 끌기 위해 밀드레드는 세 줄의 문구를 빌보드 광고판에 실기로 한다. “왜 그런 거지, 월러비?”, “아직도 범인을 못 잡은 거야?”, “내 딸은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이 세 문장이 써진 파격적인 붉은 광고판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서사를 끌고 가는 핵심요소이며, 표면적으로 평화로운 마을의 숨겨진 문제들을 끌어올리는 촉매로 기능한다.

ⓒ20세기 폭스 코리아

민낯들이 충돌하는 갈등의 상징 공간

지루한 루틴으로 돌아가는 미니멀한 공간 에빙은 어느새 빌보드 광고판으로 인해 강렬한 정서로 소용돌이치는 뜨거운 용광로가 되어간다. 그곳에 박혀서 그저 하던 대로 살아가던 인물들의 껍데기가 벗겨지면서 수면 위로 이들의 민낯이 떠오르자 문제적 인물인 그들 모두는 콤플렉스, 죄책감, 분노, 모멸감, 혐오감으로 똘똘 뭉쳐져서 서로 한바탕 충돌한다. 각자의 분노는 이유가 있지만 엉뚱한 대상으로 향하면서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고,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다 선과 악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호감이 가다가도 미워지고, 싫어하다가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캐릭터들의 향연으로 이루어진이 마을은 현대 미국사회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모아놓은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밀드레드는 경찰서장인 월러비를 공개적으로 망신주지만, 그녀의 본심은 흑인을 고문하거나 마약 소지 사건에 신경 쓰느라 강력 범죄를 다루는데 소홀한 경찰력 전체에 경종을 울리고 싶은 것이다. 온화한 성품으로 마을의 존경을 받는 월러비 서장이 췌장암으로 인해 곧 죽어갈 자신에게 이렇게 해야하냐고 질문하자 밀드레드는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한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랭한 얼굴의 그녀는 불행을 안고 있지만 마을사람들의 동정을 받지 못한다.

밀드레드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는 월러비와 다르게 그녀와 감정적으로 완전히 반대편이 놓인 인물이 경찰관 딕슨이다. 그는 흑인을 고문하고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호모포비아 백인우월주의자다. 오바마 시대를 거치고 트럼프 시대에 접어들면서 보수적인 분위기가 주도하는 정치 환경에 대한 반작용으로 최근 몇 년간 미국영화에는 이와 같은 백인우월주의자가 등장하는 영화가 흔히 나타나고 있다. 가령 〈셰이프 오브 워터〉, 〈히든 피겨스〉, 〈겟아웃〉, 〈더 포스트〉 같은 영화에는 남자 백인우월주의자에 대항하는 여성, 장애인, 흑인, 동성애자, 괴물이 세상을 구원하는 능동적인 캐릭터로 놓인다.

오스카와 골든글로브를 위시하여 2018년 연기상을 휩쓴 밀드레드 역의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딕슨 역의 샘 록웰의 일생일대의 연기에 상찬을 보내기에 앞서, 치밀한 스토리텔링과 캐릭터화의 정교함이야말로 이 영화를 명예의 전당에 가져다 놓을 핵심요소라고 할만하다.

ⓒ20세기 폭스 코리아

부조리한 사회를 풍자하는 정교한 캐릭터들

감독이자 각본을 쓴 마틴 맥도나는 영국 웨스트엔드를 놀라게 한 베테랑 연극연출가로 셰익스피어의 후계자란 명성을 얻을 정도의 탄탄한 실력을 영화에서도 제대로 보여준다.

밀드레드, 월러비, 딕슨 말고도 밀드레드를 돕는 캐릭터인 광고제작자 레드, 성적 긴장감 상대인 난쟁이 제임스, 함께 사는 아들 로비, 흑인인 신임 경찰서장, 월러비의 아름다운 부인, 그리고 밀드레드를 힘들게 하는 캐릭터인 폭력적인 전남편 찰리, 찰리의 열아홉 살 먹은 애인, 죽은 딸 안젤라, 딕슨의 노모, 범인으로 오인되는 백인남자, 심지어 잠깐 등장하는 백인 치과의사와 흑인 건설노동자까지, 캐릭터 하나하나가 잘 고안되어 있다. 그들 모두 분노와 혐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모두 이유가 있고, 그들은 변하기도 한다.

정교하게 구축된 캐릭터들이 서로 충돌하며 폭발한 후, 때로는 화해하고 연대하는 과정은 아이러니로 점철된 가운데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가진다. 긴장감으로 가득한 플롯이 전개되면서 주제의식이 탄탄하게 빛을 발하는가하면, 기가 막히게 웃긴 블랙 유머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재미와 여유로움을 한껏 선사한다.

잠깐 등장할지라도 인과적 이유를 가진 인물들 모두가 선과 악을 포함하는 복합적 캐릭터로 세련되게 표현되어 하나하나가 교본처럼 보인다. 밀드레드는 청색 오버롤 작업복에 머리에는 반디나를 두르고 언제든 작업을 나갈 준비 태세에 있다. 이는 2차세계 대전 전후에 여성의 노동을 독려하기 위해 활용된 리벳공 로시 이미지를 원용한 것인데, 여성주의와 애국주의의 두 의미를 담고 있으며 미국적 삶의 아이콘이 되었던 것을 비틀어버린다. 밀드레드 이미지 그 자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꼬집으며, 미국사회가 세뇌시켜온 올바름의 역사를 무력화시킨다.

백인인 그녀는 폭력적인 전 남편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을 대가없이 도운 장애인 남성에게 모멸감을 준다. “강간 당해라”라는 몹쓸 말로 저주를 퍼붓고, 방화하여 사람이 다쳐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며,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송곳으로 찌른다. 새끼 잃은 어미를 동정은커녕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흉포한 행위는 영화에서는 통쾌하지만 현실에서는 만날까 두렵다. 여성주의, 애국주의, 이상적인 미국적 삶,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서 비켜간다.

“누군가에게 해를 주고 싶으면 그 친구를 괴롭히면 된다”고 조언하는 늙은 엄마와 지내는 게 유일한 취미인 마마보이 딕슨 또한 문제적이다. 경찰을 조롱하는 놈을 그냥 놔두면 안 된다는 선배 경찰의 조언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방망이와 주먹을 휘두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사실 아바(ABBA)의 말랑말랑한 발라드를 좋아하는 자기 존재 부정의 동성애자다. 그의 동성애혐오증, 유색인종 차별과 폭력의 역사는 자신의 동성애 취향과 무식함을 가리기 위한 방편이지만, 더 큰 문제는 부모부터가 화이트 트래쉬(white trash)인 점이다.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분개하면서 분노를 약자에게 폭력적으로 투사하는 성향을 가진 이의 표본이다.

그런 두 사람을 이어주는 인물이 백인 경찰서장 월러비다. 따뜻한 품성과 리더십으로 마을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이 인물을 악동 이미지의 배우 우디 해럴슨이 맡아서 그의 기존 페르소나를 뒤집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 리가. 이는 놀라운 패러디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성결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이사, 서울시 독립영화 공공상영회 배급위원, EBS 영화프로그램·여성인권영화제 자문위원, 영화전문 사이트 「익스트림무비」 편집위원. yedam98@hanmail.net

 

* 『2019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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