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오늘의 영화 - 생일] 〈생일〉, ‘숨어 있는 슬픔’을 이야기하기
[2020 오늘의 영화 - 생일] 〈생일〉, ‘숨어 있는 슬픔’을 이야기하기
  • 박유희(영화평론가, 고려대 교수)
  • 승인 2020.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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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

1. 부재의 기억

2020년 아카데미상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외국영화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영화가 후보로 올랐다. ‘세월호 참사’의 순간을 차분하게 정리하며, 당시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던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를 질문하는 영화, 〈부재의 기억Field of Vision - in the absence〉(이승준). 보도에 의하면 이 영화를 볼 때 해외 관객들은 주로 두 부분에서 놀란다고 한다. 첫 번째는 청와대 관계자가 해경과 통화하며 승객의 안전보다 정치적으로 선전할 ‘그림(영상)’이 없는 것을 걱정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는 학생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라 해놓고 선장이 탈출하는 장면이다. 이는 국내에서도 큰 공분을 일으킨 대목들로 재난 대응 시스템만 부재했던 것이 아니라 책임자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로 인해 최고책임자는 파면되었으나, 이후 중간책임자들은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음을 ‘아이히만’처럼 주장하고, 그들에 대한 처벌 또한 참사의 진상 규명만큼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런데 오히려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희생자들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부재의 기억’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린다. 수학여행 떠나는 날 아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자식으로부터 마지막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해서, 친구의 손을 놓쳐서, 자신을 밀어 올려준 사람이 미처 탈출하지 못해서, 그들은 자책한다. 슬픔을 마음껏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자책은 더해간다. 유가족에게는 이제 그만하면 됐지 않았느냐고 하고, 생존자들에게는 죽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살았으니 울면 안 된다고 하는 억압적 시선이 당사자들 외부에도 내부에도 존재한다. 희생자의 형제, 자매들은 참척의 고통 속에 있는 부모 앞에서 슬픔을 드러내면 안 될 것 같고, 생존자들은 죽은 친구의 부모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죄스럽다. 그래서 서로를 피하고 슬픔의 동굴에 갇혀 자책의 칼로 스스로를 베며 아파한다. 그 칼이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바깥을 향하지만 그렇게 휘두른 칼은 더 큰 자책이 되어 돌아온다. 〈생일〉은 이렇게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화한 영화다. 세월호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계속 제작되었고, 서브플롯으로 피해자의 친구 이야기를 끌어들인 극영화는 있었으나 이렇게 전격적으로 다룬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2. 슬픔의 위계

〈생일〉은 참사 당시 가족 곁에 있지 못했던, 희생자의 아빠 정일(설경구)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베트남에 일하러 갔다가 곤경에 빠져 수년간 귀국하지 못했다. 그새 아들 수호(윤찬영)는 세월호에서 죽고, 아내 박순남(전도연)과 딸 예슬(김보민)이 그 일을 겪어냈다. 정일이 가족 곁에 돌아온 것은 2016년 봄, 수호가 죽은 지 이미 2년이 지났을 때다. 정일은 집을 찾아가지만 순남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순남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픔에 갇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오프닝에서부터 인서트되는 세탁기 돌아가는 모습은 해난의 기억을 환기시켜 순남이 겪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일러주는 동시에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순남의 마음을 암시한다. 순남은 수호의 방을 그대로 두고 있을 뿐 아니라 계속 수호의 새 옷을 사온다. 예솔조차 특별한 음식이 있으면 오빠의 몫을 챙길 정도로 이 집에서 수호는 아직 죽지 않은 존재다. 수호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순남은 다른 유가족들과도 담을 쌓고 지낸다. 수호의 생일잔치를 함께 열어 소통과 치유의 장으로 순남을 이끌려는 자원봉사자(박종환)의 선의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니 가족 곁에 부재하여 그간의 상황을 모르는 남편을 순남이 용납할 수 있을 리 없다. 이 영화는 초반부에서 이러한 순남의 행동부터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정일은 순남이 이상해졌다고, 사람이 변한 것 같다고 누이(이봉련)에게 말한다. 그러자 누이가 일축한다. 뭐가 이상하냐고, 이상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라고. 그러면서 덧붙인다. “수호 얘기 안 하는 오빠가 더 이상해."

이 지점부터 영화는 순남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슬픔도 보여주기 시작한다. 정일은 가족을 위해 돈 벌려고 타국에 가서 일했지만, 정작 가족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가족 곁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의 슬픔은 그렇게 갇혀 있다. 예솔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오빠를 잃고 갯벌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만 슬퍼하는 엄마에게 자기 마음을 토로할 수 없다. 엄마가 죽은 오빠 옷만 사오는 게 섭섭해 밥을 깨작거려 보지만, 오빠는 밥도 못 먹는데 너는 반찬투정이 나오느냐며 엄마가 소리친다. 이런 엄마한테 예솔이는 잘못했다고 빌 수밖에 없다. 수호의 중학교 친구 성준(성유빈)은 수호가 그립지만 수호 엄마를 만나면 피한다. 그 이유를 스스로도 잘 설명할 수 없는데, 어쩔 수가 없다. 수호 엄마에게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인사하고 나면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막막한 것이다.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은빈(권소현)은 수호가 밀어 올려주어 탈출할 수 있었다. 은빈은 수호가 하고 싶어 했던 일을 대신하는 것으로 수호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견디려고 한다. 수호를 누구보다 따랐던 옆집 우찬(탕준상)은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수호가 사용했던 단어를 들을 때마다 수호를 떠올리고 조용히 예솔을 보살핀다. 

이렇게 순남뿐 아니라 수호를 사랑했던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아픔을 겪고 있다. 심지어 순남의 비명에 가까운 오열을 수시로 참고 들어야 하는 이웃들, 그것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옆집 삼수생도 피해자이자 아픔의 당사자다. 정혜신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식으로든 모두 ‘심리적 참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서로에게 관대하지 못한 것은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일이 아들을 잃었으면서도, 순남보다 더 슬퍼할 자격이 없다고,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색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뿐인 오빠를 잃었어도,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어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슬픔을 직시할 수 없게 하는 위계가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슬픔은 누군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슬픔을 맘껏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저에서는 자신이 가장 아프다고 느끼고 있기도하다. 그래서 자기 슬픔을 드러내지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하는 머뭇거림 속에서 고통을 겪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3. 공감과 열림

이 영화에서 자기의 슬픔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인물은 순남이다. 그래서 그녀는 추모공원에 모인 유가족들이 아이들의 사진을 놓고 웃으면서 점심을 먹을 때, 소풍 왔느냐며 화를 낼 수 있다. “뭐야? 자기만 유가족이야?”라는 다른 유가족의 말은 순남이 오롯이 자기 슬픔에만 갇혀 있음을 꼬집는다. 이 영화 서사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순남이 그 슬픔의 지옥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가?’이다. 〈밀양〉(이창동, 2007)에서 던졌던 질문, “당신이라면 이래도 살겠어요?”에 버금가는 과제다. 이는 순남이 자신만의 방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아가 그들 또한 나름의 슬픔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할 때 가능하다. 이 영화에서 이 과정은 ‘사과하기, 차라리 아무 말 않기, 안고 울어주기, 서로 들어주기’의 순서로 전개된다. 

순남의 마음이 열리는 일은 정일의 사과로부터 시작된다. 당신은 여기 있을 자격도 없으며, 아빠도 아니라고 비난하는 순남에게 정일은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순남의 행동은 아주 조금씩 변화한다. 그것은 눈길조차 주지 않던 정일을 마주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다 정일이 순남에게 보상금은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을 때 순남은 격분한다. 그리고 돈 때문에 왔느냐며 정일을 몰아세운다. 갇혔던 감정이 분출되며 다른 사람을 베는 칼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순남이 정일에게 사과하러가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순남과 정일은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간다. 

또한 정일은 말하기의 분별을 깨우치면서 순남을 비롯한 가족의 아픔을 이해한다. 예솔이 갯벌 앞에서 머뭇거릴 때 정일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자식의 죽음을 타국에서 겪었기 때문에 바다 앞에 직접 서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예솔에게 “아빠랑 같이 들어가자.”고 말하게 된다. 예솔이 발버둥 치며 울어대는 것을 보고서야 정일은 상황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은 순남하고도 벌어진다. 너무 낡아 소리까지 나는 차를 순남이 타는 것을 보고 정일은 새 차를 사자고 말한다. 베트남 감옥에 갇힌 정일의 변호사 비용으로 모은 돈을 다 써서 순남은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잊은 것이다. 정일이 갯벌 앞에서 예솔에게 아빠 노릇하려고 했던 그 말처럼, 남편으로서 순남의 안전을 걱정해서 나온 말이 얼마나 사려 없는 것이었는지는 발화되는 순간 순남의 반응을 통해 폭로된다. 

정일이 순남의 아픔을 결정적으로 이해하는 계기, 말보다 우선해야 하는 언어를 깨닫는 순간은 순남의 발작을 목격했을 때다.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눈물겨운 장면이기도 하다. 순남이 수호가 앞에 앉아있는 양 말을 하다 갑자기 아들의 부재를 깨닫고는 비명 같은 울음을 터뜨린다. 정일이 어찌할바를 모르는데, 옆집 우찬 엄마(김수진)가 달려와 말없이 순남을 껴안고 함께 울어준다. 계속 같이 울 수는 없다고, 수호 엄마가 자신보다 더 중요하느냐며 화내는 딸을 뒤로 하고 뛰어와 주저 없이 안아주는 우찬 엄마의 모습은 상처를 보듬는 데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박에 일러준다. 서슴없이 손을 내밀고 가슴으로 안아주는 이웃을 통해 때때로 과도해 보였던 순남의 행동은 우리의 아픔으로 공유된다. 

그래서 다음 시퀀스에서 한사코 마다하던 순남이 수호의 생일 파티에 가는 것은 개연적이다. 순남은 자신 말고도 수호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호를 잃은 게 자신만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순남이 미처 몰랐던 수호에 대한 기억들 속에서 순남의 마음은 물론 다른 이들의 마음도 열려간다. 그리고 정일, 예솔, 우찬, 성준, 은빈, 석원 엄마(소희정)의 기억이 어우러지는 이야기 속에서 수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살아난다. 이로써 수호가 이 세상에 온 것을 축하할 수 있는 진짜 생일 파티가 된다. 

4. 세월호 이야기를 한다는 것

‘세월호’라는 키워드로 도서를 검색하면 사건 기록부터 유가족 및 관련자 인터뷰, 교육서, 철학서, 사회과학서, 문학 작품에 이르기까지 200여 권의 도서가 뜬다. 다큐멘터리나 육성 기록, 팟캐스트와 같은 방송 기록까지 합하면 그 자료의 양은 방대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극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아직 서사적 거리가 확보될 만큼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진상 규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섣불리 상상력을 개입시키기 어렵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이제 그만큼 울었으면 되지 않았느냐, 세월호 얘기는 그만하자는 반응 때문에라도 더욱 그렇다. 그러한 반응은 참으로 가혹해 보이지만,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면 귀 기울여줄 이들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엄중할수록, 그래서 잊혀서는 안 되는 것일수록 계속 새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이 절실하다. 

〈생일〉 이전에 세월호 참사를 다룬 극영화로 <악질경찰>(이정범, 2019)이 개봉했다. 이 영화는 상업적인 오락 영화에 세월호를 가져다 썼다고 하여 비판 받았다. 이에 대해 감독은 “침묵보단 낫다고 본다.”(노컷뉴스, 2019.3.13.)라고 말했다. 분명히 이 영화에는 범죄영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나름대로 애도를 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형식적 불균질이다. 실제 사건을 범죄영화로 끌어올땐 그것 또한 장르 관습에 맞게 가공될 필요가 있다. 현재에 가까운 이야기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제와 허구의 구별이 희미해지기 때문에 먼 과거의 이야기인 경우 허구와 실제의 섞임이 비교적 관대하게 용납된다. 그런데 세월호는 아직 그렇게 끌어올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굳이 안산을 배경으로 삼지 않고 세월호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세월호를 환기시킬 수 있는 공간과 사건을 고안할 수 있다. 이것이 장르영화의 문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악질경찰〉은 세월호 영화여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장르영화로서 실패한 것이었다. 

〈생일〉은 가족 멜로드라마에 세월호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가족 멜로드라마는 일반적으로 가족 성원들이 점차 서로를 이해하면서 화합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며 윤리적 결말에 이른다. 가장 보편화된 장르라 익숙해서 자칫 진부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생일〉은 이 형식에 세월호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차곡차곡 담아간다. 그런데 형식이 익숙해서 투명해 보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사실감이 한층 살아난다.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분명히 허구화된 이야기인데도 실제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세월호에 관련된 사람들이 희생자와 유가족 이외에도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그 안에 우리 또한 포함된다고 느끼게 한다. 그것은 이 영화가 슬픔의 위계에 억눌린 심리적 당사자들의 ‘숨어 있는 슬픔’을 섬세하게 길어 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슬픔들이 공감과 치유의 장으로서의 생일 파티로 수렴되면서 멜로드라마의 도덕적 비학moral occult과 맞닿는 결말에 이른다. 

예은 아빠 유경근 씨는 〈416의 목소리〉에서 “아이들은 함께 살아서 나오려고 최선을 다한 겁니다.”라고 했다.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위험을 감지했고 두려웠지만 친구들과 함께 살아 나오려고 선내 방송에 따라 질서 있게 기다린 것”(김탁환, 『거짓말이다』, p.382)이라는 얘기다. 학생들이 마지막까지 함께 살려고 했다는 것은 시신을 모셔왔던 민간잠수사들 역시 증언한다. 〈생일〉은 세월호 희생자들이 남기고 간 이러한 마음을 현재의 세상으로 가져온 듯하다. 서로 피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은 멜로드라마의 도덕적 비학이 아니라 간곡한 리얼리티로 다가온다. 

여전히 세월호 사건을 극장에서 마주하는 것은 겁이 난다고들 한다. 세월호 참사가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인 데다 아직 규명 중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혹시 그 두려움에는 우리가 미처 마주하지 못한 각자의 슬픔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로 인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슬픔 역시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개인의 슬픔에 갇히지 말고 사회적인 맥락과 공적인 의미를 더 캐고 물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질의와 천착은 개인이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며 자존과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과 더불어 진행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속적인 동력을 가지고 진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란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보다 다양한 차원의 재현과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길, 아울러 이 영화를 시작으로 숨어 있는 슬픔을 끌어낼 수 있는 영화들 또한 계속 나오길, 그래서 서로 피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 계속 모색될 수 있길. 

 


박유희 _ narrative21@naver.com
고려대 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 문학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영화사를 연구하며 서, 사장르의 관계망과 사회사의 맥락에서 한국영화 표상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묻는 비평을 해옴 지.은 책으로 『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서사의 숲에서 한국영화를 바라보다』 등이 있다. 

 

* 『202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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