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배우 박해일] 헤어질 수 없는 이유
[시로 만난 별 Ⅱ 배우 박해일] 헤어질 수 없는 이유
  • 장재선(시인)
  • 승인 2022.10.11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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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박해일 배우. 영화 〈헤어질 결심〉 홈페이지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박해일 배우. 영화 〈헤어질 결심〉 홈페이지

헤어질 수 없는 이유
- 배우 박해일

장재선(시인)

 

비누 냄새를 풍기던
소년 기타리스트가
국화꽃 향기를 맡을 때
뭘 할지 몰라 배회한 시간들도
앞으로 가지를 뻗었다

어딘가 갈 곳을 찾는
수많은 이름 중
자기 안으로 들어온 것은
온 힘을 다해 껴안았다
좋거나 나쁘거나

남이 부르는 목소리 크기로
스스로를 재지 않았기에
언젠가는 찾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의 감염을
막을 수 있었다

세월은 흔적을 남기고 흘러갈 뿐
한순간 떨리는 가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안개가 짙을수록
헤어질 수 없는 향기는
껴안은 시간 속에 맴돈다.


시 작 노 트

영화 시사회 무대에서 박해일 배우를 볼 때마다 미소년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사한 얼굴과 날렵한 몸매 때문이었을까. 도무지 나이를 먹을 것 같지 않은 모습이어서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의 밴드 소년 성우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살인의 추억〉(2003)에서 용의자 역을 맡은 이후 한동안 음울한 이미지를 데리고 다녔다. 다수의 로맨스 영화를 찍으며 그걸 벗어났다. 여러 겹의 캐릭터를 창출해낸 덕분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이라는 평가는 그래서 나왔다.

〈최종병기 활〉(2011)과 〈남한산성〉(2017)에서의 그는 거대했다. 남성 체구로는 왜소해보였던 그가 극중 인물을 통해 압도감을 선사한 것은, 연기자로서 내면세계를 꾸준히 키워온 덕분일 것이다.

그는 〈한산: 용의 출현〉(2022)에서 대사 몇 마디 하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존재감을 발했다. 약간 앞서 개봉한 〈헤어질 결심〉(2022)에서는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역을 맡아 사망자의 아내에게 하릴없이 끌리는 모습을 다층적으로 보여줬다.

〈헤어질 결심〉은 흥행이 폭발적이진 않았으나, 그 울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한동안 이 영화의 OST에 푹 빠져 지냈다.

박해일 배우의 연기와 관련, “형사 해준 그 자체였다”라는 평이 나왔다. 20년 전 어두운 살인 용의자를 했던 그가 안개 속에 흔들리는 중년의 형사 역으로 아득한 여운을 선사했다.

40대 중반에 다다른 배우 박해일에게 미소년의 이미지는 더 이상 없다. 그러나 세상과 사람에 대해 여전히 진지하고 순정적인 모습이 남아 있다. 그것이 시간의 공력과 어우러지며 훨씬 더 농익은 연기를 보여주지 않을까. 그렇다면, 앞으로도 그(의 연기)와 헤어질 결심 따위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

 


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서정주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2년 10월호(통권 10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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