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배우 문가영] 내일의 행복
[시로 만난 별 Ⅱ 배우 문가영] 내일의 행복
  • 장재선(시인)
  • 승인 2023.03.06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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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가영 배우 인스타그램

내일의 행복
- 배우 문가영

장재선(시인)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그저 가벼운 선택으로
나타난 것이지만
저 먼 생의 겨울바람으로부터
봄날의 화사함이 이어진 것처럼
아무도 모르는 시간이 쌓였을 것이다

누구나 하루치의 불행과 치욕을 견뎌냈다고
내일의 행복을 얻는 것은 아니어서
오늘 견딘 것들이
별 거 아닌 걸 함께 하는 사랑으로 오기까지
앞으로도
혼자서 얼마나 중얼거리며 걸어야할까

어떤 마음은 포기해야 지켜지는 것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함께 걷다보면
믿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의도치 않은 우연으로 만나는 시간이 쌓여
슬픔의 공간을 채울 것을.

 


시 작 노 트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문가영 배우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다. 드라마 〈사랑의 이해〉 마지막 촬영 장면을 담은 사진과 함께였다.

문 배우는 〈사랑의 이해〉에서 주인공 안수영을 연기했다. 빼어난 외모에 뛰어난 업무 능력을 지녔음에도 고졸 출신이라는 한계를 절감하는 은행원 역이다. 같은 지점의 남성 직원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조건에서 오는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자꾸 도망치는 캐릭터를 절묘하게 표현했다.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문 배우는 근년에 드라마 〈여신강림〉, 〈링크: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에서 잇달아 주연을 맡았다. 분명한 발음과 탁월한 표정 연기로 호평을 얻어 팬덤이 커졌다. 반면, 인기가 상승한 데 따른 반감도 불거지고 있다. 한 후배가 “문가영이 계속 주연을 맡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하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 봤다.

문 배우는 느닷없이 떠오른 스타가 아니다. 11세 때 영화 〈스승의 은혜〉로 데뷔한 이후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했다. 현대물과 사극, 로맨스와 코미디를 넘나들며 공력을 쌓았다.

그는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독어에 능숙하다. 물리학자인 아버지와 음악가인 어머니가 독일에 유학할 때 태어났다고 한다. 책을 읽고 토론하기를 즐기는 집안 분위기 덕분에 독서광이다. 그런 지적인 면모가 TV 예능 프로그램과 유튜브 등을 통해 알려졌다. 그걸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 배우에 대한 찬사가 더 커진다면 그에 따른 시샘도 불어날 것이다. 그래서 현자들은 삶의 고락苦樂 총량이 같다고 했을 것이다. 젊은 그가 꾸준한 걸음으로 대중의 곁에 오랫동안 머물며, ‘슬픔의 공간을 행복으로 채우는’ 배우가 되기를 바란다.

 


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3년 3월호(통권 10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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