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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행복
- 배우 문가영
장재선(시인)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그저 가벼운 선택으로
나타난 것이지만
저 먼 생의 겨울바람으로부터
봄날의 화사함이 이어진 것처럼
아무도 모르는 시간이 쌓였을 것이다
누구나 하루치의 불행과 치욕을 견뎌냈다고
내일의 행복을 얻는 것은 아니어서
오늘 견딘 것들이
별 거 아닌 걸 함께 하는 사랑으로 오기까지
앞으로도
혼자서 얼마나 중얼거리며 걸어야할까
어떤 마음은 포기해야 지켜지는 것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함께 걷다보면
믿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의도치 않은 우연으로 만나는 시간이 쌓여
슬픔의 공간을 채울 것을.
시 작 노 트
‘이 슬픔은 우리가 종착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문가영 배우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다. 드라마 〈사랑의 이해〉 마지막 촬영 장면을 담은 사진과 함께였다.
문 배우는 〈사랑의 이해〉에서 주인공 안수영을 연기했다. 빼어난 외모에 뛰어난 업무 능력을 지녔음에도 고졸 출신이라는 한계를 절감하는 은행원 역이다. 같은 지점의 남성 직원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조건에서 오는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자꾸 도망치는 캐릭터를 절묘하게 표현했다.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문 배우는 근년에 드라마 〈여신강림〉, 〈링크: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에서 잇달아 주연을 맡았다. 분명한 발음과 탁월한 표정 연기로 호평을 얻어 팬덤이 커졌다. 반면, 인기가 상승한 데 따른 반감도 불거지고 있다. 한 후배가 “문가영이 계속 주연을 맡는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하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 봤다.
문 배우는 느닷없이 떠오른 스타가 아니다. 11세 때 영화 〈스승의 은혜〉로 데뷔한 이후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했다. 현대물과 사극, 로맨스와 코미디를 넘나들며 공력을 쌓았다.
그는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독어에 능숙하다. 물리학자인 아버지와 음악가인 어머니가 독일에 유학할 때 태어났다고 한다. 책을 읽고 토론하기를 즐기는 집안 분위기 덕분에 독서광이다. 그런 지적인 면모가 TV 예능 프로그램과 유튜브 등을 통해 알려졌다. 그걸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 배우에 대한 찬사가 더 커진다면 그에 따른 시샘도 불어날 것이다. 그래서 현자들은 삶의 고락苦樂 총량이 같다고 했을 것이다. 젊은 그가 꾸준한 걸음으로 대중의 곁에 오랫동안 머물며, ‘슬픔의 공간을 행복으로 채우는’ 배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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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3년 3월호(통권 105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