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배우 탕웨이] 꿈속의 빛
[시로 만난 별 Ⅱ 배우 탕웨이] 꿈속의 빛
  • 장재선(시인)
  • 승인 2022.02.02 0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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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웨이

1940년대 상하이는 꿈틀거리는 짐승의 뱃구레였다.
그 뭉클거리는 걸 상대하며 얼마나 쓸쓸했을까 .
몸에 딱 달라붙는 치파오는 붉은 술이었다.
사내에게 몸을 맡긴 순간에도 외로워하는 그대를
보며
나는 색에 취해 허청거렸다. 

고독은 안개 낀 시애틀에도 있었다.
흐릿한 빛 속에서도 그 독은 얼마나 뚜렷했던가.
걷고 또 걸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기다리는 그대를 보며
나는 독에 취해 허청거렸다.

그대가 서울 인근의 어느 마을에 산다는 풍문은
꿈처럼 희미했으나

머무르고 지나온 시간들이
이곳과 저곳,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저희들끼리 어울려
환한 빛을 빚었다.

내가 꿈을 꾼 것인지
꿈이 나를 안은 것인지 몰랐다.
그래서
앞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시작 노트
탕웨이湯唯(43) 배우가 노래 〈꿈속의 사랑〉을 부른 영상을 봤다. 한국어 가사로 담백하게 부르는데, 거기 배인 비조悲調가 긴 여운을 줬다. 이 노래의 원곡은 1942년 중국영화 <장미는 곳곳에서 피薔고薇處處開>에 삽입된 〈몽중인夢中人〉이라고 한다. 중국 배우가 중국어 원곡이 아닌 한국어 노래를 불러 경계를 넘는 울림을 선사한 셈이다. 탕웨이 배우는 중국 국적을 지키고 있지만, 한국 사람인 듯 친근한 느낌을 준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김태용 감독과 부부의 연을 맺어서 그렇겠지만, 그가 출연한 작품 속에서의 캐릭터가 우리 정서에 공감을 일으켰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인생 영화’로 꼽는 작품 중 두 개가 그가 주연한 작품이다. 그 중 〈색, 계〉는 1940년대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탕웨이는 2007년에 개봉한 이 작품으로계 세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신인 배우로서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는데, 암살을 해야 하는 적과 사랑에 빠지며 갈등을 겪여는성 역할을 매혹적으로 해냈다.

또 하나의 작품 〈만추〉는 2011년 작으로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것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지 7년 만에 특별가 를휴 나온 중국계 여성 애나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한국 남성 훈과 짧은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는 내용이다. 통속적 스토리로 끝날 수도 있으나, 여운이 길게 남은 격조 높은 멜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극 중 애나의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담담하게, 때로절는실 하게 표현해 낸 탕웨이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냈다.

당시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에 온 탕웨이를 인터뷰했는데, 스크린 속에서와 달리 발랄하고 활기찬 아가씨였다. 눈 빛장에 난기가 가득했고, 별로 웃기지 않은 이야기에도 자주 웃음을 지어서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다. “한국 사람들과 통역 없눈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기회가 있다면, 한국에 오래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요.” 한국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이뤄진 셈이다. 김 감독과 결혼을 한 후 서울 혹은 경기도 어느 곳산에다서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가 출연한 두 편의 한국 영화가 곧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김태용 감독의더 〈랜원드〉. 원숙한 나이에 이른 탕웨이가 두 작품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서정주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2년 2월호(통권 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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