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배우 박근형] 그리워진 정읍井邑
[시로 만난 별 Ⅱ 배우 박근형] 그리워진 정읍井邑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2.09.0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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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형사 2〉 스틸 사진
〈모범형사 2〉 스틸 사진

그리워진 정읍井邑
- 배우 박근형

장재선(시인)

 

전쟁 때의 소년은
사람들이 네 편 내 편 나뉘어
죽고 죽이는 게 끔찍해
고향 하늘이 싫었다
서울에서 새로 만난 세상은
꿈인 듯 꿈이 아닌 듯
그 세상에 피와 살을 바쳐서
육십 년을 건너오니
비로소 그리워진 고향 정읍
이 그리움에 기대어
우물마을에 비친
모든 풍경을 어루만지며
하늘과 땅, 그리고 산이
지나온 시간들에
잠깐씩 깃들어본다.

 


시작노트

드라마 〈모범형사 2〉에서 박근형 배우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릿하다. 극 중 수제화점 주인 으로 나오는데, 대기업 법무팀에서 일하던 손녀가 살해되자 그 범인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애쓴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손녀를 혼자 키우며 살아왔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박근형 배우의 탁월한 연기 덕분이다.

1940년생인 박 배우는 지금도 꾸준히 활약하며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꽃보다 할배〉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미노년의 멋스러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휴머니티가 넘치는 캐릭터에 참 잘 어울리지만, 〈여명의 눈동자〉에서처럼 소름끼치는 악역도 능숙히 해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재벌 회장, 정치인도 자연스럽다.

그가 한국의 대표 배우 중 한 사람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한 때 자신의 연기 실력에 절망하고 배우를 포기하려 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고향인 정북 정읍에 내려가 칩거했던 시기의 아픔이 그가 대배우가 되는 데 자양분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의 고향 정읍은 백제 가요 〈정읍사〉, 동학혁명 전봉준의 고장 등으로 알려진 곳이다. 내장산 단풍의 절경으로도 유명하다.

박 배우는 어렸을 때 고향에서 6·25 전쟁을 겪었다. 빨치산과 토벌대가 각기 활동하며 죽고 죽이는 참상을 봐야 했기에 고향이 싫어서 상경했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고향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70세가 넘어서라고 했다.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전북 지역을 여행하다가 그의 고향을 찾았다. 김제 평야가 옆에 있기 때문에 평지가 많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산이 많은 곳이었다. 6·25 전쟁, 동학혁명, 〈정읍사〉 등의 역사가 그 산 아래 마을들에 숨 쉬는 듯 했다. 대배우의 역정은 그 숨결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서정주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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