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니체의 비극론에서 ‘정당화 철학’을 읽다: 박찬일 『정당화의 철학』
[북리뷰] 니체의 비극론에서 ‘정당화 철학’을 읽다: 박찬일 『정당화의 철학』
  • 손희(본지 편집장)
  • 승인 2022.04.0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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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 성찰과 따뜻한 위트가 공존하는 작품들로 시적 성취를 이뤄온 중견 시인 박찬일(추계예대 문창과 교수)이 니체의 고전을 깊이 있게 읽어낸 책을 출간했다. 『정당화의 철학』 은 저자가 대학원 시절부터 현재까지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 니체 철학에 관한 책으로, 저자는 그의 ‘정당화 철학’의 의미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스 비극의 정신을 연구하고 그것의 당대적 의미를 도출해낸 니체의 역작 『비극의 탄생』은 시대가 지나도 인문학도들의 정신을 곧추세우는 정전正典으로 남아 있다. 니체의 통찰은 박찬일 교수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고, 그는 자신의 창작과 연구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음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정당화의 철학』은 그러한 저자의 니체에 대한 흠모의 기록이자, ‘정당화 철학’에 대한 현재적 의미를 정리하는 연구서이기도 하다.

니체가 말하는 (올림포스) 신은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을 성립하게 한 신과는 다른 의미에서 믿을 만한 신이다. ‘신에 의한 악덕’은 믿을 만하다. 신에 의한 사랑이 아닌, 증오는 믿을 만하다. 신에 의한 증오로서 믿을 만하다. 신의 증오-신의 악덕은 믿을만한 신에 의한 것으로서, 진리의 위상을 갖는다. 신의 증오가 인간(의 삶)을 정당화시킨다. 신의 악덕이 인간(의 삶)을 정당화시킨다. 증오-악덕이 진리로서, 인간의 삶을 정당화시킨다. [칸트가 그의 정언명령으로 표상되는 도덕 형이상학의 정립을 위해 신적 보증을 필요로 했을 때 그 신은 도덕을 정당화하는 신으로서 그 자체 완전성의 표상이었다. 칸트는 신의 도덕적 권위에 의한 것으로서 인간이 도덕적인 삶을 살 것을 요청했다. 신은 그 자체 진리로서 믿을 만하다]
-본문 54쪽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통해 바흐-베토벤-바그너로 이어지는 독일 음악의 탄생에 관해 얘기한다. 바그너의 음악극에 매료되었던 니체가 그와 교류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관심사는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 비극이었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비극의 본질과 부활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며, 그리스 비극 정신이야말로 진실한 문화 창조의 원천임을 역설했다. 미적 자유로서의 정당화 예술은 ‘올림포스 신들로 하여금 인간의 삶을 살게 하면서 인간의 삶을 정당화한다’는 격률에서 확인되듯,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정당화의 예술에서 정당화의 철학으로 전진시켰다. 박찬일 교수는 『정당화의 철학』에서 그러한 니체의 사상적 진보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그 안에서 끝없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내는 중핵에 대해 탐구한다.

학문이 그 “원주의 한계점”(97)에서 예술을 필요로 한다. 이 세계의 현존이 소크라테스주의로 표상되는 학문으로 시인是認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현존이 미적 현상으로 시인된다. 니체의 가상(假像, 현상, Erscheinung, Schein) 예술론은 형이상학적이다. 니체 형이상학이 『비극의 탄생』에서 거의 모든 모습을 드러낸다. 니체 예술론은 잔혹한 실존으로부터의 형이상학적 구제救濟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이것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후, 니체 철학에서 전개되는 본질 철학의 와해 및 주체 철학의 해체, 기독교 형이상학 비판, 대지 철학, 자발적 몰락에의 의지, 초인간, 영원 회귀, 권력의지 등은 니체에 의한 ‘비극적 세계 인식’의 결과로서 서로 다르게 나타난, 소위 관점주의의 표상들이다.
-본문 103쪽

저자는 니체가 근대인이 예술을 수용하는 감성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그에 대한 해답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신호탄으로 한 그리스 비극의 부활을 내세운다고 책에서 언급한다. 특히 비극의 몰락이 소크라테스-알렉산드리아 문화에 의한 것임을 지적하여 니체가 이성 중심적 사고와 학문주의의 병폐를 제시했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러한 전통에 반대하며 디오니소스적 도취 예술과 아폴론적 꿈 예술 조화를 통해서만 삶의 가치가 긍정될 수 있다는 것이 니체의 『비극의 탄생』 요지이며, 나아가 니체 철학에서 전개되는 본질 철학의 와해 및 주체 철학의 해체, 기독교 형이상학 비판, 영원회귀 사상 등의 단초가 여기에서 발원하고 있음을 저자는 주목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인생이 예술로만 정당화된다는 니체의 심오한 사유를 탐독하고, 그러한 ‘정당화의 철학’에서 우리 인간 삶에 대한 깊은 이해의 관점을 찾아 나가려고 한다.

팬데믹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계에 있는 지금, 시대의 모든 흐름이 크게 바뀌어 나가고 있다. 아폴론적인 꿈과 디오니소스적 도취가 겹쳐지는 삶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신 한가운데에 크게 그어진 비극의 의미를 스스로 규정해 나가야 한다. 박찬일 교수의 『정당화의 철학』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그러한 사건들을 읽어 나가고, 그것을 주체화할 수 있는 관점을 얻게 될 것이다. 

 

 


 

* 《쿨투라》 2022년 4월호(통권 9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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