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킹메이커〉의 영화적, 정치적 움직임에 관하여
[영화 월평] 〈킹메이커〉의 영화적, 정치적 움직임에 관하여
  • 송석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2.03.01 0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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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스틸컷

변성현의 〈킹메이커〉를 보고 들었던 생각은 두 가지다. 느낌표 하나와 물음표 하나. 첫 번째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참 활력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영화가 누구에게 득이 될까?’였다. 두 가지 감상은 서로 전혀 관계가 없다. 전자는 텍스트 분석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텍스트 외적인 부분에 관한 것이니까. 그래도 일단 써보기로 한다.

〈킹메이커〉 스틸컷

〈킹메이커〉의 영화적 움직임

우선 전자에 관해 말하자면, 변성현의 화면은 참 스타일리시하다. 평범한 구도로 처리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장면에도 남다른 입체감을 부여한다. 소설로 치자면 직유법이 훌륭하다고나 할까. 가령 극중 신민당의 거물급 정치인인 김운범(설경구)이 그의 참모인 서창대(이선균)에게 “자네는 준비가 덜 된 것 같아”라며 정치적 결별을 선언하는 순간, 카메라는 서창대를 화면 바깥으로 밀어낸다. 대화하는 두 사람을 한 화면에 잡고 있던 카메라가 서창대를 프레임 바깥으로 쫓아내고 김운범만 잡는 것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똑같은 방식으로 서창대만 프레이밍하는데, 이는 직전 쇼트에 대한 리액션 쇼트로 기능한다. 이처럼 변성현은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한 공간을 두 개의 공간으로 구획하면서 두 사람의 결별을 형상화한 것이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보자. 김운범과 결별한 서창대는 상대 진영인 공화당의 선거 승리를 위해 일조한다. 서창대의 도움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공화당은 그에게 약속했던 돈을 건넨다. “투표는 하셨으예?”라는 공화당 인사의 질문에 서창대는 침묵한다. 이어 그가 “안하셨구나. 난 창대씨가 누굴 찍었을지 억수로 궁금했는데”라고 조롱하듯이 말하자 서창대는 “이제까지 내가 믿어 왔던 정의를 내 손으로 직접 무너뜨렸는데, 거기에 도장까지 찍어야 됩니까?”라고 일갈한다. 동지들을 배신한 서창대의 고뇌하는 표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순간이라 클로즈업을 사용할 법도 한데, 변성현은 이 모든 순간을 멀리서 롱테이크로 포착한다. 한 발짝 다가가야 할 때 외려 두 발짝 떨어짐으로써 장면에 색다른 공간적 부피를 더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변성현의 영화에서는 배우뿐만 아니라 카메라도 연기한다. 그것은 그의 전작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에서도 두드러졌다. 이 영화에 대해 송경원 평론가는 “〈불한당〉의 롱테이크, 1인칭 카메라, 카메라 무빙은 내러티브의 필연이 아니라 할 수 있으니까 시도하는 일종의 똥폼”이라고 평했다. 굳이 롱테이크가 필요하지 않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처리하는 ‘과잉’을 선보인다는 것인데,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이 평가는 비판이 아니라 칭찬에 가깝다. 변성현의 화면을 똥폼과 허세, 과잉으로 비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지가 아닌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드는 대개의 한국 상업영화에서 그가 구사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치기 어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지지하고 싶은 심정도 드는 게 사실이다.

〈킹메이커〉 스틸컷

〈킹메이커〉의 정치적 움직임

이제 후자에 관해 말해보자. 2012년 10월, 18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보고 난 뒤 눈물을 흘렸다. 그는 기자들에게 “노 전 대통령이 생각나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광해와 노무현은 당대와 후대의 평가가 극단으로 나뉘었다는 점에서 닮았고, 개혁적 성향의 인간미 넘치는 영화 속 광해의 모습은 대통령 노무현의 모습과 겹치는 점이 많았다. 문재인의 눈물로 인해서 ‘광해=노무현’이라는 도식은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의 뇌리에 박혔을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 영화는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에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으며 문재인의 지지율이 1%포인트 상승했다는 분석이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까지 됐으니 말이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개봉한 〈킹메이커〉는 김대중과 그의 심복이었던 엄창록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앞서 언급한 김운범이 김대중이고, 서창대가 엄창록이다. ‘선거판의 여우’라 불린 서창대의 기상천외한 모략과 술책을 지켜보는 게 이 영화의 재미지만, 나는 그보다 변성현이 김운범을 어떻게 재현할지에 더 관심이 갔다. 그 재현 방식에 따라 현재 대선후보들 가운데 누가 더 득을 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의 지대한(?) 관심과 달리 이 영화는 어느 진영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아닌 게 아니라 〈킹메이커〉는 묘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영화이다. 특정 진영의 정치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영화가 철저히 장르적 재미에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킹메이커〉는 영화적 움직임이 정치적 움직임을 압도한다. 변성현은 김운범을 마냥 의인으로 묘사하지 않고, 독재의 폭압 속에서 정의를 외치는 야권의 궤적을 무작정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잘빠진 장르영화를 만드는 데 있지 당시의 정치 지형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러다보니 〈킹메이커〉는 특정 세력이 현실 정치에 이용하기에 그리 유용한 텍스트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 영화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온갖 중상모략을 일삼는 서창대를 통해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불리는 작금의 선거판에 이상한 방식으로 울림을 준다. 그러니까 현실 정치에 본질적(혹은 영화적)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사에 또 한편의 빼어나고 매끈한, 감각적인 장르영화가 추가됐다.


참고문헌
송경원,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과 〈악녀〉의 순진한 허세가 기꺼운 이유」
배동미, 「열렬한, 관계의 영화: ‘킹메이커’ 변성현 감독 인터뷰」

송석주
대학에서 경영학을,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제15회 《쿨투라》 신인상 영화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현재 《독서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TBN 한국교통방송의 영화 코너 〈어떤 영화, 진짜 이야기〉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다.

 

* 《쿨투라》 2022년 3월호(통권 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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