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쿨투라 신인상 소설 부문 당선작] 하스타
[제6회 쿨투라 신인상 소설 부문 당선작] 하스타
  • 조미녀
  • 승인 2013.03.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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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배우였다. 팔등신 몸매를 타고 났지만, 배우를 하기엔 얼굴은 평범했다. 좋은 것만 찾아보면 한없이 좋아 보였지만 나쁜 점을 끄집어내면 그것 또한 한도 끝도 없었다. 외모는 화장술과 화려한 의상으로 업그레이드 시켰고, 이기적인 성격은 처세술로 포장했다.

  얼굴 크기며 신체의 골격이 작아 카메라 테스트에도 무난하게 통과되었지만 난관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배우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연기력은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그 부족한 연기력을 채우려고 연기학원에 등록을 했고, 그것도 두어 달, 할머니의 능력으론 턱도 없었다. 길거리 캐스팅이라도 될까 강남이다, 압구정을 쏘다니다 덜컥 임신까지 해버린 철딱서니 없고, 어리숙하기 짝이 없는 여자였다. 그렇게 배우의 꿈이 사라졌는데도 엄마는 핏덩이인 나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연기학원을 기웃거리다 일 년에 몇 번 행인 일과 이를 반복하는 역할을 받아왔다. 그러다가 부분 모델 오디션에 참가해 손 전문 모델의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 오로지 손을 위해서만 하루하루를 살았다. 배우의 꿈을 접은 몇 개월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엄마의 손이 형형색색의 조명을 받고 그 대가로 수입이 생기고부터는 우울함을 조금은 떨쳐 낼 수 있었다. 엄마 나이 서른을 지나고 있었지만 찾아주는 곳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연희, 손을 얼굴 쪽으로 가져가지 말고 오른쪽 귀 쪽으로 올리라고.”

  언제부턴가 촬영장에서 엄마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보다는 연희란 이름으로 불렸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 직장을 견학하는 숙제가 있어 몇 번 촬영장을 따라다녔는데 아마도 그 때부터였을 거였다. 엄마는 조카라고 둘러댔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조명이 너무 뜨거워요, 감독님.”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어.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보기에도 엄마는 손보다는 얼굴을 카메라에 노출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 보였다.

  “연희도 이제 들어앉아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중압감이랄까. 내 이름을 앞세워 들어앉아야 한다는 감독의 말이 지금이라도 당장 엄마의 일을 끊어버리겠다는 엄포로 들렸다.

  “어머, 감독님. 제가 얼마나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다를 뭐해 빨리 속도를 좀 내자고, 벌써 몇 시간째야!”

  감독은 엄마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에 있는 스태프들을 재촉했다.

  빨강, 파랑, 노랑의 조명을 받은 손은 아름답다. 투명 셀로판을 뚫고 나온 하얀 조명 아래 놓인 엄마의 손은 실크처럼 부드럽고, 반짝인다. 무색의 매니큐어 바른 손톱은 반짝반짝 윤이 나고, 적당하게 포동한 손등은 갓 태어난 아기의 피부처럼 맑다. 살갗이 너무 얇고 투명해서 만지면 금방이라도 톡 하고 터질 것만 같다.

  잘나가는 여배우의 촬영 씬을 몇 시간이나 기다렸다. 여배우는 H회사의 화장품 모델이었는데 이번 광고는 핸드제품이었다. 순수함과 촉촉함을 강조한 제품에 민낯이여도 광이 나고, 청순한 이미지로 포장된 그 여배우가 제격이었다. 그러나 가꾸고 다듬어도 각지고 마디뼈가 튀어나온 손은 엄마의 손을 따라갈 수 없었다. 여배우가 요기를 하는 동안 엄마는 리허설을 했고, 다시 여배우의 촬영이 시작되고는 준비해 온 핸드 케어 제품을 바닥에 꺼내놓고 촬영 준비를 했다.

  “마지막 씬이니까 빨리 끝내자고.”

  스킨과 로션을 정성스럽게 바르고, 오 분간 휴대용 핸드 드라이기에 손을 넣는다. 띵동. 타이머가 작동을 멈추면, 다시 수분크림을 바르고 손톱용 에센스를 한 방울 떨어트려 손톱을 다듬는다. 큐티클 주변에 오일을 바르고 혹시라도 삐져나와 보일 수 있는 큐티클을 푸셔로 민다. 다시 드라이기의 타이머 버튼을 누른다. 타이머가 돌아가는 동안 여배우의 몸짓과 표정을 따라해 보기도 한다. 대사까지 읊조린다. 그럴 때마다 주변의 스태프는 손 관리나 하라고 비아냥거렸다. 언제고 여배우가 스케줄을 놓치면 그 뒷자리라도 차지할 욕심에 촬영장의 모든 것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엄마에게 그런 기회는 절대 오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자신을 치장할 돈도, 후원자도, 빼어난 미모도, 무엇보다도 사십 줄의 엄마가 연기자로 설 자리는 없었다.

  엄마의 손이 만들어내는 광고는 다양했다. 고무장갑, 네일아트 아카데미 전단지, 화장품 회사 핸드제품 광고 곳곳에 안 들어간 곳이 없을 정도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보다 편한 직업이 없다고 하지만 엄마는 세상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손을 클로즈업 하려면 조명 밑에 손을 놓아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싫은 줄 알아. 싫은 정도가 아니라 난 뜨거운 것은 정말 못 참거든. 그렇게 삼십 분 아니 한 시간씩 손을 올려놓고 꼼짝 않고 앉아 있으면 어깨가 다 빠지고, 땀이 삐질삐질, 진짜 힘들어.”

  A네일아카데미의 홈페이지와 브로셔, 그리고 전단지에 사용될 손 모양을 찍는데 온종일이 걸렸다. 화려한 문양을 손톱에 그려 넣고, 아세톤으로 지우기를 여러번, 엄마는 울상이 되었다. 손톱을 온종일 혹사시키느냐는 거였다.

  “영양제를 듬뿍 바르고 스팀을 해 주면 좋아질 거예요.”

  엄마에게 손이 어떤 손인지 모르고 네일 아티스트는 계속 지껄였다.

  “너무 곱다. 관리를 철저히 하시나 봐요?”

  아티스트의 손톱에는 빨간 바탕에 하얀 매화가 몇 송이 피어 있다. 문양은 화려했지만 아티스트 손은 주름이 많았다. 두꺼운 화장으로 얼굴의 잡티는 가렸지만 두 줄 선명한 목줄은 여자의 나이를 짐작케 했다.

  “곱긴, 자기가 더 고운 걸.”

  촬영장의 조명이 꺼지고 모두들 제 갈 길로 돌아갈 즈음 엄마의 몸도 녹초가 됐다. 마지막 씬이라고 서두르던 감독의 말이 씨가 되었는지 그날 이후로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엄마의 손을 찾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엄마 대신 빨래며, 설거지를 도맡은 내 손은 생채기 나고, 꿰매고, 마디가 굵다. 엄마가 바르고 남은 계란 팩을 아무리 발라도 탄력이 없고, 체형관리사 자격증을 따고 테라피 과정을 마쳤을 때에는 두툼한 나무토막처럼 골격이 굵은 손으로 변해 있었다. 인문계보다 학비도 저렴하고 기술을 배우면 취직도 빨리 할 수 있겠다 싶어 나는 피부미용 전문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했고, 고등학교 3년 동안 피부관리사, 체형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넌 손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손목이 시큰거려 덕지덕지 파스를 붙인 손목을 보며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말을 줄줄이 뱉어냈다.

  “이런 손이 남자 손이라면 재복이 붙을 손인데. 부모 잘못 만나 평생 여자의 손으로 살지 못하니 참 지지리 복도 없다.”

  엄마는 자신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엄마 말에 의하면 엄마는 복이 있어도 무진장 많아야 옳은 얘기가 아닌가. 잘생긴 손을 타고 났으니 당연히 부모도 번듯해야 하고, 적어도 통장 서너 개쯤은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엄마는 그 흔한 아버지도, 남편도, 두툼한 통장도 가져보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손에게만 미안한 게 아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보지 못한 눈, 고기 맛은 삼겹살이 전부인줄 알고 살았던 혀, 운동화 바닥이 헤질 정도로 걸었던 발, 내겐 신체 어느 한 군데 미안하지 않은 게 없다. 나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나한테 미안한 거 없어?”

  “미친년! 그래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다.”

  테라피스트 과정을 마쳤을 때 원장은 동기들 중 누구보다 손놀림이 좋다며 지인이 운영하는 마사지 숍 ‘하스타’에 소개해줬다. 다른 동기보다 먼저 추천을 받은 나의 손은 그야말로 미친 손이 되어있었다.

  하스타에는 열 개의 룸이 있다. 카운터를 끼고 왼편으로 들어가 락커에서 옷을 갈아입고 파우더 룸에 앉으면 은은하게 퍼지는 라벤더 향이 심신을 안정시켜준다. 한쪽 벽에 내려진 대형 블라인드에는 옥빛 찬란한 이국의 바다가 야자수 나무와 어우러져 실내에 틀어놓은 파도소리와 함께 바닷가 근처에 차려놓은 숍에 들어 온 것으로 착각할만하다.

  룸을 찾아가는 복도는 짙은 밤색으로 엔틱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코너를 돌 때마다 자글자글한 구슬이 박힌 샹들리에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하스타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 느낌은 미로와 같아서 차이나 풍의 롱 원피스를 입은 테라피스트가 안내를 하지 않으면 정해진 룸을 찾을 수 없는 구조다. 장미향의 버블이 몽글몽글 넘쳐나는 욕조가 있고, 오렌지를 둥둥 띄우면 금방이라도 피로가 풀릴 것 같은 하스타의 룸은 평온하기까지 했다.

  열 개의 룸은 각기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마사지 테라피가 필요한 사람은 하스타 중심으로, 물을 이용한 테라피는 월풀과 버블 욕조가 중심이 되고, 신경 안정의 휴식이 필요한 사람은 향기 전용 룸이 따로 있다. 하스타에서 제일 인기있는 테라피는 손으로 하는 마사지 테라피다. 하스타는 인도어로 손이라는 뜻이란다. 그것도 고대 인도어라니 처음 듣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다. 마사지 숍 ‘손’ 보다는 ‘하스타’가 손님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간판이라 생각하며 내 손을 내려다본다. 하스타란 고급스런 이름에 걸맞지 않은 손. 때론 부드럽고, 때로는 뜨거운 눈물을 받아냈던 손. 여자의 손이라고 하기에는 어디 내밀기도 어색한 나무토막 같은 두껍고 뭉턱한 손. 오직 이곳 하스타에서만 필요한 일손이다.

  하스타에서의 한 달은 언니들이 맡은 손님들 옆에서 타월을 빨아다 주고, 마사지 팩을 만들고, 손님들이 샤워하고 나간 부스를 청소하며 보냈다. 종일 손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마사지 하고 나면 몸의 기가 빠져 나간 듯 녹초가 되었다. 허리가 잘록하고 날씬한 손님, 아이 셋을 낳고도 아랫배 하나 쳐지지 않은 손님, 관리를 받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어도 뭔가 부족한 듯 손님들은 정기쿠폰을 끊고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었다. 혈관에 붙은 셀룰라이트를 녹이는 마사지를 받으면 일주일 정도는 몸이 퉁퉁 붓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체형은 안정적으로 변하고, 피부는 윤기가 난다. 혈이 제대로 통해 생기가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이다. 얼굴 맛사지부터 발끝까지 한 시간 넘게 손님을 주무르고 나면 온몸의 기가 모두 빠져 나가 금방이라도 꼬꾸라질 듯하다. 내 몸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야만 손님의 얼굴에는 윤기가 난다. 

  그렇게 기가 빠지는 시간쯤 되면 혈을 잘못 잡을 때가 있다. 그러면 혈뿐만 아니라 석고팩을 바르면서도 손이 부르르 떨린다.

  “허 선생. 대학 나왔어?”

  숍의 대표는 원장으로, 종업원들은 성을 따 이선생, 노선생이라 불린다. 그러나 나는 아직 선생이란 호칭이 낯설다. 놀랄 것도 없는데 대학이란 소리만 나와도 지레 자격미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듯 얼굴이 화끈거린다.

  전문대학 미용학과를 나와 번듯하게 자리도 잡고 싶었다. 그러나 몇 백만 원 하는 대학 입학금을 감당할 형편이 아니었다. 일 끊긴 엄마는 우울증세가 심해졌고,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할머니 수입으로 대학은 어림도 없었다.

  “어디 불편하세요? 사모님.”

  “혈을 제대로 잡기나 하는 거야. 아프기만 하잖아.”

  틈틈이 떡이며, 피자며 간식거리를 챙겨먹는데도 유난히 지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손님들의 질타를 받고, 원장에게는 프로정신이 없다느니, 수습기간을 둬야 한다느니, 고객의 불만에 패널티를 물린다느니, 신참 교육을 잘 시키지 못했다고 애꿎은 언니들까지 싸잡아 훈계를 들어야했다.

  채찍이 약이 되는 사람이 있고, 칭찬이 약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데 나는 어느 쪽일까. 채찍이어도 좋고, 칭찬이어도 좋았다. 성공의 제단으로 올라가기 위해 육신의 어느 하나쯤은 과감하게 버릴 수도 있었다.

  “오늘 내가 한턱 쏠게요. 고기 먹고 들어가자, 응? 삼겹살 한두 근 씩은 먹어야 기운을 내죠?”

  엄마의 약값과 얇은 월급봉투를 생각하면 언니들을 초대할 꿈도 꿀 수 없지만 오늘은 왠지 언니들에게도, 내 몸뚱어리에게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언니들은 눈을 흘기면서도 공짜고기에 욕심이 난 것인지 흔쾌히 허락을 했다. 어쩌면 언니들은 나보다 먼저 기력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세상 사물이 각자의 이름을 가져야 하는 것이 이치라면 내게도 아빠라는 이름이 있어야 했다. 함께 살지 못하고, 만질 수도 없지만 이름만이라도 존재해야 하는. 그러나 나는 슬프지 않다. 세상에 갓 나서 길고, 보드랍고, 하얀 엄마의 손이 처음으로 나를 보듬어 주었던 기억, 나는 그 기억 하나 만으로도 홀로 설 수 있다고 믿었다. 투박하고, 거칠고 따뜻했던 할머니 손도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엄마 손에서 느껴졌던 향기로운 감촉은 나를 살게 한, 나를 이루게 한, 또 하나의 의미이고 존재였다.

  자신의 신체 중 제일 젊게 보였던 엄마의 손과, 또 자신의 신체 중 가장 늙어보였던 할머니의 손. 나는 두 손을 모두 사랑했다. 할머니의 손에서 전이된 물질은 생활력과 자생력이었고, 엄마의 손에서 전이된 물질은 손재주로 살아났다. 두 사람에게서 받은 물질이 설명하기에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지만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었다면 나는 그것을 유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나에게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배우면 직업은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래서 손으로 해 볼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덤벼 봤다. 플로리스트가 되겠다고 장미 가시에 찔리기도 수차례, 푸드리스트가 되겠다고 냉장고의 식재료를 모두 꺼내 나만의 레시피를 만드느라 손가락에 밴드를 안 붙이는 날이 없었다. 철없던 시절에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학원을 보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아빠만 있어도 당장 학원에 보낼 수 있다는 성의 없는 대답뿐이었다.

  “오늘 분당 사모님 너무 한 거 아니니?”

  수미언니가 불판에 삼겹살을 올려놓으며 숍에서 있었던 일을 꺼낸다.

  “숍 얘기 그만하고, 연희가 쏜다니까 고기나 실컷 먹자.”

  노선생 언니가 말을 가로챈다.

  “아니, 얼굴 다 뜯어고치고 수영이다, 헬스다, 마사지다, 돈 있는 놈 만나 누리고 살면 우리같이 없는 애들, 자기를 위해 있는 기 없는 기 다 쏟아내면 좀 안쓰럽게 봐주면 어디가 덧나냔 말이야. 마사지가 뭐 대학 나와야 하는 직업이야? 안 그래?”

  “거품 물지 마. 위만 보고 사는 사람이 어디 분당 사모님뿐이니.”

  수미 언니도, 노선생 언니도 일이 힘든 것보다는 대학 나오지 못한 것에 자존심을 구겼나보다.

  나는 스파나 테라피 사업이 선망을 받고 있고, 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아카데미가 곳곳에서 성행을 하고 있다며 착실히 기술을 익히고 성실히 일하면 자기 숍도 열 수 있다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지금의 직업을 선택한 것이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마냥 좋았다. 든든한 후원이 되지 못한 집안 배경으로 책상머리에 앉아 공부를 이어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엄마에게 수입이 떨어진지 오래되었다. 아니 손 모델로 살아온 시간보다 아직 자신의 손이 쓸만하다며 만나주지도 않는 감독이다 기획사 실장이다를 쫓아 다니는 목주름이 짙은 엄마를 부양해야 했다.

  “언니, 기억나? 왜 몇 년 전에 관리 받으러 다니던 여자.”

  “누구?”

  “젊었을 때 자기가 연예인이었다고 출연했던 드라마 몇 개 대길래 다운받아 봤는데 순 뻥이었잖아. 그리고 그때는 모델한다고 어찌나 몸을 애지중지 하던지. 꼴불견도 그런 꼴이 없었지.”

  “아, 그 여자.”

  “그래 그 여자. 기억나지? 멍들면 안 된다고 프로답게 해라. 얼굴에 뾰루지 날 지 모른다며 화장품 생산 날짜까지 확인하고,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며 손은 정성을 다해 달라. 주문도 어찌나 많던지 내가 자기 몸종인줄 알더라고. 서너 달 사람을 달달 볶더니 팁 한 장 안주고 코빼기도 안보이잖아. 벌써 꽤 됐지?”

  “너 나중에 원장님 소리 한번 들어보는 게 소원이라며 그때도 지금처럼 뒷다마나 깔래? 손님 얘기 그만하고 고기나 먹어.”

  나는 왠지 연예인, 단어만 들어도 얼굴이 뜨거워졌다. 엄마도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마사지숍으로 달려가곤 했다. 생필품을 쟁겨놓거나, 할머니에게 용돈을 먼저 드린다거나, 구멍난 딸애의 양말 같은 거 먼저 사놓는 일이 한번도 없었다.

  “뒷다마가 아니고, 내가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었는지 언니가 잘 알잖아. 손목이 시려 파스 좀 바르면 냄새 난다고 자존심 팍팍 긁으며 관리사 바꾸라고 난리난리 그런 난리, 어휴 내가 그때 기 빠지고 약 오른 거 생각하면 나도 빨리 개인 숍 차려서 나가야 하는데.”

  “그러게, 창업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언니들도 나와 같이 나무토막 같은 손으로 일을 했고, 자신들의 숍을 열고 싶어 했다. 또 스스로의 인생을 누군가에게 빚지지 않고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삼겹살을 집으러 불판 위로 모아진 우리의 손은 그야말로 못난이 삼형제였다. 언니들과 배를 채우고 있는데 할머니가 일하는 식당에서 전화가 왔다.

  “연희니? 니 엄마는 집에 없니? 왜 전화를 안 받아. 너 지금 어디야? 빨리 식당으로 와라.”

  여사장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 왜 이렇게 굼떠? 어디 아퍼?”

  내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넋나간 사람처럼 주방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여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님이 값을 치르고 나간 뒤 쪼르르 주방으로 달려왔다. 할머니가 펄펄 나는 기운으로 일을 할 때는 언니, 언니 하며 박카스다, 피로회복제를 먹이곤 했다. 그게 뭐 진정 할머니의 피로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구관이 명관이라고 종업원이 자주 바뀌는 게 달갑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오래 있어줘도 문제다. 최소 인원만 되면 4대 보험이며, 퇴직금을 챙겨주려면 여간 아까운 것이 아니다. 그저 종업원도 적당히 있다, 적당히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 여사장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직 적당히 사라져 줄 때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어느 한 직장에서 일 년이고 이 년이고 진득하게 있다 퇴직금까지 받아 나온 적도 없다. 할머니 퇴직금이 쌓여갈 즈음 되면 식당이 문을 닫거나, 근력이 떨어져 일을 못할 때가 더 많았다. 왜소한 체구에서 나올 근력도 없었지만, 엄마하고의 전쟁은 할머니를 더욱 기력 없게 했다.

  “내 팔자에 아플 날이 어딨어! 망할 놈의 몸뚱어리 하루하루 이어가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연희 엄마가 또 속 썩여?”

  집안 속사정까지 다 터놓고 지낸 사이건만 할머니는 그래도 남들이 엄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질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걔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속을 썩여.”

  할머니는 버럭 할 정도도 아닌데 괜히 뭐 낀 놈이 성낸다고 목청을 높였다.

  “언니가 힘 빠질 때가 연희엄마 말고 뭐가 있어? 빚이 있어? 고주망태 서방이 있어?”

  여사장은 아예 할머니를 깔아뭉갤 태세다.

  “괜찮다는데 왜 자꾸 입방아야.”

  여사장은 입을 삐죽대며 자양강장제와 피로회복제 한 알을 들고와 할머니에게 쑥 내밀고는 저녁 매상 좀 올려보자고 채근했다.

  할머니는 접시 한 개도 닦아 낼 수 없을 것 같다면서 양쪽 손목을 주무르다 힘이 빠지는지 자꾸 푹푹 주저앉았다.

  “내 등골 다 빼먹은 년. 오늘 니년 장삿날인 줄 알아라. 나쁜 년, 못된 년.”

  할머니는 끝내 저녁 장사를 하지 못하고 식당을 나섰다.

  “파출부라도 구하면 가야지. 그렇게 가면 나는 어떡해. 가끔 저러는데 내가 미친다니까? 이참에 아예 그만둬, 그럼. 아주 그만두라고. 사람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아. 시장에 나가봐. 그깟 설거지 할 사람은 천지라고. 조선족도 많고, 요즘은 동남아에서 젊은 아가씨들도 많이 들어와. 월급은 언니 반만 줘도 된다고.”

  식당문을 열고 나가는 할머니의 등뒤에 대고 여사장은 할소리 안할 소리를 모두 쏟아냈다.

  “나쁜 년, 내가 어디 설거지만 해. 찬모에, 써빙에, 늙수레한 손님들 술 접대까지. 내 등골 빼먹는 년은 딸년이 아니고 니년이 더해.”

  할머니는 무거운 다리를 한 발 한 발 디디면서 여사장 앞에서는 하지 못한 말들을 뱉어냈다.

  “아휴, 언니! 얘기나 하고 가.”

  여사장의 목소리가 식당 골목에서 허공으로 내달려 할머니의 뒷통수에 가 꽂혔다. 나는 할머니를 부축하며 걸었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 몸을 뉘었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를 기다리던 마음도 잠시 시계 바늘이 열두 자리에 꽂힐 때까지 할머니는 눈도 뜨지 못했다.

  늦은 시간까지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돌아오는 할머니 손목에도 항상 파스가 붙어 있었지만 엄마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욱하는 성격이 있어 병세가 깊어가는 자신의 딸을 잘 보듬어 주다가도 불현듯 악다구니를 쓰곤 했다. 엄마하고 할머니의 침묵의 시간은 오래지 않아 유리가 깨지고 천정이 울리는 싸움으로 끝이 났다.

  “니년 손은 무슨 왕비마마 손이냐! 처먹은 그릇은 곰팡이가 앉도록 싱크대에 처 박혀 있는데. 설거지 좀 해놓지.”

  “지원은 못해줄 망정 망치지는 말아야지.”

  어제도 현관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벌써 파이팅이 한참 진행되었고, 엄마 손에는 계란 팩이 발라져 있었다.

  “이 손 좀 봐라. 니년 먹여 살리느라 마를 날이 없는 니 에미 손에도 그 계란 팩인지, 녹차 팩인지 붙여주면 썩어 문드러지냐? 지년 손이 최곤지 알지. 아휴 속 터져. 내 속으로 낳았지만 나이 들어도 어쩜 그렇게 철들 줄을 모르는지, 쯧쯧!.”

  할머니의 악다구니는 하루도 건너뛰지 않았다.

  “해준다고 하면 집어치우라며!”

  엄마의 목소리도 할머니 머리 꼭대기로 올라갔다.

  할머니는 더 지껄여 봐야 입만 아프다며 온종일 엄마가 먹고 넣어둔 씽크대로 가 덜커덕덜커덕 설거지를 했다.

  그제서야 현관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발견한 엄마는 잘 만났다 싶은 얼굴이었다.

  “연희, 너. 일 끝난 지가 언젠데 이제 오니?”

  그날 밤 할머니는 밤새도록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엄마는 다음날 손에 바를 흑설탕과 꿀을 일대일 비율로 섞어 배합하고, 계란을 노른자와 흰자로 분류해 수분용, 탄력용으로 나눠 냉장고에 넣어 놓으라고 내게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전화기 앞에 턱을 괴고 앉아 밤을 샜다.

  ‘할머니, 혹시 아빠 어디 있는지 알아?’

  입안에서는 소리되어 나오지 못하는 물음들이 빙빙 돌았다.

  “무슨 할 말 있어?”

  “할 말은 무슨…….”

  나는 할머니 손을 잡았다. 온기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굵은 힘줄이 툭 불거져 나온, 뻣뻣하고 까칠한 가죽만 남은, 따뜻한 피와 살은 육십 줄 인생에 다 내어 준, 폭삭 주저앉을 것만 같은 빈 몸뚱어리의 할머니에게 아빠의 정보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태양은 뜨는가 보다. 밤새 끙끙 앓던 할머니가 이불을 툭툭 털어내고 마른 수건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간다. 남들은 그 나이가 되면 오줌을 질질 지린다는 데 할머니는 몇 분을 변기에 앉아 있어도 쉬 오줌보가 터지지 않는다. 얼굴에는 괴로운 표정이 역력하다. 그렇게 몇 번 젖 먹던 힘까지 주고서야 가는 줄기가 졸졸졸 흐른다.

  “망할 놈의 몸뚱어리. 망할 놈의 몸뚱어리. 이년아 인나서 아침 좀 못 안치냐?”

  엄마는 신경질 적으로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성성한 머리 감을 것도 없는데 할머니는 샴푸 통을 네 번이나 펌프질 해 오래도록 머리를 감는다.

  “숱도 없으면서 샴푸는 왜 그리 헤프게 써.”

  엄마는 머리 감는 할머니 모습을 보고는 삐죽거린다.

  “찢어진 입이라고. 잔소리 말고 머리나 헹궈 봐. 오늘따라 손목이 영 못쓰겠네.”

  “손에 샴푸 묻으면 거칠어져서 일하는데 지장 있는 거 알면서. 감독님이 곧 전화한다고 했단 말이야.”

  “무슨 지랄 같은 소리야! 정신 좀 차렷! 집구석에 틀어박힌 지가 언제야?”

  “그래도 내가 엄마 돈까지 먹지 않는 게 다행이지!”

  “아휴! 내 팔자에 무슨 딸년 호강 받겠다고. 헛나이 먹었지, 헛나이 먹었어. 에미가 돼서 자식 년이 힘들게 일해서 샵인지 숍인지 열라고 고생하는데 보탬이 될 생각은 안하고 젊으나 늙으나 손만 애지중지니. 내가 죽어야 이꼴 저꼴을 안보지…….”

  엄마는 다시 삐쳐서 방으로 들어간다.

  할머니는 마른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주방으로 가 쌀을 씻어 안치고, 미역을 꺼내 물에 불린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주름진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펴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립스틱을 바른다.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털어 말리고 브러쉬로 컬을 만든다. 푹 꺼진 볼을 감추기라도 하듯 핑크빛 페이스 칼라로 볼터치를 한다. 거울 속의 할머니는 곱상하지도, 자상하지도, 우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철들지 않고, 날로 정신 줄 놓는 딸과 손녀를 둔, 손목이 매일 같이 붓고, 몸은 점점 야위어가는, 딸에게 퍼부을 줄 아는 말은 이년, 지년, 니년이 전부고 언제나 당당한 검버섯이 피어나는 육십줄의 내 할머니다.

  “할머니, 오늘 하루 쉬어.”

  “쉬기는 하루라도 살아 있을 때 벌어야지. 니 에미…아니다. 너도 얼른 준비해.”

  지글지글 들기름에 볶아지는 미역 냄새가 고소하다. 냄비 가득 물을 붓고 끓이면 할머니표 시원한 미역국이 완성된다. 밥통에서는 그새 밥 뜸 연기가 솔솔 올라온다.

  엄마 방에서는 기척이 없다. 귀빠진 날이건 말건 할머니 목청이 두 옥타브쯤 올라가고 난 뒤에야 슬그머니 나올 참인가 보다. 아니다. 엄마는 할머니 입에서 욕설이 미역국솥 안으로 가득 떨어져야 일어날 모양이다.

  “정말, 너 정말 안 나올 거야? 같이 밥 한 술 떠야 나가지.”

  “그냥, 연희하고 먹고 가. 우리가 언제 매일 같이 앉아서 밥 먹었어?”

  아침부터 예사롭지 않다. 약이 바짝 오른 표정이 역력한 걸 보니 할머니도 꺾일 기세는 아니다.

  “어휴, 내 팔자야. 딸년 하나 있는 게 속은 있는 대로 썩이고. 그런 년 먹인다고 미역국을 끓이는 년이나, 어휴 내 팔자야. 식당에 나가 설거지를 하던 건물 청소를 하던 무슨 일이라도 좀 해봐, 이년아.”

  말하다보니 할머니는 약이 더 오르는 모양이었다.

  “꼬라지하고는. 니년 머리통에는 도대체 무슨 똥이 그렇게 가득 찬 거야. 돈도 못 벌면서 손에다 쳐 바르는 것은 다 어디서 나는 겨? 그것도 모자라 먹어도 시원찮을 판에 요플레는 왜 손에다 바르고 지랄이야, 지랄이. 응?”

  엄마는 요플레를 잔뜩 바르고 랩으로 칭칭 감은 손을 잽싸게 뒤로 뺀다.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 악다구니에 대꾸 하나 없이 그새 손 관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행동을 놓칠 할머니가 아니다.

  “오늘 아주 니년 손목을 분질러 버리고 말 꺼야. 손목을 똑 분질러야 내가 호강을 하지.”

  할머니는 주방에서 식칼을 찾는 척 싱크대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그러면서 폴짝폴짝 뛰고 있는 엄마의 감춰진 손을 흘겨본다.

  그사이 엄마는 손에서 천과 랩을 걷어내고 할머니의 손을 잡는다.

  “엄마, 미안, 미안. 내가 오늘 용돈 줄까? 귀빠진 날이라고 미역국도 끓여놓고 애보는 앞에서 개 잡듯 잡으면 안 되지. 그럼 엄마도 아니지. 히히히.”

  엄마는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를 떨며 할머니를 꼭 껴안고 볼에다 연신 입을 맞춘다.

  “이거 놔, 이 나쁜 년아.”

 

  나는 우울하고 외롭다. 그러나 외로워서 우울한지, 우울해서 외로운지 알 수 없다. 라벤더 향을 피워보지만 효과가 없다. 정신까지 몽롱하다. 살아 있는 동안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한다는 할머니가 쓰러졌다. 엄마는 자신의 손이 더 이상 쓸모없어진 것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우울증이 신경증으로 변해 병원 신세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손에 물 묻히는 것을 싫어해 밥도 지어 먹지 않았고 빵과 우유 등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자리보전하고 누운 할머니 대신 된장국도 끓여주고, 밑반찬도 해놓고, 밥도 지어 놓고 집을 나선다.

  여전히 엄마의 하루는 손을 스팀 쬐어 주는 일로 시작되어, 오후 나절에는 목욕탕에 가 요플레를 바르고, 목욕관리사에게 몸뚱어리를 맡기고 돌아와 다시 계란 팩을 붙이는 것으로 끝난다. 지갑에 돈이 떨어지면 전화기에 대고 악다구니를 퍼붓고는 끊는다.

  “너는 엄마가 죽는지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이 나쁜 년아. 일 끝났으면 곧장 집으로 들어올 것이지 어디서 뭐하는데 아직 안 들어와! 당장 들어와. 들어오기만 하면 그놈의 손모가지를 똑 분질러 버릴 거야. 들어올 때 계란 한판하고 요플레도 넉넉히 사오고.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자리보전하고 누운 할머니에게도 팩을 붙이려면 계란이 많이 든다고 엄마는 늘 하소연이다. 손목이 시큰거려 버스에 오르기 전에 물파스를 발라 준다.

  내일은 숍이 정기 휴일이다. 엄마를 데리고 마사지 숍으로 가야겠다. 눈치 볼 원장도, 언니들도 없을 거다. 숙면에 좋은 아로마 향을 피워 엄마를 쉬게 하고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머리, 어깨, 팔, 다리를 풀어준다. 복부에는 열을 가한 스톤을 올려놓아 아랫배를 따뜻하게 한다. 석고 팩을 만들어 얼굴과 손에 덧입혀 준다. 건강하고 윤기 나는 손은 온데간데없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이지만 표면에 주름하나 잡히지 않게 미장마무리를 한다. 굳어 갈수록 더 무거워지는 석고를 떼 내고 나면 윤기 나고, 탄력 있어 보이는 자신의 손을 보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는다면 나는 슬프지 않을 것이다. 석고 팩을 뒤집어쓰고 눈만 보이는 엄마의 병든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순진하면서, 천진하기까지 한 눈매. 악다구니를 쏟아낼 때의 독기 품은 눈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연희 하스타’를 열고 싶지만 엄감생심 길이 멀다. 남은 석고 팩을 내 손에도 바른 다음 엄마가 누운 침대에 들어가 엄마의 팔을 베고 깜빡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너, 셋팅 안하고 뭐하고 있니? 오늘 예약 손님이 얼마나 많은데 딴 생각이야!”

  손님 맞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수미 언니가 채근을 한다.

  손목이 시리고 욱신거린다.

 ‘엄마, 엄만 나한테 미안한 거 없어?’

 


조미녀
1971년 강원도 인제 출생.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중앙일보NIE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장안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음.

 

* 《쿨투라》 2013년 봄호(통권 2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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