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제16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2.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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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신인상 당선작 발표

영 화 평 론 부 문
우로보로스는 미치지 않았다 이지혜

소 설 부 문
장우산이 드리운 주일 김쿠만

심 사 위 원
유성호(문학평론가), 김시무(영화평론가), 강수미(미술비평가), 김민정(드라마비평가)

 

심사평

장르에 대한 이해력, 경험적 구체의 형상화 과정, 탄탄한 문체 미학을 보여준 동시에 참신성과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쿨투라》에서 2022년도 신인상 공모에 영화평론가 한 분과 소설가 한 분을 신인으로 내보낸다. 특별히 이번에는 장르와 세대를 넘어 많은 분들이 투고를 해오셨는데, 이는 그동안 《쿨투라》가 쌓아온 오랜 시간과 새로운 면모에 대한 기대가 크게 작용했을 듯싶다. 그리고 이러한 인적 발굴과 축적 과정이 《쿨투라》의 중요 지표를 하나하나 만들어 가리라 기대해본다. 응모작들은 내용과 필치에서 개성적 성취를 보인 경우가 많았는데 그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이지혜 씨의 영화평론 「우로보로스는 미치지 않았다」와 김쿠만 씨의 소설 「장우산이 드리운 주일」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이 작품들이 장르에 대한 이해력, 경험적 구체의 형상화 과정, 탄탄한 문체 미학을 보여준 동시에 참신성과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계 영화계를 뜨겁게 달군 영화 한 편이 있었다. 다름아닌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 랜드〉(2020)가 바로 그것. 각종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휩쓴 만큼 이 영화에 대한 비평적 담론도 풍성했다. 상기 작품을 다룬 「우로보로스는 미치지 않았다」라는 이지혜 씨의 글도 그중 한편이지만, 작품을 해석하는 시각이 매우 독특하고 구체적이다. 평자는 점, 선, 면이라는 건축학적 개념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 핵심 화두는 우로보로스uroboros다. 

  이 영화는 노매드nomad라 불리는 유랑민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펀의 말에 따라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houseless인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평자의 접근방식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예컨대 점은 집이다. 노매드들에게도 ‘점’이 있는데 바로 캠핑카다. 점과 점의 사이를 이으면 선이 되고 집과 집의 사이를 이으면 거리가 된다. 노매드들은 자신의 캠핑카로 점을 찍고 다니면서 결국 선을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이 선은 직선이 아니라 원형圓形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마치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 우로보로스처럼. 나아가 선과 선으로 이루어진 원은 하나의 면을 가진다. 니체의 영원 회귀라고 할까. 영화에서 면은 장면으로 나타난다. 그 장면들은 시간의 축적으로 형성된다. 영화는 펀이 처음 출발했던 장면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녀가 떠나왔던 네바다 주 엠파이어다. 그리하여 종착지는 출발지가 된다. 허무를 안고 출발했던 펀이 생의 충만함을 안고 회귀를 한 셈이다. 그래서 평자는 이 영화에서 노매드는 미친 사람들이 아니no mad라는 화두를 읽어낸다.

  김쿠만 씨의 「장우산이 드리운 주일」은 ‘강우 기대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 남자와 주인공 ‘연우’의 농담과도 같은 조우(산책과 인터뷰와 뒷담화가 뒤섞여 있는)를 다루고 있다. ‘농담이란 건 석유처럼 언젠가 고갈될 거라 믿고 있는 무책임한 종말론자’인 주인공은 정신 건강에 탁월하기 때문에 자신의 종말을 마치 ‘존 레논’,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빈티지한 기표들처럼 곁에 두고 있다. 이때 농담은 ‘멈춤’의 언어다. 그런데 지금 ‘MZ세대’로 불리는 한국의 20·30대에게 멈춤은 단순한 도태가 아니라 ‘(사회에서) 지워짐’인 탓에, 그들은 중고등학생 시절에도 농담을 배우지 못하고 자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 대부분은 본의 아니게 멈추어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N포 세대’라는 용어가 생긴 건 오래 전 일이고 여기에 코로나 상황까지 겹치며 그들의 ‘움직임’, 즉 사회적 활동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연우는 멈추어 있는데 그 고통을 표현할 언어조차 없는 그들을 위해 한정된 농담을 석유처럼 끌어올리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단순히 사회로부터의 도피라고 얘기할 수 없는 것은, 그와 강우 기대증을 앓는 동료의 농담 같은 산책이 알기 쉬운 맛을 지니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문학은 사회의 바깥과 안에 겹쳐 있는 미세한 ‘사이’의 언어들을 다루어야 한다. 김쿠만 씨의 서사는 그 ‘사이’의 맛과 질감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그의 농담에서는 동시대의 어떤 작가들에게서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감칠맛이 느껴진다.

  두 분 모두 오래도록 습작 시간을 쌓아왔으리라 생각한다. 고유한 필력을 자산으로 삼으면서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들인 점도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작품을 써가는 역량과 가능성에 큰 기대를 보낸다. 《쿨투라》의 이러한 선택이 우리 영화평론과 소설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최종심에 올랐지만 아쉽게 탈락한 오수아 씨의 미술평론 「수잔 힐러, 〈목격자〉」, 남다혜 씨의 공연평론 「“샤먼으로의 ‘복귀’를 청하는 호소” : 육체적 파노라마의 웜홀을 건너, 다시 한번 ‘단독’자에서 ‘관계’자로의 존재 도약을 꾀하기 — 〈다녀와요, 다녀왔습니다〉」 에도 따뜻한 격려를 보낸다. 당선의 기쁨을 함께하지 못한 응모자 분들의 정진을 기원하면서 당선자들이 한 차원 높이 역량을 발휘해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당선소감

영화평론 부문 - 이지혜

  2019년 8월의 마지막 날, 나는 늦여름의 볕 아래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 내 앞에는 커다란 카메라를 든 지도교수님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서 계셨다. 지도교수님은 제자들의 사진을 몇 장씩 찍어주시며 “좋은 일이 있을 때 쓰자”라고 말씀하셨다. 현상을 하고 보니 마음에 꼭 들었다. 내가 이렇게 웃을수도 있구나 싶었다. 위의 사진은 그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이 사진이 꼭 내 영화 쓰기의 긍정적 시퀀스를 암시하는 트레일러 같았다.

  그러나 하나, 둘… 등단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만써야 되지 않을까 고민했다. 작년 오늘도 최종심에 올랐다가 떨어졌는데, 우연히 저 사진을 봤고 위경련이 났다. 웃고 있는 사진 속의 내가 좀 얄미웠다. 여기까지가 한계일까. 트레일러가 아니라 나쁜 결말을 알리는 스포일러였을까. 종암동사거리 길가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내가 투고를 했다가 또 떨어졌고 설상가상 아파서 못걷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 하나가 고군분투한 사연이 있으면 잘 되었을 때 더 강해 보이니까 계속해서 쓰라고 말해줬다.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집을 향해 걸었다. 생각해보니 스포일러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내게 영화란 엔딩크레딧이 멈춰야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맞아, 나는 스포일러 매니아였지. 영화를 곱씹고 뜯어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고군분투한 기록을 남긴다. 나는 오래 글을 썼고 잘 쓰지는 못했다. 잘 쓰지 못했지만 열심히 썼다. 열심히 쓰면 잘 쓰게 되는 걸까? 당선 전화를 받았어도 아직 모르겠다. 겸연쩍게도 내 글이 아직 덜익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글을 가만히 집어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그리고 《쿨투라》 덕분에 계속 써도 된다는 허락과 위무慰撫를 받았다. 

  사랑하는 가족, 존경하는 안숭범 교수님, 내게 아낌없는 가르침을 주신 경희대학교 교수님들과 문화콘텐츠전공 학우들, 친애하는 효케이션 멤버들과 전우 유희, 소현. 현재. 영화비평연구회에 함께 해주는 회원들, 내 고양이 용맹과 유가, 그리고 날 응원했고 응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부친다. 

 추신: 트레일러가 맞았다. 

 

소설 부문 - 김쿠만

  요 몇 년 동안 아무래도 당선 전화라는 단어는 내 인생에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신춘문예 당선 소설이나, 문예지 신인상 당선 소설을 볼 때마다 어쩐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곤 했다. 위화감의 끝은 내가 제대로 글을 갈기고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래도 계속 써내려갔다. 어쨌든. 나는 써야 했으니까. 그러니 결국 일이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두 번인가 세 번쯤. 소설을 그만두려고 했다. 

  그러나 새해에 금연을 결심한 사람들처럼 결국 나는 소설을 다시 피우고 있었다. 소설 쓰기가 이 정도로 위험하다. 당선 전화를—생각해보니 당선 전화는 아직 내 인생에 제대로 끼어들지 못했다, 충전 중이라 부재중 전화가 되고 말았다—받았을 때, 나는 이제 더 위험해지겠구나 싶었다.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내 필명의 근원은 두 영화감독이다. 한 명은 쿠엔틴 타란티노. 다른 한 명은 故 이만희. 허락도 없이 멋대로 그들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왔는데, 이젠 그들에게 적어도 한 문단 정도는 떳떳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내 소설을 언제나 재미없어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날 응원해주는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내 소설을 제일 먼저 봐주는 우리 뷔페 멤버들. 갑수 형, 운호 씨, 기현 씨, 혜영 씨, 선우 씨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게 희망이라는 실을 던져줬던 웹진 《던전》과 문예지 《에픽》에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수정 선배, 병훈 선배, 류진 씨, 그리고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종원 씨에게도 인사를 전해드려야 할 것 같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설에 대해 가르쳐주셨던 이장욱 선생님과 손정수 선생님. 그리고 멀리 박성원 선생님께도 감사를 전해드린다. 모두에게 포스가 함께하길. 마지막으로 제 작품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쿨투라》에도 감사드린다.

 

 


 

* 《쿨투라》 2022년 2월호(통권 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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