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쿨투라 신인상 음악평론 부문 당선작] 고뇌와 열정으로 탄생한 음악적 환희
[제14회 쿨투라 신인상 음악평론 부문 당선작] 고뇌와 열정으로 탄생한 음악적 환희
  • 김지영
  • 승인 2020.04.0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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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파바로티'와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를 중심으로

현 시대 최고의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음악은 즐거움을 준다. 심지어 장례식 음악조차 연주자에게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미소와 눈물을 함께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은 감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게 하고, 평상시에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며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한다. 자신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음악 장르는 모든 사람에게 다를 것이고, 감동을 받는 포인트도 다양할 것이다. 클래식 음악이 줄 수 있는 감정적인 경험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작곡가에 대한 존경과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연주자, 감상하며 받아들이는 관객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합쳐져 이뤄내는 감동은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감상하기 위해 전문가들처럼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의 서양 음악사에 대한 지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다만, 음악을 스스로 듣고자 하는 의지를 조금만 가지면 된다. 그런 면에서 음악 영화들은 쉽게 접근하게 한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파바로티〉(감독 론 하워드)와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감독 톰 볼프)는 최고의 성악가들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대중들에게 쉽게 소개하고 있다. 이 두 영화 모두 신화적인 성악가가 되기까지 삶의 과정을 구하기 어려운 자료들을 통해 스토리를 구성하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예술가로서 길을 가기 위해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 아쉬움을 고백하기도 하고, 정상의 자리에 섰을 때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화려함 뒤에 감쳐진 비하인드 스토리는 그들을 더욱 가깝게 느끼도록 한다. 거리감이 있는 클래식처럼 클래식 음악 영화는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두세기적 인물들을 만날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이다.

대중적 스타가 되기까지의 파바로티의 인생역전 – 다큐멘터리 영화 〈파바로티〉

ⓒ오드AUD

우리 시대의 최고의 테너는 단연코 파바로티라고 할 수 있다. 영화 〈파바로티〉는 그의 생애가 처음 영화화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어린 시절과 커리어를 하게 된 과정, 사랑, 삶, 그리고 생을 마무리하기까지 인생 여정을 파바로티 자신과 그가 사랑한 세 여인들, 딸, 음악가 동료들의 인터뷰를 통하여 여과 없이 드러낸다. 특히, 개봉 후 그의 최고의 파트너인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가 지난 9일 유명을 달리함으로써 두 사람의 호흡을 맞췄던 공연이 더욱 회자되고 있으며, 영화에도 공연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영화의 스토리에 맞추어 오페라 아리아들을 배경음악으로 선정함으로써 내용과 오페라 아리아가 서로 시너지효과를 가질 수 있었음은 론 하워드 감독의 탁월함이다. 최고의 음향기술을 도입하여 이제는 마주할 수 없는 거장의 음악을 실제 콘서트홀에 온 것과 같은 감동으로 감상할 수 있다.

파바로티는 1935년 이탈리아 모데나 태생으로 제빵사이면서 성가대원의 테너였던 아버지에게 목소리를 물려받았다. 그의 목소리에서 특별함을 느끼던 어머니의 격려로 노래공부를 하게 되고, 1961년 레죠 에밀리아 극장에서 오페라 〈라보엠La Boheme〉으로 데뷔한다. 1963년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 테너 쥬세페 디 스테파노 대신 공연한 〈라보엠〉이 성공을 거두게 되며 그의 화려한 커리어가 시작된다. 파바로티를 최고로 꼽는 것은 그의 발성적인 테크닉이다. ‘하이C’의 제왕이라 불릴 정도로 테너의 고음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석을 보여준다. 메트로폴리탄 극장을 포함한 세계 최고의 극장을 섭렵했을 뿐 아니라 최고의 음반 판매를 이뤄낸 성악가였다. 파바로티가 남다른 점은 대중의 공감을 얻기 위한 그의 노력이다. 매니저 허버트 브레슬린은 리사이틀, 요리 프로그램 출연, 공연의 TV 생중계 등 다양한 아이디어로 그를 대중에게 소개했다. 그는 딸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자 모든 공연을 취소하고 간호할 정도로 가족에 헌신적이었다. 하지만,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만난 제자이며 비서인 메를린 르네와 연인 관계가 된다. 그녀의 인터뷰를 통해 본 파바로티는 무대 뒤의 그녀를 끌어내어 라보엠 이중창을 함께 부르고, 기획자의 부모를 대기실로 불러 아리아를 불러주는 등 함께 있는 사람들을 친근하고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파바로티의 인간적인 매력은 그의 노래를 통해서도 관객에게 전해진다.

헝가리의 기획자 티보 루다스는 중국공연, 쓰리 테너 공연 등으로 그의 활동 무대를 더욱 넓힌다. 백혈병 투병을 마친 테너 호세 카레라스의 컴백 무대를 파바로티, 도밍고가 함께 하여 1990년 월드컵 개막 전날 주빈 메타의 지휘로 로마의 야외무대에 선다. 엄청 난 성공을 거둔 ‘쓰리 테너’는 이렇게 탄생 되었고, 루다스는 이것을 세계로 확장시키며, 매 월드컵 전날 공연하였다. 라이벌의 위치에 있는 세계적 3대 테너가 함께 공연하게 된 배경도 영화에서 보여준다.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클래식 음악의 진입장벽을 낮추며, 클래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 이처럼 폭발적으로 사랑받은 클래식 공연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폭우가 쏟아졌던 런던의 야외공연장에서의 공연도 특별하다. 당시 모든 관객은 파바로티를 보기 위하여 우산을 접는다. 참석한 다이애나 왕세자비도 이에 동참하며 우정을 맺게 된다. 이후 의기투합하여 적십자를 위한 공연을 하게 되면서 파바로티는 자선에 눈을 돌린다. 골수 이식센터를 짓기도 하고, 고향 모데나에서 ‘파바로티와 친구들’이란 타이틀로 매년 자선공연을 열기도 했다. 세계적인 록스타와 밴드를 초대했고, 보노와 함께 ‘미스 사라예보’를 발표하는 등 보스니아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을 할 뿐 아니라 직접 찾아가서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숨겨놓았던 연인 니콜레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자,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그의 평판은 바닥에 떨어진다. 그는 오페라 홀에서 니콜레타와 결혼식을 올리고, 딸을 출산한다. 40여 회의 세계 투어에서는 그의 전성기 때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병상에서 “오페라를 친근하게 만든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 인간적으로는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친구이고 싶었지만, 생각만큼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후회어리게 말했다. 영화는 그가 2007년 9월 6일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시그니쳐 아리아인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들려주며 끝을 맺는다.

ⓒ오드 AUD
ⓒ오드 AUD

영화 속 첫 음악은 파바로티가 오랜 시간 문을 열지 못한 아마존의 한 극장에 도착하여 “나는 파바로티요”라며 〈작은 입술에게A Vucchella〉 라는 토스티의 가곡이다. 나폴리 칸초네로 금방이라도 사랑에 빠질듯한 경쾌한 이탈리아인의 감성이 가득한 곡이다. 그의 태생적인 즉흥성과 유쾌함을 설명하는 듯하다. 레죠 에밀리아 극장의 데뷔 장면에 나오는 음악은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La Boheme〉 아리아 〈그대의 찬 손Che gelida manina〉이다. 이 곡은 후미에 나오는 〈희망La Speranza〉을 표현하는 ‘하이 C’를 테너가 얼마나 의미 있게 노래하는가에 따라 오페라의 성패가 좌우된다. 오페라의 주인공 로돌포가 시를 쓰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내면은 희망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관객이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파바로티와 한 고향에서 태어나 같은 유모에게 자란 친구인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가 여주인공 미미 역으로 함께한 녹음은 대표적인 명반으로 꼽힌다.

다음 곡인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의 〈저 타오르는 불길을 보라Di quella pira〉는 한 집시여인이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루나 백작 가에 저지르는 복수극이다. 집시인 아주체나의 손에 키워진 주인공 만리코는 그들이 형제인 줄 모른 채 루나 백작과 연적이 된다. 만리코는 루나 백작에게 잡혀 있는 아주체나를 구하기 위해 전의를 불태우는 강렬한 아리아를 부른다. 곡의 후미에 나오는 〈전투준비를 하라all’armi〉 역시 ‘하이 C’로 끝난다. 파바로티의 특유의 음색으로 시원하게 뻗어내는 극고음은 비교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방대한 스케일의 테너였다. 스스로를 농부라고도 하는 파바로티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의 주인공 네모리노 역할도 즐겨했다. 네모리노는 순진하고 유쾌한 캐릭터로 파바로티의 꾸밈없는 성격과 잘 조화를 이룬다. 베를린 극장에서의 공연은 167회의 기록적인 커튼콜을 받아 기네스북에 오른다.

또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의 〈이 여자나 저 여자나Questa o Quella〉,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이 배경으로 흐르며 파바로티의 여성 편력 스토리가 진행된다. 제자인 메를린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곱추인 궁정 광대 리골레토는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의 눈을 피하여 딸 질다를 키우지만, 자신의 딸도 공작에게 농락당한 것을 알게 된다. 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지만, 공작을 사랑하게 된 질다가 그를 대신하여 죽는 비극적인 내용이다. 파바로티의 리골레토는 장 피에르 폰넬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연인이었던 메를린이 떠나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는 기간에 사용된 음악은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Pagliacci〉의 〈옷을 입어라, 광대여vesti la Giubba〉이다. 떠돌이 극단 배우인 주인공 카니오는 아내 넷다와 마을 청년 실비오가 사랑에 빠진 것을 알게 돼 아내의 배신에 울고 있지만, 광대의 옷을 입고 웃어야 하는 비극적인 곡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공연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파바로티의 개인적 번민과 겹쳐지는 장면이었다.

왕년의 라이벌인 도밍고의 지휘로 함께 공연했던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Tosca〉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죽어야 하는 비탄을 노래하는 카바라도시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e Luce van le stelle〉은 췌장암 선고를 받는 파바로티의 죽음을 예고하는 역할을 한다. 그의 장례식에는 ‘나를 벌하지 마시고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가사의 스트라델라의 가곡인 〈교회의 아리아Aria di chiesa〉가 흐른다.

영화는 전성기 시절 그가 부른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영상으로 끝을 맺는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에 나오는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이다. 중국 황제의 딸 투란도트의 세 가지 수수께끼를 맞추어 그녀와 결혼할 수 있게 되지만, 공주가 결혼을 거부하자 내일 아침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면 자신을 죽여도 좋다며 그녀에게 기회를 준다. 곡의 마지막 가사는 “승리하리라vincero”이다.

파바로티가 이뤄낸 승리는 무엇일까? 사망할 때까지 그의 앨범은 1억장 이상 판매되었고, 그가 설립한 콩쿨로 수많은 가수가 배출되고 있으며, 보스니아, 과테말라, 코소보, 티베트 등 각지에 구호센터를 설립했다는 자막을 통해 사후에도 그의 선행이 계속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를 통하여 친숙해진 노래들은 낯선 클래식의 범주를 넘어서서 대중에게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음악으로 세상을 품고자 한 그의 열정적인 의지를 관객에게 각인시켜준다.

마리아 칼라스의 고통과 성공의 쌍곡선 –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아 칼라스:세기의 디바〉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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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톰 볼프는 우연히 그녀의 음반을 듣게 되고, 이를 계기로 3년간 자료를 모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In her own words’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영화는 칼라스의 인터뷰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공연 영상들이 교차 되며 진행된다. 예술가 스스로가 전하는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이 이전에 만들어진 그녀의 다큐멘터리와 비교되는 점으로 그녀가 디바인 칼라스의 삶과 여인 마리아의 삶을 함께 살아내며 겪었던 갈등과 어려움을 더 가깝게 느끼게 했다. 그리스 국립음악원에 13세에 입학하고, 어머니의 야심으로 음악공부에만 매진하는 어린 시절을 보내며 많은 레퍼토리를 가진 성악가로 일찍 데뷔하게 된다. 선생님인 엘비라 데 이달고의 인터뷰를 통하여 그녀가 노력형 천재임을 알 수 있었다. 한창 전성기를 달리던 그녀에게 불행이 닥친다. 로마극장에서 오페라 〈노르마Norma〉의 리허설을 마친 후 기관지염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다. 전 석 매진에 대통령도 참석했던 공연은 1막 후 진행되지 못한다. 이후로 그녀는 여러 가지 오해를 받게 되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과도 계약이 끊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된다. 후원자이며 매니저 역할을 했던 남편 메네기니와도 이혼하고, 사랑에 빠진 선박왕 오나시스의 권유로 그녀의 예술 활동은 멈추게 된다.

그녀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극장에 오페라 〈토스카Tosca〉로 7년 만에 돌아오게 되는데, 관객들은 하루 전날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이후에도 활동을 이어가지만 극심한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려 공연을 끝내지 못하기도 한다. 오나시스와의 결혼을 꿈꾸었지만, 그는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하고, 그 사실조차 신문을 통하여 알게 함으로써 칼라스는 깊은 좌절에 빠지게 된다. 다시 재기를 꿈꾸며 세계 각지에서 컴백 투어를 연다. “대중에게 무엇이든 보답해야죠. 전설이 아니고 평범한 인간입니다. 대중이 사랑한 만큼 더 잘 하고 싶어요”라고 말할 만큼 그녀는 예술가로서 받는 사랑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아는 겸손한 가수였다. 오나시스는 결혼 후에도 칼라스를 찾아오고, 그녀는 그를 친구 이상의 미련으로 받아들인다. 1975년 오나시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1977년 9월 16일 칼라스는 파리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난다. 오페라계의 전설과 같은 존재였지만, 한 사람의 사랑을 얻지는 못했던 칼라스. 인터뷰에 자주 말하듯이 평범한 여인으로서 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운명으로 다가온 예술가로서의 인생을 선택해야 했다. 콘서트홀에 온 것처럼 몰입하여 노래하는 모든 공연장면에 저절로 박수가 보내졌다. 유명세로 치러야 했던 오해, 가릴 수 없는 사생활의 폭로로 일상의 삶을 살아내기가 어려웠으리라. 칼라스의 탁월한 곡 해석과 연기력 안에는 울고 있는 여인 마리아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영화 속에서 들을 수 있는 칼라스의 첫 노래는 나비부인의 결혼식 장면이다. ‘바다와 육지에 봄바람이 가득하고’(Quanto cielo! Quanto mar!) ‘나는 사랑의 부름을 받아서 왔어요’(io son venuta)라는 가사는 돌려받지 못할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칼라스의 오나시스를 향한 비극적인 사랑을 예고하고 있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Madam Butterfly〉은 나가사키에 주둔하는 미국 해군 대위 핀커톤과 게이샤 초초상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리는 오페라이다. 그녀는 약혼녀가 있는 줄 모른 채 핀커톤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의 아이를 홀로 키우며 미국으로 떠난 핀커톤을 기다지만, 핀커톤은 부인과 함께 돌아온다. 아이를 보내고, 초초상은 자결한다.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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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의 오페라 〈시칠리 섬의 저녁기도I Vespri Siciliani〉의 〈친애하는 벗들이여Merce, dilette amiche〉는 그녀가 한참 커리어를 시작하는 장면들에서 흐른다. 주인공 엘레나가 자신의 결혼식 날 참석한 모두에게 감사하며 부르는 아리아로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다. 빠른 악절passage과 스타카토, 반음계의 진행 등으로 조금 가벼운 소프라노에게 어울리지만, 그녀에게 파트의 경계 따위는 문제 되지 않았다. 빠른 악절을 소화하는 테크닉이 필요한 콜로라투라부터 서정적인 리릭 소프라노, 비극에 어울리는 드라마틱 소프라노까지 모든 영역을 소화해냈다.

그녀는 본래 거구였지만,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을 본 후 다이어트에 성공하여 평생 아름다운 모습으로 노래했다. 특히 파리 공연에서 칼라스의 시그니쳐 아리아라고 할 수 있는 곡인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Norma〉의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를 부를 때는 실제 여제와 같은 카리스마와 성스러움마저 느껴지게 한다. 로마의 총독 폴리오네는 드루이드교의 여제세장인 노르마를 사랑한다. 한때 변심하여 아달지자에게 마음을 주지만 노르마의 사랑을 깨닫고 함께 죽음을 택하는 내용이다. 칼라스는 노르마를 80회나 공연했다. 이 역은 연인 오나시스에게 버림받았던 칼라스와 동일시하여 회자되기도 한다. ‘정결한 여신이여’는 칼라스 이후의 모든 소프라노가 함부로 부를 수 없는 칼라스만의 아리아가 되었다. 인터뷰에서 말하듯 그녀는 18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인 벨칸토 시대의 레퍼토리를 가장 사랑하였다. 이 시대의 작품은 성악가의 화려한 테크닉이 우선시 되었기 때문에, 성악가들은 작곡된 음악을 넘어서 자유롭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드라마성에 대한 요구는 떨어지게 됐다. 연기력과 테크닉을 모두 갖춘 칼라스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벨칸토 오페라들도 드라마적인 생명력을 갖게 되었다. 그 대표적 작품이 ‘노르마’이다. 안타깝게도 로마극장에서 기관지염으로 실패하여 평생 트라우마가 된 작품도 ‘노르마’였다.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이 한 번의 공연 실패로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고통스러운 시기의 칼라스의 삶을 구현할 때 쓰인 음악은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의 〈안녕, 지난날이여Addio, del passato〉다. 사랑의 도피를 하던 창녀 비올레타와 귀족 청년 알프레도는 알프레도 아버지의 간청으로 헤어지고, 그녀가 홀로 병들어서 부르는 절절한 아리아이다. 후에 알프레도가 돌아오지만 때는 늦어 비올레타는 죽음을 맞이한다. 칼라스는 스스로를 희극에 맞지 않는 배우라고 말하고 있다. 로마의 공연 실패 이후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진 그녀는 위험을 감수하지 못한다.

인물에 자신을 몰입하여 인생의 고통을 투영시켜 온 칼라스의 공연은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Tosca〉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카바라도시는 정치범을 숨겨준 죄로 그의 연인인 가수 토스카를 짝사랑하는 경찰 스카르피아에게 잡힌다. 토스카는 스카르피아에게 자신의 몸을 바치리라 맹세하고, 사면장을 받아낸 후 그를 칼로 찔러 죽인다. 카바라도시의 사형을 멈추게 하려고 사면장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위조였고 카바라도시는 죽는다. 토스카도 성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칼라스의 탁월한 면은 오페라 안의 드라마를 찾아내어 노래로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능력이었다. 토스카를 보러온 한 관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흡인력 있는 연기와 모든 가사와 쉼표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극찬한다. 오페라 가수에게 역할에 어울리는 외모와 전문적인 연기가 요구된 것도 칼라스의 탓이라 할 수 있겠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를 부르고, 스카르피아를 죽인 후 그 옆에 촛대를 놓고 사라지는 서늘한 칼라스의 연기장면은 유명하다.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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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시스와 재클린 케네디의 결혼에 좌절했던 칼라스는 성공적인 컴백 투어를 마치지만, 오나시스의 병환 소식에 다시 무너진다. 죠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쉐니에Andrea Chenier〉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가 들려온다. 백작의 딸 막달레나와 청년 쉐니에는 사랑에 빠진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쉐니에는 파리 혁명에 가담하고, 막달레나를 짝사랑하던 하인 제라드는 정부의 간부가 된다. 제라드는 쉐니에를 잡아서 막달레나를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쉐니에는 사형에 처하게 되고, 막달레나는 영원한 사랑을 위해 함께 죽음을 택한다. 이 곡은 영화 필라델피아에서 칼라스의 목소리로 들려진다. 사실 칼라스의 목소리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과는 거리가 있다. 비오는 날 들으면 어울릴듯한 암울함과 카리스마를 지닌 날카로운 그녀의 목소리는 비극적인 오페라의 극적인 면을 완벽하게 구현하도록 했다.

영화는 푸치니의 오페라 〈쟌니 스키키Gianni Schicchi〉의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no caro〉영상으로 끝을 맺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리누치오와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면 베키오 다리에 가서 뛰어내리겠다고 아버지를 협박하는 라우레타의 아리아이다. 어쩌면 칼라스가 진정 원했던 것은 한 사람의 사랑을 받는 소박한 여인의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다지 비극적이지 않은 서정적인 아리아도 그녀의 인생과 어우러지면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이 된다.

음악이 대중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음악은 일상을 넘어서는 극도의 아름다움을 주며 우리의 감정과 인생을 환기시킨다. 많은 예술가가 있지만, 그 힘을 극대화하여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 있는 예술가는 극소수이다. 그들의 삶을 예술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사랑받은 두 성악가의 인생이 왜 영화화되었을까? 매니아층의 전유물로 남아있기엔 안타까운 클래식 음악의 정화력 때문일 것이다. 독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은 말한다. “당신의 음악이 당신의 가슴과 영혼으로부터 나온다면, 그리고 그것이 내면에서 느껴진다면, 다른 이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줄 것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 살지만, 자신과 타인의 내면에 깊게 귀 기울일 수 있는 멈춤의 시간은 필요하고, 이때 클래식 음악은 훌륭한 동반자가 된다. 파바로티의 만개하는 고음이 주는 전율을 느껴보라. 칼라스의 서늘한 비수와 같은 음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동참해 보라. 그들의 삶이 녹여진 음악이 우리의 인생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 음악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어떤 감정으로 우리의 삶의 고통을 치유하며 한없는 풍요로움으로 채워 줄 것이다.

 


김지영 예원 및 서울예고와 이화여대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탈리아 A.Peri 국립음악원과 이탈리아 G.Nicolini 국립음악원 Biennio 최고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성악가, 월간리뷰 음악칼럼니스트, 국립충북대학교, 목원대학교 ,한국성서대 콘서바토리 강사. 공감합창단 지휘자, 세레니타 솔리스트 앙상블 대표이다. 제14회 쿨투라 신인상 음악평론 부문 수상.

 

 

* 《쿨투라》 2020년 3월호(통권 6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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