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제15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1.03.0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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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지평을 확대하는 영상 독법 제시

제15회 신인상 당선작 발표

영 화 평 론 부 문
퀴어하지 않지만 퀴어한 영화에 관하여 송석주

웹 툰 평 론 부 문
찌질의 예술 - 마영신 〈아티스트〉 한유희

심 사 위 원
유성호(문학평론가), 김시무(영화평론가), 김민정(드라마비평가)

  심사평

  비평의 지평을 확대하는 영상 독법 제시

  드라마 평론, 웹툰 평론 한 편과 세 편의 영화비평문이 최종 심사에 올랐다.

  남다혜의 드라마평론 「일상적-판타지 드라마, 내지는 우리 시대 영상문화의 ‘수상한’ 구원자들-<스위트홈> 그리고 <구미호뎐>에 기대어서」, 한유희의 웹툰 평론 「찌질의 예술-마영신 <아티스트>」, 김수리의 영화평론 「이토록 영화다운,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이해이의 영화평론 「신이 존재하는 곳에서」, 그리고 송석주의 영화평론 「퀴어하지 않지만 퀴어한 영화에 관하여」가 그것이다.

  남다혜의 드라마평론 「일상적-판타지 드라마, 내지는 우리 시대 영상문화의 ‘수상한’ 구원자들-<스위트홈> 그리고 <구미호뎐>에 기대어서」은 최근 종영한 <스위트홈>과 <구미호뎐>을 중심으로 텍스트에 대한 깊은 독해를 시도하고 그것을 하나의 드라마 유형으로 분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패기와 자신감 넘치는 화법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만, 간혹 과도한 주장과 감정적인 어조가 돌출되고, 논리적 비약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종종 발견되어 비평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요건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한유희의 웹툰평론 「찌질의 예술-마영신 <아티스트>」는 예술과 예술가의 영역을 자본주의로 치환함으로써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예술이란 무엇이고 예술가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근본적으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촉구한다. 과연 ‘찌질’한 삶은 언제 예술로 승화 혹은 진화할 수 있는가. ‘인간의 욕망과 속물성, 그리고 인정투쟁’이라는 인류의 오랜 고민이 삶과 예술의 관계성 안에서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웹툰 비평가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사고 싶다.

  김수리의 영화평론 「이토록 영화다운,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최근 독립영화로서 흥행에도 성공한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를 분석한 글인데, 필자는 이 영화가 성장서사를 다루고 있다는 항간의 오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이것이 찬실을 주인공으로 한 진짜로 시적 영화라는 것을 설득력있게 묘사하고 있다.

  이해이의 영화평론 「신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자전적인 영화 <페인 앤 글로리>(Pain and Glory, 2019)를 다루고 있는데, 필자는 감독의 기존 영화들이 수면 위에 떠오른 욕망을 다루고 있다면, 이 영화에서는 수면 아래 감춰진 욕망을 건드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송석주의 영화평론 「퀴어하지 않지만 퀴어한 영화에 관하여」는 윤성현 감독의 두 편의 영화 <아이들>(2008)과 <파수꾼>(2011)을 퀴어(queer)적으로 독해한 글인데, 이들 텍스트가 ‘퀴어적’이라서가 아니라 모든 텍스트는 퀴어적으로 해석가능하다는 전제가 눈길을 끌었다.

  그리하여 상기 다섯 편의 평문을 두고 고심한 끝에 심사위원들은 최종적으로 송석주의 영화평론 「퀴어하지 않지만 퀴어한 영화에 관하여」와 한유희의 웹툰평론 「찌질의 예술-마영신 <아티스트>」 를 당선작으로 뽑기로 결정했다.

  명백히 퀴어적인 영화가 있다. 이를테면,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이라든가 김인식 감독의 <로드무비>(Road Movie, 2002)등이 바로 그것이다. 텍스트 상에서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너무나도 명시적이어서 새삼스럽게 해석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런데 송석주의 글이 눈길을 끄는 것은 외관상 ‘퀴어영화’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과 <파수꾼>에서 감독이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새겨 넣은 퀴어다움(queerness)을 징후적으로 읽어내어 수면위로 올려놓았다는 데 있다. 필자는 심지어 “적극적으로 오독(誤讀)을 해서라도 상기 텍스트들을 ‘퀴어영화’로 읽어내는 일이야말로 영화비평의 저변을 넓히는 작업”이라고까지 선언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송석주는 <아이들>을 분석하면서 점프커트의 사용여부로 이성애 결합과 동성애 결합의 의미를 포착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먼저 “점프커트는 인물의 행위를 세부적으로 서술할 가치가 없을 때, 그 연속성을 파괴할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확실히 한다. 이 영화에서는 태준과 진욱의 동성애 결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리하여 두 사람이 등장할 때는 점프커트 없이 한 호흡으로 포착함으로써 둘의 관계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밖에 이성애 결합을 나타내는 장면들은 점프커트로 처리함으로써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송석주의 징후적 독해인 셈이다.

  송석주는 <파수꾼>의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사에 주목한다. 극중 기태(이제훈)의 친구들인 희준(박정민)과 동윤(서준영)은 각각 이성친구인 보경(정설희)과 세정(이초희)을 좋아하는데, 기태만은 어떠한 이성친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날 기태가 동윤에게 “세정이 많이 좋아하냐?”고 묻는데,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 물어보자, 동윤이 거의 짜증스럽게 “존나 좋아한다”고 대답을 해준다. 그러자 기태가 “그냥, 부러워서 물어봤다”고 말한다.

  이 같은 대사를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기태는 명백한 이성애주의자로 여친이 있는 동윤을 부러워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징후적으로 독해하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질문 자체가 이상한(queer) 질문이라는 것이다. 기태는 동윤과 세정 간의 애정의 강도를 확인하려고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니라 “어떻게 여자를 좋아할 수 있지?” 하는 그런 뉘앙스가 담긴 질문이었다는 말이다.

  송석주는 명시적으로 동성애를 표방하지 않은 상기 텍스트들을 숏의 배치와 대사의 이면을 이상하게(queer) 독해함으로써 동성애 텍스트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이 같은 그의 독해방식이 비평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고 본 심사자는 평가하고 싶다 .

  또한 한유희의 웹툰평론 「찌질의 예술-마영신 <아티스트>」는 예술과 우리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며, 지금 여기 우리가 직면한 세상과 사회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와 함께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뒷받침하는 비평적 사유의 날카로움이 조금 무디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주제의식이 갖는 힘과 매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문장과 깔끔한 논리 전개에 웹툰 평론가로서 밝은 미래를 기대하고 싶다. 비평의 마지막 문장인 “부디 잘 되었으면 좋겠다”를 빌려 당선작으로 내보내며,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2021년 새롭게 출발하는 신인들이 문화예술의 현장에서 날카롭고 빛나게 행진하길 바란다.

심사위원을 대표하여, 김시무(영화평론가)

 


  당선소감

  영화평론 부문 - 송석주

버려진 이미지들을 바라보고, 느끼고, 언어화하고 싶었다

  멀미가 날 정도로 어지러웠던 2014년, 어느 겨울날의 일이다. 당시 나는 갓 제대한 대학교 2학년 복학생이었다. 우연히 학보사 원고 모집 공고를 보았고, 거기에 치기 어린 글 한 편을 투고했다. 세월호의 침몰과 신해철의 죽음에 관한 글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투고한 글이 신문에 게재될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 내 글이 처음으로 지면에 실리는 경험이었다. 당선 전화를 받고, 그때의 마음이 떠올랐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풍경이었는데, 가슴이 울렁거렸다.

  뒤늦게 영화에 관심을 가진 나는 대학 졸업 후 영화 글을 전문적으로 쓰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생활은 여러 가지로 힘들었지만, 좋은 선생님과 동료들을 만난 덕분에 지난한 시간을 견디고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원 생활은 내게 ‘영화 글쓰기란 무엇인가?’에 관해 골몰하고 천착할 수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영화를 볼 때, 쓸데없는 것들에 곧잘 눈길이 가곤 한다. 주인공이 무심히 지나치는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들꽃 같은 것들. 별다른 의미도, 기능도 없는 이미지들에 자주 매혹됐고, 마음이 흔들렸다. 돌이켜 보면, 내가 쓴 영화 글들은 모두 그러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버려진 이미지들을 바라보고, 느끼고, 언어화하고 싶었다. 붙잡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늘 힘에 부쳐 쩔쩔맸고, 괴로웠다. 하지만 그만큼 행복했다.

  언제나 나의 결정을 존중하고 믿어준 가족에게 당선 소식이 큰 기쁨이었으면 좋겠다. 대학원 동료인 세연 누나, 태환 형, 장근 형, 주희, 태현에게 고맙다. 좋은 가르침을 주신 유지나 선생님, 김문주 선생님, 정영권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장천, 상민, 상훈은 항상 좋은 기운을 주는 친구들이다. 그들이 있어 인생이 외롭지 않다. <독서신문>의 정신적 지주인 믿음 선배, 승일 선배와도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끝으로 나의 미진하고 어수선한 글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쿨투라》에 감사드린다.

  웹툰평론 부문 - 한유희

캄캄한 ‘지금’을 이겨내야만 동이 트는 ‘내일’이 온다

  “네가 바란 별들은 어둠 속에서만 뜬다는 걸 절대 잊지마.” 매일 새벽, 지쳤을 때마다 노트 퉁이에 좋아하는 가사를 적었습니다. 캄캄한 ‘지금’을 이겨내야만 동이 트는 ‘내일’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화로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나도 얼떨떨했습니다. 가장 먼저 신랑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의 가장 큰 버팀목입니다. 밤늦게서야 글을 읽고 써야 하는 ‘엄마’를 위해 일찍 자는 것이 도와주는 것임을 아는 서윤이, 해윤이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합니다. 언제나 응원해주는 가족들에게도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전화를 끊고난 뒤, “내가 왜?”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아마도 심사위원 선생님들께서 지금의 글보다 더 좋은 글을 쓰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품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전히 부족합니다. 글을 쓰면서 만족하기보다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저를 응원해주시는 안숭범 교수님과 함께 공부하는 경희대학교 학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어렵고 힘든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고 사랑으로 응답해주는 친구들에게도 많이도 고맙습니다.

  넘치는 고마운 마음들을 추슬러서 다음에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쿨투라》 2021년 2월호(통권 8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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