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소감] 미술평론 부문 최영건
[제18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소감] 미술평론 부문 최영건
  • 최영건
  • 승인 2024.02.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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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그런 기억이 있다. 나의 바깥으로 처음 말이란 걸 전하던 순간의 기억이다. 나와 말이 나뉘어 다시 나를 태어나게 하던 그 순간을 나는 오랫동안 잊지 않아 왔다. 글을 쓰는 건 그런 기억들을 위해서다. 나는 시간과 기억에 욕심이 많다. 사랑을 되살리기 위해 쓰고 싶다. 양혜규 작가님의 이무기를 처음 보던 순간이 떠오른다. 신화와 비밀, 내가 아득한 처음부터 함께하고 있던 이 오래되고 은밀한 여정에 기여하는 작업들을 나는 언제까지고 좋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문학의 영역에서 글을 써오던 내가 미술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은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는 생각 덕분이었다. 2019년 여름 나는 김성혜, 유민하, 장명선의 전시 《메타 세레나데》를 위해 전시 서문을 썼었다. 소설가로서 받게 된 미술 전시로의 첫 초대였다. 그때 그 전시에서 울려퍼지던 음악과 애니메이션의 움직임, 너울거리던 그림 커튼이 기억에 선연히 남아 있다. 2022년에서 2023년으로 이어진 겨울에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동명의 전시와 연계하여 열화당에서 출간된 『키키 스미스-자유 낙하』와 미술관에서의 북토크에 다시금 소설가로서 참여했다. 그 덕분에 미술을 신화와 이야기의 관점에서 더 깊이 읽어내고, 그걸 내가 쓸 수 있는 미술 평론의 방향으로 삼을 수도 있지 않을지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학부 시절 교회를 다니지 않는 신학 전공자였던 내게 불가지론은 더 공부해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했다. 그에 대해 쓰게 된 것 역시 새삼 기쁘다.

《메타 세레나데》에서 쓴 글의 제목은 「몸이 셋인 요괴, 무슨 노래를 부르나」이고 『키키 스미스-자유 낙하』에서 쓴 글의 제목은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는 신의 내러티브」이다. 당선작까지 세 편의 글 제목을 나란히 보면 내가 쓰고 싶어하는 것이 투명히 보이는 듯해 부끄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쓸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준 모든 분, 모든 존재에게 기쁨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수상 소식에 앞서 큰 병을 진단 받았지만, 아마 또 글을 쓸 것이다. 곧 출간되어야 할 소설책의 교정지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이미 이야기이지만 쓰는 동안 쓰는 이에게는 그 사실이 조금 더 환해진다.

 

 


최영건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문학의 오늘》 신인문학상(2014),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크로스로드 프라이즈를 수상했다. 장편소설 『공기 도미노』(2017)와 단편집 『수초 수조』(2019), 공저 『키키 스미스-자유 낙하』(2022) 등이 있다. 기억과 복원, 메타모르포시스를 다루는 예술에 관심을 갖고 소설과 에세이를 쓰며 번역과 기획을 하고 있다. 예술은 기도라는 타르콥스키의 말을 좋아한다.

 

 

* 《쿨투라》 2024년 2월호(통권 11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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