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쿨투라 신인상 문화평론 부문 당선작] 고령 사회의 섹슈얼리티와 비대칭성
[제13회 쿨투라 신인상 문화평론 부문 당선작] 고령 사회의 섹슈얼리티와 비대칭성
  • 김세연
  • 승인 2019.09.01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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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이 듦에 관한 오래된 농담

여자는 25세가 넘어가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남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해진다는 의미로 ‘와인’에 비유하는 것은 나이 듦에 관한 오래된 농담 중 하나이다. 우리 사회는 늘 여성의 나이 듦과 그에 따른 외모 변화를 매우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고 남성의 그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이제는 실제로 이런 농담을 하는 사람이 드물어지기는 했지만, 젠더 문제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와는 별개로 성별에 따른 나이와 외모 기준의 격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흔히 남성의 매력은 지위나 재력, 성격이나 매너 등 다양한 요소로 결정되지만 여성의 매력은 젊고 아름다운 신체에 국한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젊음과 미모는 사라지고, 경제력이나 처세 등 사회적 능력은 발전하기 때문에 나이 듦에 민감한 것은 여성 쪽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중매체에서 이러한 불공평한 전제 조건들을 승인한다는 데 있다. 이는 남녀의 섹슈얼리티가 미디어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때 명징해진다. 일찍이 월터 리프만이 언급했듯 미디어는 우리가 살아가는 넓고 복잡한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재구성해 현실을 왜곡한다. 그리고 그 왜곡된 상은 다시 현실과 영향을 주고받는다.(Lippmann, Walter, 1922) 본고는 대중매체에 나타난 남녀의 나이/외모 중요도 차이를 알아봄으로써 우리 현실을 진단해보고, 비대칭적인 구조를 심화·고착화하는 미디어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데 목적이 있다.

 

2. 잘생김을 연기하다

‘잘생김을 연기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객관적인 미남의 조건을 갖추지 않은 배우가 브라운관 속에서 말이나 행동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상황을 뜻하는 표현이다. 자상하거나 시크하거나 리더십이 있는 등.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어느 순간 시청자들의 눈에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타덤에 오른다. 비록 평범하거나 못생기거나 나이가 많더라도 말이다. 2018년 9월 국내의 한 언론사는 “‘잘생김’마저 연기하는 ‘천재’ 배우 6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시한 바 있다. 여기서 언급된 배우는 류준열, 황정민, 신하균, 류승범 등인데, 기사에 따르면 이들은 “이목구비 하나하나 따져봤을 때 타고난 미남형은 아니지만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잘생김을 연기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인사이트》, 2018.09.05.) 이 중에서도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수식어가 가 장 많이 붙는 배우는 단연 류준열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tvN)에서 류준열은 주인공 ‘덕선’(혜리)의 친구들에 의해 ‘키 크고 마르고 눈 찢어진 애’ 또는 ‘무섭게 생긴 애’로 호명된다. 한 매체에서는 류준열에 대해 “두꺼운 눈두덩이, 쌍꺼풀이 없고 매섭게 찢어진 눈과 도톰하게 벌어진 입술. 선뜻 미남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얼굴”이라고 설명하는 동시에 “그러나, 그는 잘생겼다. 정확히는 〈응답하라 1988〉 을 보다 보면, 그가 점점 잘생겨 보인다”라는 찬사를 보낸다.(《ize》, 2015.11.30.)

〈응답하라 1988〉(tvN)에서 류준열이 연기한 ‘정환’은 무심한 듯하면서 은근히 여주인공을 배려하는 성격으로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물의 남주 캐릭터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덕선을 자신의 팔 안에 가두어 다치지 않게 지켜주고, 엄마를 피해 도망가는 덕선을 대신해 매를 맞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 신드롬을 만들어낸 원동력인데, 그 로맨스의 경쟁자들이 조각미남인 ‘택’(박보검)과 ‘선우’(고경표)였다는 것은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데뷔 초반 ‘못생긴 잘생김’이라는 역설적인 수식어가 따라붙던 류준열은 점차 스타 반열에 오름에 따라 ‘그냥 미남’으로 둔갑하기 시작한다. 2018년 한 언론에서는 “류준열이냐 박보검이냐… 손글씨가 예쁜 미남 배우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뽑아낸다.(《OSEN》, 2018.09.04.) 기자는 우리나라 톱스타 남자 배우인 장동건, 현빈, 박보검의 사진을 류준열과 나란히 배치하고, ‘미남’이라는 라벨을 붙인다. 이러한 작업은 ‘미남’이라는 단어의 외연을 넓히며 미美의 획일화된 기준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한다. 이는 비난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미모 기준의 방만함이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적용되는가 하는 것이다. 장동건·현빈·박보검·류준열이 동일 범주로 묶이는 것은 가능하나, 김태희·송혜교·전지현과 라미란을 함께 세워두고 ‘미녀 배우들’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잘생김을 연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예쁨을 연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을 수 있는 배우는 한정적이다. 청순가련형 캐릭터뿐만 아니라 못생기고 평범한 여자 역할마저 미녀 배우만이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드라마 〈어비스〉(tvN)는 “‘영혼 소생 구슬’ 어비스를 통해 생전과 180도 다른 ‘반전 비주얼’로 부활한 두 남녀가 자신을 죽인 살인자를 쫓는 반전 비주얼 판타지 드라마”(tvN 공식홈페이지)이다. 전생에 ‘여신 미모’였으나 현생에서는 ‘세젤 흔녀’(세상에서 제일 흔한 얼굴을 지닌 여자)로 부활한 여자 주인공 역할을 맡은 것은 다름 아닌 배우 박보영이다.

드라마 메인 포스터에는 “어비스? 이 구슬 때문에 내가 이 모습으로 부활했다고?”라는 문구와 함께 배우 박보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캐스팅 기준이다. 박보영은 작은 얼굴에 커다랗고 동그란 눈과 뽀얀 피부를 가져 연예계 대표 ‘강아지 상 미인 형’으로(《인사이트》, 2017.09.03.) 손꼽힌다. 그런 박보영을 데려다 놓고 ‘세상에서 제일 흔한 얼굴을 지닌 여자’라고 우기는 상황은 모순적이다. 드라마 〈또 오해영〉(tvN)에는 ‘오해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여자가 등장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예쁜 해영’과 ‘그냥(안 예쁜) 해영’으로 구분해 부른다. ‘안 예쁜 해영’ 역을 맡은 사람은 ‘로코퀸’ 서현진이다. 극 중에서 ‘그냥 해영’(서현진)은 예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딘가 어설프고 푼수 같은 캐릭터로 끊임없이 ‘예쁜 해영’과 비교 당한다. 과거 아이돌 걸그룹 출신이기도 한 서현진이 못생긴 푼수데기 취급을 당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드라마 제작진은 서현진이 ‘안 예쁜’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공식 포스터에서 그녀에게 못난이 인형을 들고 있게 한다.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MBC)에서 비만 역도부 원 역을 맡은 사람은 모델 ‘이성경’이다. 드라마 〈미녀 공심이〉(SBS)에서는 ‘멍청한 엄마의 두뇌와 매우 못생긴 아빠의 외모를 물려받은 저주받은 둘째 딸’ 역할로 아이돌 걸그룹 출신 ‘민아’가 캐스팅되었다. 특수 분장으로 빛나는 미모를 감출지언정 못난 역할이라고 해서 실제로 그런 외모를 지닌 여배우를 주인공 자리에 앉히는 사례는 거의 없다. 남자 배우는 ‘잘생김을 연기’하는데 반해 여자 배우는 ‘못생김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3. ‘아재파탈’과 ‘아줌돌’

아름다움과 젊음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젊은 시절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는 나이가 들수록 퇴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중년 남녀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여성은 젊은 시절을 지나 ‘아줌마’가 되는 순간 아름다움과 단절되는 존재로 여겨진다. 반면, 남성은 나이가 들어도 멋스러움과 품격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되는 경향이 있어왔다. ‘꽃중년’, ‘미중년’, ‘영포티’ 등의 수식어들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꽃중년이라는 단어 대신 ‘아재파탈’이라는 신조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재파탈은 아저씨의 친근한 표현인 ‘아재’와 옴므파탈에서 따온 ‘파탈’이 결합된 말이다. 처음에 이 단어는 꽃중년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외모 관리가 잘 되어있는 중년 남성들을 수식하는 데 사용되었으나, 이제는 그 외연이 확장되어 ‘아저씨’라면 누구나 ‘아재파탈’이라 불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2018년 한 매체에서는 “‘아재파탈’ 성동일, 드라마 배우 브랜드 평판 1위”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TV리포트》, 2018) 중년 배우 성동일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그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tvN) 에서는 소박하고 근면한 가장을 연기했고,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MBC)에서는 무뚝뚝하지만 든든한 아빠로서 실제 자녀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브라운관 속 그는 우리의 이웃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전형적인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있다. 즉, 성동일은 아재 파탈이 아니라 ‘그냥 아재’라는 것이다. 그런 그를 옴므파탈의 테두리 안에 욱여넣은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외에도 김건모, 김제동, 이덕화, 정형돈, 데프콘 등 평범하게 나이든 남자를 아재파탈로 승격시킨 사례는 많다. 이와 같은 수식어로 불리는 이들 중에서는 정우성, 지진희, 유준상 등 젊은 시절에 발산하던 남성적 매력을 간직하면서 중년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있지만, 단지 나이가 들 었다는 이유만으로 아재파탈의 지위를 부여받는 사례도 무수하다.

이런 탓인지 중년 남성들이 젊은 여성에게 성적으로 어필하는 모습은 흔히 보인다. 대표적인 아재방송이라고 할 수 있는 〈아는형님〉(JTBC)은 매번 젊고 예쁜 여성 게스트와 중년 남성 MC들 간 ‘썸’의 기류를 형성한다. MC들은 20대 여배우에게 “여기서 뽀뽀를 할 수 없는 멤버가 있느냐”는 질문을 하고, 그녀의 남편감을 찾는 설정의 꽁트를 한다.(〈아는형님〉 98회 윤정수&하연수 편) 기혼이거나 이혼 상태인 그들은 미혼 여성으로부터 자신의 성적 매력을 확인하려 한다. 여성 게스트로 하여금 MC들 중 마음에 드는 남성을 고르게 하는 것은 〈아는형님〉의 단골 코너다. 한 회차에서는 여성 출연자가 자신의 이상형으로 (젊고 잘생긴) ‘김희철’을 선택하고 나서 핀잔을 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MC 이수근은 “그럼 (인터뷰가) 빨리 끝나. 제일 길게 가는 건 서장훈이야. 건물 얘기 나오고 신정 때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얘기까지 이어지거든.”이라고 말한다.(〈아는형님〉 56회 유인영&김현수 편) 서장훈은 이혼 경력을 보유한 40대 중반 남성이지만, 방송에서는 스스럼없이 새로운 인연 찾기의 주인공이 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그의 재력이다. 남자의 재력은 여자의 젊음/미모에 비길 수 있는 무기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SES 슈 ‘이젠 아줌돌’ … 다소 후덕해진 모습 눈길” SES 출신 슈가 다소 통통해진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지난 26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 타’에 출연한 슈는 ‘한창 때’와 달리 다소 후덕해진 모습을 선보였다. 걸그룹 SES 활동을 통해 요정과 같은 매력을 뽐냈던 슈가 결혼 후 ‘아줌돌’로서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 것.(《 스포츠 조선 》, 2011. 01. 27.)

그렇다면 ‘아재파탈’에 대응되는 표현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줌파탈’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비슷한 맥락에서 ‘아줌돌’이라는 조어가 있다. 이 단어는 90년대에 최고 인기를 누렸던 걸그룹 S.E.S.의 전 멤버 ‘슈’가 예능프로그램에서 본인 스스로를 “이젠 아이돌이 아니고 아줌돌”이라고 소개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인용한 신문 기사에서 아줌돌이라는 단어는 과거 걸그룹 멤버였던 여자가 ‘한창 때와 달리 다소 후덕해진 모습’을 설명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아재파탈’이 중년 남성의 건재함을 이른다면 ‘아줌돌’은 아름다움의 퇴락을 강조하는 맥락에 있다는 것이다.

 

4. 초연상남-초연하녀 커플의 증가

문희준-소율(13살 차), 배용준-박수진(13살 차), 이병헌-이민정(12살 차), 에릭-나혜미(12살 차) 등.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 나는 초연상남-초연하녀 연예인 커플들을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과거에 이런 경우는 ‘연예계에서나 가능한’ 독특한 사례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초연상남-초연하녀 커플의 미디어 노출 빈도가 올라감에 따라 이와 같은 형태의 연인 관계는 조금씩 정상성을 획득해가고 있는 것 같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띠동갑이 넘는 나이차를 지닌 남녀를 짝지은 다음 사랑에 빠지도록 종용한다. 〈연애의 맛〉(TV조선)에는 김정훈·김진아(14살 차), 김종민·황미나(14살 차), 이필모·서수연(14살 차), 구준엽·오지혜 (14살 차), 고주원·김보미(11살 차) 커플들이 등장하며,〈미운우리새끼〉(SBS)에는 김건모(68년생)가 20살 연하의 여성을 차지하기 위해 지상렬(70년생), 김종민(79년생)과 쟁탈전을 벌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초연상-초연하 커플은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는가. 〈호구의 연애〉(MBC)는 열 명 남짓의 남녀가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서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내용의 예능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의 연령을 살펴보자. 채지안 29세, 윤선영 28세, 황세온 26세, 지윤미 25세로 여성 출연자들의 나이는 이십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에 머무른다. 남성 출연자는 허경환 39세, 박성광은 39세, 장동우 30세, 김민규 26세로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30대이다. 남성 출연자와 여성 출 연자가 최대 14살 차로 벌어진 구성이다. 스튜디오에서 이들의 여행을 지켜보는 패널들은 가장 젊고 잘생긴 김민규(26)가 선전할 것으로 예측하지만, 첫 여행이 진행되는 동안 첫인상 1위와 최종 호감도 1위로 뽑힌 것은 양세찬(35)과 허경환(39)이다. 뜻밖에도 인기 투표 1위의 영예를 안은 것은 고령의 개그맨 두 명이다. 여성들은 이들을 선택한 이유로 센스, 배려심, 리더십, 다정다감한 성격 등을 꼽았다. 나이와 성숙한 인격이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급된 덕목들은 인간관계의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무르익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첫인상 투표에서 0표를 받은 박성광(39)은 여행의 후반부로 갈수록 잠재된 매력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윤선영(28)은 “하나하나 잘 챙겨주고 듬직한 면이 있는 것 같아 이번에 좀 설렌 것 같다”라며 박 성광에 대한 호감을 조심스레 드러낸다. 11살 연하의 여자와 핑크빛 교류를 갖는데 성공한 요인은 바로 ‘사려 깊은 성격’이다. 패널들은 “아는 사람만 아는 성광의 세심 배려 스킬이 있는데 그 숨겨진 매력이 나타나면 호구의 연애를 휘젓고 다닐 것”이라고 말하며, 그를 ‘오래봐야 멋있는 슬로우 매력남’ 이라고 평가한다. ‘숨겨진 매력’을 발견하기 위해 기다리는 일이 가능한 것은 남성을 평가하는 데 외모가 아닌 다른 요소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젊음은 아름다운 외모를 담보한다. 하지만 동시에 미숙함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남성에게 그것은 종종 단점이 되기도 한다. ‘멍뭉미’(강아지를 연상시키는 귀여움을 뜻하는 단어)라는 수식어로 간신히 포장되고 있기는 하지만, 실수를 연발하는 막내 김민규의 모습을 볼 때마다 패널들은 함께 불안해한다. 남성의 미숙함은 이성을 비롯한 타인과의 관계맺음에 있어 분명한 감점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남성 출연자들의 인기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반면, 여성 출연자들에 대한 호감도는 대체로 고정적인 편이다. 이는 여성에 대한 호감이 대부분 초반 인상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하는 단서이다. ‘이민정 닮은 꼴’ 채지안과 〈얼짱시대〉(Comedy TV) 출신 지윤미가 각각 다른 남성들에게 둘러쌓여 삼각관계의 고민에 빠져있는 동안, 프로그램 초반부에 남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 누군가는 별 이변 없이 게임에서 빠지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여준다.

 

5. 고령 사회의 연애

“연애 프로그램들은 최근까지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실제 우리들의 연애에 있어서 저나 제 주변을 살펴보면 공유나 원빈 , 현빈 같은 대상은 거의 없었다. 95 % 이상의 연애가 우리 ‘호구의 연애’ 에 나오는 멤버 같은 오빠나 동생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것 같다. 이런 경험은 시청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런 오빠나 동생 같은 사람들과 학교를 다니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어쩌다 보니까 그 오빠가 멋있어 보이고, (중략) 제작진도 어느 순간 박성광과 앙세찬이 너무 잘생겨 보이기 시작하더라. ‘ 우리 눈은 이제 망했구나!’ 생각할 정도인데 시청자 분들도 저희를 보고 같이 웃으면서 즐기다가 이분들의 매력에 빠져 주시면 좋겠다. 웃으면서 일요일 밤에 잠드실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하며 출연자들에 대한 콩깍지 쓰인 애정을 드러냈다.( iMBC 김경희, 2019 . 강조는 인용자)

〈호구의 연애〉(MBC) 노시용 PD는 프로그램 출연진 구성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실제 연애에서 원빈, 현빈 같이 잘생긴 사람은 없기 때문에 주위에 있을 법한 평범한 외모의 (남성) 출연자들을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다가 “어느 순간 박성광과 양세찬이 너무 잘생겨 보이” 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청자들 역시 그러한 감정에 동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노 PD의 기획 의도는 충분히 공감이 가능하다. 사람의 매력은 예쁘거나 잘생긴 외모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며, 그의 말처럼 평범한 외모를 지닌 출연자는 프로그램의 현실감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원빈, 현빈 같은 남자는 실제로 없다’면서 여성 출연진은 천하일색 미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박성광과 양세찬이 너무 잘생겨 보이는’ 경험을 시청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면, 그와 대칭되는 경험도 함께 제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성별에 따른 나이/외모 차별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미디어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도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결혼 연령대가 상승하면서 과거보다 고령의 싱글 남녀가 많아진 데 비해, 여전히 연애/결혼이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쪽은 남성이다. 이때 남성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것은 젊은 여성으로 국한된다. 따라서 여성의 나이 듦과 남 성의 나이 듦은 매우 다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우리 의식 속 비대칭적 구조를 자각하는 것이 논의의 시작이 될 것이다.

 

 


〈참고 문헌〉
김은지. (2018). “‘잘생김’마저 연기하는 ‘천재’ 배우 6명”, 《인사이트》, 09.05.
신나라. (2018). “‘아재파탈’ 성동일, 드라마배우 브랜드 평판 1위”, 《TV리포트》, 06.13.
박소정. (2017). “‘아재’라는 호명의 독 - 대중문화 속 ‘아재’ 코드가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구축하는 방식 ‘Ajae’, a Poisonous Interpellation : How ‘Ajae’ Constructs the Hegemonic Masculinity”, 「미디어,젠더&문화」, 32:95.
위근우. (2019). “[위근우의 리플레이]훈남·볼매남·짐승남…남성에게 만 관대한 미의식 못 버렸네”, 《경향신문》, 03.22.
정해욱. (2011). “SES 슈 “이젠 아줌돌”…다소 후덕해진 모습 눈길”, 《스포츠조선》, 01.27.
정희진. (2003). “[연속기획/한국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구조8-노인] 나이 듦, 늙음 그리고 성별”, 《당대비평》, 345. 《 OSEN》, (2018). 09.04. 《ize》, (2015). 11.30. 《 인사이트》, (2017). 09.03. iMBC 김경희, 2019, “〈호구의 연애〉 노시용 PD “제작진도 어느 순간 박성광 양세찬이 잘생겨 보여, 우리 눈은 망했다!””, http:// enews.imbc.com/News/RetrieveNewsInfo/256094/2019.04.26 Lippmann, Walter. (1922). Public opinion, 김규환(역). (1973). 『여론』, 현대문명과 한국.


김세연 1989년 대구 출생.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 《쿨투라》 2019년 9월호(통권 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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