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제9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16.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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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신인상 당선작 발표

음 악 평 론 부 문
공포와 발견의 시간구조 서영호

심 사 위 원
전찬일(영화평론가), 홍용희(문학평론가), 이재복(문학평론가), 강태규(대중문화평론가)

 

심사평

영화 〈싸인〉의 서사와 음악 뿐 아니라, 서영호의 평론, 나아가 심사평마저도 공포·호기심과 발견의 과정… 

엄밀히 말해 이것은 심사평이 아니다. 서영호의 평론 「공포와 발견의 시간구조 — 영화 〈싸인〉의 음악」을 심사하기엔 내 음악적 전문성이 워낙 부족한 탓이다. 어쩌면 거꾸로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른다. 어지간히 음악을 좋아하는 나 같은 영화평론가라 할지라도 서영호의 평론을 심사하기엔 그의 음악적 전문성이 워낙 높다고. 아니나 다를까, 서영호 그는 2인조 그룹 ‘원 펀치’의 멤버로서 그 스스로가 가수요 연주자며, 작곡가고 이론가 아니던가. 한국사를 전공한 재원이요, 그야말로 인문학적 교양을 바탕으로 음악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흔치 않은 아티스트이며 예비 평론가인 것. 그럼에도 이 심사평을 맡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 평론이 영화음악을 다루기 때문이다. 《쿨투라》 편집위원 중 영화음악 전문 평론가—국내에 이런 전문가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모르겠다—가 없는 마당에 영화평론가 아니면 그 누가 이 심사평을 맡아 쓰겠는가.

만만하게 평론을 읽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랐다. 영화 〈싸인〉에서의 음악 모티브의 반복과 변주를 말하기 위해, 요절한 천재 시인 기형도의 시 「안개」를 동원하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꽤 오래 전이긴 하나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그 걸작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김수용 감독의 〈안개〉(1967)를 읽고 봤지만, 시부터 찾아 읽어야 했다. 그저 이름 정도만 들어 희미하게 밖에 모르던 김환기, 장욱진 등 한국 미술사의 거목들에 대한 정보도 검색해보고, 유투브를 통해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과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 등을 들으며 음악에서의 주도동기Leitmotif 및 반복음형Ostinato 등을 확인하고 학습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처 보지 않았던 영화 〈싸인〉을 올레TV를 통해 관람했다.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들만이 아니라 멀리는 〈귀여운 여인〉 등을, 가깝게는 〈다크 나이트〉나 〈헝거 게임〉 시리즈 등을 작업했던 제임스 하워드 뉴튼의 음악에 귀 기울이며. 지금도 〈싸인〉의 OST 전곡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서영호의 평론을 읽고 또 읽었음은 두말한 나위 없다.

〈싸인〉의 음악이 공포 내지 호기심과 발견의 시간구조라더니, 고백컨대 이 심사평이 호기심과 발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싸인〉의 내러티브 즉 서사도, 나아가 서영호의 평론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이 공포로서 호기심, 호기심으로서 공포와 발견의 과정을 거쳐 화해, 어떤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모티브의 반복과 변주는 비단 어느 특정 분야만이 아니라 사실상 거의 모든 예술의, 심지어는 우리 네 삶 자체에서 핵심 이슈이거늘, 하필 왜 〈싸인〉인 것일까? 나이트 샤말란은 최대 대표작 〈식스 센스〉(1999) 이후 우리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감독 아니던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랬다. 7,200만 달러를 들여 미국에서만 2억3000만 달러에 달하는, 꽤 큰 박스 오피스를 기록했지만 〈싸인〉도 국내에서는 별 다른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나도 그랬다. 〈식스 센스〉 이후 그의 영화는 단 한 편도 보질 않았다. 이번에 〈싸인〉을 보기 전까지는.

서영호는 그 이유를 명확히 제시한다. “현대사회에서의 영화는 예술의 한 갈래로서보다는 사회적 현상으로 존재”하는 바, 영화는 “현대사회의 과학적, 예술적, 산업적 특성과 요구가 만나는 대표적 장르이며 영상의 사회적 성격은 어떤 다른 예술 장르보다도 강렬하다. 음악이 영상에 가담하는 것은 그러므로 자연스러운 예술적 교합이며 그 상호성과 독자성 또한 그만큼 중요해졌다.” 〈싸인〉은 “영화와 음악의 독자성이 어떻게 상호성으로 배합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의문과 공포의 서사는 신비와 긴장, 두려움과 안도의 음악을 배면으로 하여 전개된다.” ‘영화 음악의 덕목 혹은 융합 방식’으로서 영화 음악의 ‘불가청성의 원리’에 입각해, 서영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싸인〉에서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음악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적 주제어의 설정과 그것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영화적이며 음악적인 성취를 동시에 보여준 사례였다”고.

3장 구성으로 이뤄진 평론 중 본론에 해당하는 2장에서의 구체적 음악 분석은 솔직히 따라가기 버겁다. 중학교 적 배운 게 전부인 음악 이론에 취약한 탓이다. 그래도 그 음악의 영화적 적용은 이해 가능하다. 솔직히 흥미 만점이다. 이 땅의 그 어느 평론가가 서영호의 작업을 재연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 점에서 그가 선사한 자극, 가르침에 깊고 큰 감사를 전하련다. 서론과 결론 식으로 2장을 감싸고 있는 1장, 3장의 폭과 깊이도 수준급이다. 음악만이 아니라 영화를 논하는 수준도 주목감이다. 그의 해석이 아니어도 〈싸인〉은 SF 스릴러의 외피를 쓴 가족 드라마다. 샤말란 감독이 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함께 그토록 좋아한다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싸인〉의 음악에서 히치콕의 〈싸이코〉나 〈버티고〉의 음악이 연상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의 영화들이 그렇듯, 〈싸인〉의 외계인이나 미스터리 서클 등은 따라서 히치콕식 맥거핀 장치인 셈이다. 더 큰 주목은 영화와 음악을 분리시키지 않고, 철저히 연결시켜 진행시킨 접근에 주어져야 한다. 글쓰기의 완성도도 뛰어난 편이다.

영화음악의 대부분을 이루는 단순 배경음악BGM/BackGround Music으로서 영화음악의 기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특수 언어로서 영화 속 음악에만 천착했다든가, ‘불가시 편집’이 영화 편집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불가청성이 영화음악의 다는 아닌데 그 입장만을 고수한 점 등,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지점들이 적잖음에도 이 평론에 후한 평가를 주고 싶은 것은 그만큼 상찬할 만한 미덕이 즐비해서다. 모쪼록 아티스트로서만이 아니라 평론가로서 서영호의 도약을 소망한다. 

- 심사위원을 대표해, 전찬일 

 

 


당선소감

음악평론 부문 - 서영호

비평문 쓰기의 변

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음악에 관한 글이라면 망설임과 고민은 더 커집니다. 기본적으로는 부족한 사고의 깊이나 딱딱한 글 솜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나 직접 창작을 하던 사람으로서 남의 창작물을 비평한다는 것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분야에서 창작과 비평을 겸했던 이가 이미 수없이 많았기에 이것은 단지 아직 많이 써보지 않은 저의 어리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창작만 하던 입장에서 남의 음악에 대한 견해를 공개적인 글을 통해 평한다는 행위는 무언가 이쪽 편에서 저쪽 편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 일종의 배신자적 죄책감 같은 불편함을 느끼게 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이쪽 편과 저쪽 편의 그 어디에서도 귀기울일만한 것을 내놓지 못하는 떠돌이가 될까 두려운 생각도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초보들이나 하는 고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감정적으로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됐건 저에겐 아직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사실 나라는 사람을 돌이켜보면, 평소에 남의 음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꼬집어 내기를 꽤나 즐겨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고 언제나 그것을 조심하려고 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차라리 이것을 보다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어보자라는 자기변론을 내세우며 글을 써보기로 나서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비평이라는 것을 그 대상에 대한 객관적 정의 내리기라기보다는 저마다의 주관적 가설에 의한 견해 세우기라고 여기고 건강하고 다양한 의견과 논의들이 곧 음악문화를 풍성하게 할 것이라는 단순하고 원론적인 깨우침과 수긍이 동반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기도 합니다.

아직 한참 부족한 글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사실 이 당선소감은 평론 원고보다 더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사위원 분들의 격려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힘과 지혜가 되어주시는 아버지, 어머니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쿨투라》 2016년 봄호(통권 4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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